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7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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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의 일본 작가 비평] (9)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외국인 단상, 저항과 각성의 언어

  • 입력날짜 : 2020. 01.15. 19:34
1928년 발표한 시 ‘어머니’를 새롭게 게재한 마쓰다 도키코 자선집 9.
외국인이 좋다고 고백

지난 8회째의 연재에서 마쓰다 도키코가 1938년 ‘월간 러시아’ 9월호에 발표한 조선인 교류체험에 대해 언급했다.

계속해서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배길 수 없는 이유는 일본내지의 외국인을 본 인상도 담담히 털어놓기 때문이다. 마쓰다는 에세이 ‘외국인과 관련한 수상’ 뒷부분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감회를 토로한다.

“우리나라 사람과는 또 다른 다정한 마음으로 외국인에게 다가가려는 경향이 내게만 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왠지 외국인이 좋다.”

마쓰다가 박영생과의 인간적 교류에 대해 상세히 고백한 뒤 곧바로 외국인을 접한 자신의 심경을 밝히면서 언급한 부분이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도 마쓰다가 신분이나 출신과 상관없이 사람을 대했으며 애초부터 글로벌한 시야를 지니고 있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서양인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를 바 없었다. “몸집이 큰 것도 마음에 들고 표정이 노골적이며 열정적인 점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에 마쓰다의 견해가 명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쓰다는 외국인이 일본을 보는 예리한 비평 또한 잊지 않았다. “일본이 그 사람(외국인)에게 어떠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집에 돌아가면 그 사람은 고국의 지인에게 일본은 너무 적적해서 견딜 수 없다고 적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마쓰다 도키코가 집필한 초판본.
그럼 중국인에 대한 인상은 어땠을까? “벌어지고 있는 전쟁 중에(중략) 중국 민중의 생활과 일본의 생활을 생각함에 있어서, 삶의 보람이나 죽음, 민족, 인류, 이상, 미래, 현재 등의 언어가 내포하는 모든 가치나 의미에 대한 나의 의식은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식민지 조선 출신을 비하하고 전쟁 중 중국인과 이국노동자를 멸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그녀가 보인 인간애의 정신. 소외층이나 노동자계급에 속한 한 국적을 떠나 모두 평등하다고 본 그녀의 지론과 맥이 닿는다.

물론 이런 시점이 마쓰다에게만 엿보이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마쓰다가 박영생을 만난 2년 전인 1924년 저명한 일본 근대작가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는 ‘만주 조선의 행락(行樂)’이라는 기행문을 발표한 바 있다.

거기에서 다야마는 을밀대(乙密臺)의 자연 풍광에 대해 “실제로 그곳에 갔더니 정말로 조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즉 헤이안(平安)시대, 후지와라(藤原)시대의 느낌이었다. 역시 일본은 옛날에는 조선과 똑 같았다. 조선의 풍속과 느낌을 그대로 후지와라시대, 평안시대가 모방한 것이다. 일본의 옛 교토(京都)도 꼭 그러한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라고 회상했다.

지배와 피지배 하의 어두운 시대에 진흙 밭에 핀 꽃과 같은 심미적 감성이라고나 할까. 일본제국주의의 시대적 조류에 순응하는 다야마의 언어와는 판이하다. 마쓰다의 체내 온기가 순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야마의 체내에서도 부분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소외층에 특별한 관심 기울여

마쓰다 도키코 문학기념실 앞 팻말.
실은 당시 마쓰다에게 세상을 이타적 시선으로 바라볼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상경 후 마쓰다의 생활은 자립의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하는 고난의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쓰다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 집념을 내보인다. 아나키즘 운동의 지도자 오스기 사카에(大杉榮)의 활동 거점지인 노동운동회사를 방문하기도 하고 메이데이의 행사에 참가하기도 한다. 알려진 사회주의자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의 장녀와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하지만 마쓰다의 생활은 참으로 불안정했다. 일정한 수입이 없었으므로 때로는 양말 공장에서 때로는 자전거 공장에서 여공으로 일하면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오누마와 결혼하게 된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고 있었거니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지였기 때문이다.

