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6일(수요일)
홈 >> 기획 > 기획일반

[청춘의 이름으로 세상에 고하다] 상생의 공동체, 그 유쾌한 흐름
조건 없는 나눔…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더라
등급·수치에 익숙해진 일상 속 고정화된 틀을 깬 신선한 충격
각박해진 사회, 가치의 재발견…이타적인 삶으로 배우는 상생

  • 입력날짜 : 2019. 10.03. 17:46
장다정 <전남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학부 때 ‘환경 과학’이라는 교양강의를 수강했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는 특이한 과제를 내주셨다.

잘 사용하지 않거나, 여러 개 있어서 필요 없는 여분의 물건, 혹은 그냥 가져오고 싶은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 과제였다. 거의 매 수업시간마다 누군가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왔다.

교수님께서는 그 물건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필요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신 후, 적절히 나눠 주셨다. 책, 과자, 액세서리, 학용품, 생필품 등 평범한 물건들부터 굉장히 특이한 물건까지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지구본도 있었다.

이 별난 과제는 ‘Flowing(이하 플로잉)’이라는 것인데, 유용하지만 자신은 잘 안 쓰는 물건, 혹은 잘 쓰지만 그냥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은 물건을 타인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나눔’이다.

물물교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물물교환과는 다르다.

물물교환에 쓰이는 물건은 교환가치를 지닌다. A의 물건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값어치를 하는 B의 물건과 맞바꾸는 것이 물물교환이다. 하지만 플로잉은 나눔에 가깝다. 플로잉에서 물건을 제공하는 사람은 자신이 제공한 물건에 상응하는 다른 물건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선물’처럼 그냥 주는 것이다.

플로잉 일화가 또 있다.

수업에서 플로잉을 처음 접한 이후, 동아리 모임에서 종종 플로잉을 하곤 했다. 수업 때 했던 것과 다른 점은 교수님 주도가 아니라 모임의 구성원 모두 참여했다는 점과, 구성원 모두가 제공자인 동시에 수혜자였다는 점이다.

유용하지만 자신은 쓰지 않는 것, 혹은 어떤 사연이 있는 물건 등을 가져와서 모아 두고, 갖고 싶은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SNS등을 통해 플로잉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OO 필요하신 분, 그냥 드릴게요.”, “OO나눔 합니다.”

화폐경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할 때, 그것의 가치를 매기는 것에 익숙하다. 진열대에 표기된 가격이 그 물건의 가치를 말해주며, 영수증에 찍힌 무수한 숫자들이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의 가치를 나타낸다.

아이가 숫자를 배우고, 경제관념이 조금씩 생기면 하다못해 자신의 용돈이 얼마고, 그것으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막대 아이스크림은 200원, 떡볶이 한 컵에 500원, 수업시간 준비물은 2천원, 만화책 한 권에 3천원….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이러한 경제적 가치를 ‘플로잉’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과자를 내놓고 지구본을 가져가도 되고, 신발을 내놓고 볼펜 한 자루 가져가도 된다. 아무것도 안 내놨지만 누군가가 내놓은 책이 마음에 든다면 가져가도 되고, 인형을 30개 내놨지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면 안 가져가면 그만이다.

플로잉에서 오고가는 재화와 서비스에는 우열이 없다. 그 과자가 500원인지 5만원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그 누구도 과자의 경제적 가치를 정하지 않는다.

처음 접했던 플로잉은 지금까지도 인상 깊고,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일반적인 가치 체계를 뒤집어버린 것이 개인적으로 정말 유쾌했기 때문이다. 평가하고, 등급을 나누고, 가치를 매기는데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 평가되고, 재단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받아쓰기 몇 점, 중간고사는 몇 등, 수능 몇 등급, 토익은 몇 점….

여기에 더해 궁금하지도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도 넌더리가 난다.

누구는 달리기 몇 위, 어떤 선수는 무슨 메달, 편의점 알바 시급 얼마, 개인 과외는 시급 얼마, 패스트푸드 점원 연봉 얼마, 의사는 연봉 얼마, 국회의원 연봉 얼마, 건물주는 월 수익 얼마….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 ‘귀천’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 보다 해야 되는 것을 선택한다. 물론 어떤 일을 얼마나 하는지에 따라서 개개인이 받는 대가는 다를 수 있다.

노동 강도, 위험성, 시간 등 고려해야 될 사항도 많다. 하지만 수많은 사항을 고려하더라도, 10배 이상 임금 격차가 날 만큼 각 노동의 가치가 다른 것인지 때로 의문이 든다.

평가하고, 등급을 나누고, 가치를 매기는 것은 누가 하는 것인가?

재화와 서비스, 노동의 가치를 수치화 하는 것이 편리하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합리적이라고 해서 모두 합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일주일을 굶은 사람에게는 천원이면 살 수 있는 삼각 김밥 한 개가 내일의 삶을 약속할 만큼 큰 원천일 수 있다. 맑은 계곡 옆에 사는 사람이 물 때문에 생사가 오락가락 하지 않겠지만 사막에서 며칠째 헤매는 조난자에게 물은 생명이다.

계곡 옆에 사는 사람은 편의점에서 500ml 페트병에 담긴 물을 1천원 주고 사는 것도 아깝다고 할 수 있지만, 사막에서 목이 타들어가 당장이라도 탈수로 죽을 것 같은 사람은 100만원이라도 주고 그 물을 사고 싶을 것이다.

응급처치의 한 가지인 심폐소생술은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두 시간 교육으로 배운 간단한 심폐소생술이 거리에서 갑자기 심장이 멎어 죽을 뻔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내가 심폐소생술을 위해 투자한 2시간이, 내가 구하게 될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20년의 삶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플로잉(Flowing)은 ‘흐르다’(flow)라는 의미도 있다. 흐르게 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린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 한 조각을 누군가에게 건넬 때, “그건 고작 천 원짜리야”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내가 친구에게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건넬 때, “그 편지지는 500원짜리야”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어린아이가 건넨 과자 한 조각을 누군가는 평생의 따뜻함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내가 쓴 편지가 한 장이 친구에게 고된 하루를 버틸 온기가 될 수도 있다. 끊임없이 흘러가게 하는 것. 나눔, 그뿐이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