2019년 9월 22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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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짊어지고 혼자 돌아 왔소이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36)

  • 입력날짜 : 2019. 09.03. 18:15
送友(송우)
청천 하응림

경황없던 이별에 술 한 잔 나누며
청산에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기에
석양에 쓸쓸히 혼자 돌아서 왔소이다.
草草西郊別 秋風酒一杯
초초서교별 추풍주일배
靑山人不見 斜日獨歸來
청산인불견 사일독귀래

선현들의 시상은 이별에서 그 한(恨)의 덩어리들이 응결됐음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될 듯 하면서 고개는 자꾸만 좌우로 흔들어진다. 왜일까? 평자는 독선적인 현대적인 매스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닌 것인지 자문자답해 본다. 전화도 편지도 인터넷도 얼마든지 가능한 넉넉한 시대의 덕분이겠다. ‘떠나는 친구 보내기 아쉬워 경황이 없었던 서교에서 이별하면서, 소소한 가을바람에 겨우 술 한 잔을 나눴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석양을 짊어지고 혼자 돌아왔소이다’(送友)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청천(菁川) 하응림(河應臨·1536-1567)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55년(명종 10) 진사시에 합격했고, 1559년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됐다. 그 뒤 봉교를 지내고, 1563년 부수찬이 됐다. 1566년 정언을 거쳐 공조정랑이 되고, 이어 예조정랑이 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떠나는 친구 보내기 아쉬워 경황없이 서교에서 이별하니 / 소소한 가을바람에 겨우 술 한 잔을 나눴네 // 청산에 가려 지금은 친구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 석양을 짊어지고 혼자 돌아왔소이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친구를 전송하고 나서]로 번역된다. 이별은 어찌할 수 없이 두 사람이 헤어지는 행위다. 이별을 아쉬워했던 것은 영영 이별이 될 수도 있다는 ‘별리’(別離)란 의미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겠다. 요즘 같으면 ‘후딱 가그라, 도착하면 금방 전화해라…. 응’이라고 하련만, 당시는 인편으로 보낸 서찰이 구심창구였으니.

시인은 친구를 보내면서 아쉬운 시상 한 줌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물건을 챙기고, 괴나리봇짐을 챙겨주는 사이에 경황없었던 서교에의 이별은 가을바람에 겨우 술 한 잔을 나누면서 헤어졌다고 했다. 어제의 술 한 잔에 오늘은 전송하는 손을 흔들며 ‘어서 가라고, 그만 돌아가시라’고 나누는 전송은 절절했으리라.

손을 흔드는가 싶더니만, 어느 지점만큼 가다 보면 희미한 모습을 하다가 그만 보이지 않는다. 청산이 친구의 모습을 가렸다는 시상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청산에 가려서 떠나는 친구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만 발길을 돌려 터벅터벅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결구인 종장에서 시적인 반전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싱겁게 집으로 돌아왔다는 모습을 그려놓고 말았다.

※한자와 어구

草草: 초초하게. 바쁘고 급함. 西郊: 서교. 이별하는 장소를 나타냄. 別: 이별. 이별하다. 秋風: 가을바람. 酒一杯: 술 한 잔. // 靑山: 청산. 人不見: 사람이 보이지 않다. 斜日: 해가 비끼다. 獨歸來: 홀로 돌아오다. 혹은 홀로 돌아가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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