마쓰다는 노동자의 애로와 고통을 누구보다 자각하고 있었기에 마이너리티의 삶에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원 생활 후 이어지는 여공 생활과 진보적 이념을 수용하는 자세가 이를 잘 증명한다. 조선인을 비롯해 일본내지에서 마이너리티의 길을 걷는 이들과 부담 없이 소통하는 것도 그와 같은 체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1928년 최초로 발표한 ‘유방’이라는 시는 얼마나 그녀가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몸속 깊이 수용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노동자의 삶에 애정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유방

태어나면서부터 프롤레타리아
태어나면서부터 영양실조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는 유치장
하지만 아들이여!
먹고 싶어서 안달하는 너의 목소리에서
나는 새로운 힘을 느낀다
너의 운명인 너의 양식
지금이야말로
복수의 의지가 끓어오른다
바짝 마른 양쪽의 유방이여! ―1928년


마쓰다는 오누마 와타루와 결혼 후 치안유지법 체제 하에서 노동운동으로 유치장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가는 남편을 지켜봐야 했다. 자신도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전단지 배포 중에 체포되기도 하고,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애를 업은 채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쓰다는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일본정부가 사회주의자와 노동자계급을 철저히 억압한 1928년의 ‘3.15대탄압’ 2일 후 마쓰다는 도쿄 고마쓰가와(小松川)경찰서로 장남과 함께 끌려갔다. 나중에 당시를 회고하며 이 시를 “분노에 차서 썼다”고 술회한 바 있다.(마쓰다 도키코 사진집, 34p 참조)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집필활동을 펼치는데, 마쓰다의 지배계급과 노동자탄압 대상에 대한 저항의식은 억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것이었다.


어머니 통해 노동자 애환 절절히 느껴
마쓰다는 청춘기를 보내면서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적인 삶이 자신에게도 숙명처럼 주어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해에 발표한 ‘어머니’라는 시는 이를 뒷받침한다.

어머니

어머니,
언제나 나를 위해 울며 슬퍼하시는
나의 어머니

무엇이 당신을 괴롭히나요
무엇이 당신을 그리 울리나요

지금이야말로 분명히 말하죠
그건 우리 때문이 아니라고

이 착취망 속에 몰린 나를
고난에 맞서게끔 일으켜주시고
피를 빨고 뼈를 갉으려는 그들에
맞서게끔 하셨죠

그들이에요,
그래요, 어머니가 계시는 광산에도
내가 있는 공장에도
형이 있는 배 속에도
우리의 피와 기름으로 부풀은 자들
증오해야 할 독거미들이
끊임없이 착취망을 치고 있어요

어머니, 내 어머니
그자들이야말로
당신과 나 사이의 진짜 적!

이제 당신은 늙고 쇠약해졌지만
나는 젊고 강하니
내 뒤로 와요, 내 손을 잡고 와요

그리고 끊임없이
잠복하고 있는 이 착취망.
이 견고한 철쇄를 풀어헤치고 나아가요
눈물을 닦아요
어머니
우리는 조만간 훌륭한 세상을
맞을 거예요. ―1928년
(밑줄은 발표 당시 탄압 속에서 복자로 표기되었음, 출전은 ‘마쓰다 도키코 자선집’ 9권, 사와다출판, 2009년)


‘회사 측의 착취에 왜 시달려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현실을 타파해야 하는지’를 묻는 노동자 출신 모녀의 고뇌가 절절히 느껴진다. 어머니와 딸은 혈육이지만 끊임없이 옥죄어오는 그들 앞에서는 또한 연대의 동지. 젊은 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착취망을 헤치고 나아가자고 노래하는 모습이 압권이다.

김정훈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전남과학대 교수>
마쓰다는 2004년 4월 ‘신문 아카하타’ 인터뷰에 응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중략) 아버지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략) 어머니에게는 두 번째 남편도 진폐증으로 세상을 떴고 세 번째 남편은 광산노동자였는데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죠. 어린 영혼은 매우 민감하다고 할까요. 당시 어린 나의 영혼에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게 보였죠.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풍부한 감수성으로 훌륭하게도 나를 이끌어주시죠.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옮겨와 이러한 작품을 쓰게 해주었어요.”


백수의 축하회를 앞둔 시점에서 동화집 ‘분홍색 다브다브 씨’ 출판에 즈음해 언론 인터뷰에 응해 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 동화집 집필 시의 심경만을 반영하는 내용이 아니다. 마쓰다의 모든 작품에는 어머니의 자신에 대한 자상함과 각별한 애정이 배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약자를 학대하는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과 극복의 의지가 각성의 언어로 새겨져 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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