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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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7) 곡성 죽동마을
흥겨운 죽동농악이 전하는 옛이야기
마을명절축제로 이어진 호남좌도농악의 중심지
전남 지방무형문화재 제35호 날당산굿·판굿까지 전체 계승

  • 입력날짜 : 2019. 09.18. 18:21
곡성군 죽동마을에서 농악이 펼쳐지고 있다. 죽동농악은 마을 사람들을 통해 전승된 마을농악이다.
흥겨운 농악으로 한 마음이 되는 마을이 있다.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내고 판굿을 펼친다. 농사철에는 만드리굿을 치고 행여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면서 흥겨운 놀이판을 펼치기도 한다. 회갑연이나 마을 잔치가 있을 때마다 악기를 꺼내 흥겨운 굿판을 벌인다. 농악계를 결성해 농악보존에 힘쓰고 마을 청소년들에게는 농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바로, 곡성 죽동마을이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살아온 전통마을

죽동마을은 곡성천과 동악산 사이에 둥지를 잡았다. 마을 앞에 임진왜란 때 축조했다는 커다란 방죽이 있어 ‘방죽골’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개편 때 방자를 빼고 ‘죽동리’가 됐다.

죽동마을은 동악산 아래 서당골을 뒷산으로 하고 서편으로 안산을 끼고 동향으로 형성돼 있다. 안산너머 댕기몰, 어너실, 안산너머들과 마을 앞 방죽들, 이문들의 제법 넓은 전답을 갖고 조상대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온 전통마을이다.

◇죽동농악, 신명나는 삶의 역사를 잇다

대대손손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죽동마을 사람들. 농악은 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죽동마을을 검색해보면 자연스레 따라 붙는 게 죽동농악이다. 마음속 깊은 간절함을 신명의 몸짓으로 풀어낸 곡성 죽동농악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우리 전통 유산이다.

죽동농악은 마을의 축제문화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의와 가치가 있다. 매년 정월보름 당산제를 모신 후 정월굿과 달집태우기를 하고 가가호호를 돌며 마당밟이를 하면서 마을 제사와 농악을 마무리하면서 판굿을 연행하고 있다. 매월 정월대보름을 기해 제의와 놀이, 연희가 어우러진 농악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죽동농악은 마을의 농악문화를 꽃피워 온 마을이라는 점에서 마을농악의 살아있는 화석과 같은 존재다. ‘죽동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마을회관에서 농악을 5분만 치고 있으면 마을사람 모두가 찾아든다’ 라고 말할 정도로 농악에 애정이 깊다. 그래서 주민들의 힘으로 농악의 전승력을 확보하는데 힘써왔다. 또 해마다 홍수로 떠내려가는 다리를 보수하기 위해 걸궁을 했으며, 농악인들을 후원하는 동시에 마을 청소년들의 농악교육을 실시해왔다.

농악이 한국인의 삶 속에서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했던 건 농악이 ‘예능’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농악문화’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진 위부터 죽동마을 연 방죽, 죽동마을 산책길, 죽동마을 벽화, 곡성 죽동농악 전수교육관

◇호남좌도농악을 아시나요?

죽동농악에 대해 상세히 알고자 한다면 곡성농악이 속한 호남좌도농악을 살펴야 할 것이다.

호남좌도농악은 동으로는 장수농악, 서로는 완주농악, 남으로는 화순농악, 북으로는 금산농악이 있으며 이 한가운데 진안, 남원, 곡성농악을 포함한다. 하지만 지역마다 약간씩 달라서 오늘날 호남좌도농악의 보편적인 특성과는 악간씩 달랐던 것 같다. 그나마 공통의 특징이 있다면 호남좌도농악은 호남우도농악이나 남해안지역의 농악과는 달리 쇠가락과 상쇠의 부포놀음이 발달해 섬세하고 어려운 기교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가락과 동작이 빠른 편이고 단체기술이 발달됐다는 것이다.

죽동농악은 죽동마을 사람들을 통해 전승돼 온 마을농악이다.

죽동농악은 죽동마을의 의례, 노동, 놀이, 연희 등과 결합돼 이어져오고 있다. 농사철에는 세 벌 만드리를 하면서 대기(덕석기)를 세워놓고 기세배와 만드리굿을 쳤고, 행여 가뭄이 들면 신선바위 기우제를 지내면서 흥겨운 놀음판을 펼치기도 했다. 회갑연이나 마을 잔치가 있을 때마다 악기를 꺼내 흥겨운 굿판을 펼치는 등 죽동농악은 죽동 사람들의 삶의 반영이었고 그들만의 자부심을 담은 마을문화였다.

◇농악의 계보를 잇는 거장들

현재 전남 지방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죽동농악은 마을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던 농악의 거장 故 기창수, 강순동과 같은 옛 곡성농악의 거장들의 기예능을 잇고 또 이들이 보유자로 인정받고 있는 유서 깊은 농악이다.

때문에 곡성농악의 역사성은 분명한 계보를 보여준다. 50여년 전만 해도 기창수 상쇠를 비롯한 우수한 농악 명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죽동마을에서는 마을 스스로 당산굿, 걸립굿, 두레풍장은 물론 호남좌도농악의 전문적인 판굿까지도 자체 시연이 가능했다. 특히 기창수 상쇠는 호남좌도농악의 중시조였던 진안 전판이로부터 사사받은 이화춘의 전통을 잇고 있었다.

기창수·강순동에 이어 지금은 이 마을에 사는 상쇠 박대업이 대를 잇고 있다. 그는 2002년 4월 19일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박대업은 외가가 죽동마을로 갓난아이 시절부터 이곳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처음 죽동마을을 민속마을로 육성했으며, 보존회장을 맡기도 했다.

박대업 어르신은 청년시절 농악판을 접었지만 그의 나이 서른 다섯 되던 1982년 귀향했고 이때부터 기창수·강순동 스승에게 농악을 사사받았다. 하지만 이때 이미 노쇠한 두 스승은 눈과 귀가 어둡고 기력이 노쇄해 3년을 채 지도하지 못하고 무지개 강을 건너게 된다.

곡성죽동농악은 마당밟이나 당산굿과 같은 마을굿에서 시작해 인근마을에 걸궁을 하는 들당산과 날당산굿, 그리고 판굿까지 전체를 전승하고 있다. 마당굿은 좌도농악의 가장 소박한 단계이면서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굿으로, 먼저 길굿을 치며 마당에 들어선 후 문굿·마당굿·조왕굿·장독굿·우물굿을 친 뒤 다시 길굿을 치면서 이동하게 된다.

곡성농악은 구성력 또한 뛰어난 예능이다. 판굿의 구성에서 문굿, 앞굿, 뒷굿 등 각종 굿을 구성하고 쇠가락, 상모짓, 소리, 춤 등 여러 부문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보이는 등 어느 농악에 뒤지지 않는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죽동농악의 다양한 공연들을 보며 단순히 악기만 연주하는 것이 아닌 춤과 노래, 극이 어우러진 전통종합예술로서의 농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죽동마을 사람들은 전라도 좌도 농악의 뿌리를 잇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전국 어느 곳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세련된 판굿을 전수하며 농악을 마을의 축제로 잇고 있다. 그래서 곡성농악은 전라 좌도농악의 예술성과 전통성의 근간이라고 평가받는다.

/최지영 자유기고가·곡성=안용식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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