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태양’의 목차 첫페이지(1909년 11월 10일)

지난 회의 글에서 바바 고초가 작가 중 일찍이도 안중근의 이토 사살 이유에 대해 언급한 사실을 거론했다. 바바가 집필한 내용은 1909년 11월 10일 잡지 ‘태양’의 ‘명사(名士)의 이토관’이라는 지면에 실렸다.

그가 ‘제국주의 순교자’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토관을 좀더 살펴보자.

- 바바 고초의 이토 사살 이유 언급 근거 -
바바는 “정치가로서 이토가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잘 모르겠다”고 하며 서두를 꺼낸다.

예사롭지 않은 시작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을 볼 때 무엇보다 개인의 지위를 주목”하는 것을 지적하고 이토가 화려한 일생을 보낸 사실을 소개한다. 하지만 바바는 그런 지위 때문에 제국주의에 대한 자신의 시점을 굽히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토가 “제국주의를 대표”했기에 쓰러졌다고 보았거니와 ‘제국주의의 순교자’라는 호칭을 그에게 씌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 행위의 의의(에 대해 말한다면) 매우 복잡한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행하면 완전히 부덕한 것임에도’, ‘다른 사람이 행하면 그 사람의 덕성 덕분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라는 그의 주장에 눈길이 쏠린다.

이는 지위 때문에 특정한 사람의 행위가 부덕하게 평가받기도 하고 덕성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모순을 적확하게 꿰뚫은 견해이기도 하다.

바바는 이토를 “제국주의의 실행 장본인”으로 규정한 만큼 모든 이가 그의 지위 때문에 그의 행위를 덕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셈이다.

바바가 냉철한 두뇌로 상대적 평가를 펼쳤음을 방증한다.

바바는 말미에 비로소 문학적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한다. 문학의 본령과 역할을 염두에 두고 문학자의 사상과 일상에 대해 토로하는 것이다. 바바는 문학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채 “독거적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다음에 덧붙인 그의 글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바는 “살아 있는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거기에 이의 없이 따르는 자가 다수인 지금의 일본”이라고 거침없이 기술한다. 이 기술은 이토가 안중근에게 살해당한 것이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자”였기 때문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일본인과 일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하얼빈 역내(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곳)

그러기에 바바는 자신과 같은 문학인은 사회(세상)와 접점을 모색하지 않고 ‘독거적 생활’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바바는 자신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이유를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풍토가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세상과는 거리를 두는 자신의 시선을 상대화한 표현임이 틀림없다.

나아가 바바는 문학자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를 다른 직업인의 사상이 희박한 곳에서 찾는다. 스스로 사상의 투철함을 내보인 견해다.

바바 고초의 형 바바 다츠이(1850-1888)

고토쿠 슈스이도 그렇지만 바바도 고치현(高知懸) 도사(土佐)의 자유민권운동 분위기가 팽배한 풍토 속에서 자랐다. 급진적인 형 바바 다츠이(馬場辰猪)의 사상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거니와 바바 다츠이에게서 배운 고토쿠 슈스이의 사회주의나 아나키즘 활동을 지켜보던 터였다. 따라서 자치라거나 지배라는 개념에 바바는 매우 자각적 의식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바바 고초가 1912년에 아나키즘의 거목 오스기 사카에(大杉榮)와 아라하타 간손(荒畑寒村, 고토쿠 슈스이의 내연의 처인 간노 스가코의 전 애인) 등이 창간한 ‘근대사상’(근대사상사)의 집회에 참석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작가 중에 가장 먼저 안중근의 이토 사살의 이유를 거침없이 쏟아낸 근거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그의 반골적 기질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 고토쿠 슈스이의 안중근 상찬 이유-
한편 그런 기질을 행동으로 실천한 인물은 역시 고토쿠 슈스이.

도대체 왜 그가 안중근의 이토 사살을 상찬하는 한시를 쓰고 안중근의 사진을 조합한 사진엽서를 품고 다녔을까?

고토쿠 슈스이 평론문집 ‘해방’ 1월호(1929년 1월1일 발행)

이 점을 점검하기 위해서도 나중에 천황 암살 기도 모의에서 제외된 고토쿠가 천황 암살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자료제공=가메다 히로시)

첫째, 시오타 쇼베 와타나베 준조 편 ‘비록 대역사건’(춘추사, 1959) 등을 통해 네 사람(고토쿠를 포함해 미야시타, 니무라, 간노)의 가을을 향한 계획은 어느 정도 구체성을 띠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둘째, 네 사람의 예심조서를 통해서도 천황 암살에 대해 논의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구체적인 언급이 나온 것은 간자키 교시에 의해서다.

23회에서 서술했지만 간자키는, 네 사람(고토쿠를 비롯한 4명)이 돌아가며 폭열탄의 빈 케이스를 쥐고 다다미 위로 내던지는 연습을 했다는 것을 적시했다. 또한 1910년 초의 고토쿠 한시가 천황 시해를 암시하는 점도 지적한 바 있다.

셋째, 간노의 ‘ぬきが記’(발췌기록) 등을 통해 고토쿠가 1909년 폭열탄 구조에 대해 친구인 오쿠노미야 겐시(奧宮健之)에게 묻고 자신의 서생인 니무라 다다오를 통해 폭열탄 제조법을 미야시타 다키치에게 전한 점도 밝혀졌다. 간노의 그 기록에는 ‘奧宮健之氏來訪’이라고 또렷이 적혀 있다.(간노 스가코, ‘ぬきが記’(‘자유사상’ 1호, 1909년 5월4일)

오쿠노미야는 아나키스트가 아니었는데 폭열탄의 구조를 고토쿠에게 가르쳐 줬다고 해서 대역사건의 피고의 한사람이 돼 처형당했던 인물.

고토쿠는 예심조서에서 직접 오쿠노미야에게 폭열탄의 구조를 배운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넷째, 미야시타 다키치가 출입하던 평민사(고토쿠의 자택)에서 고토쿠와 간노가 발행한 ‘자유사상’의 창간호의 내용은 그가 천황 암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논거를 보충하는 자료다. 발간의 변에는 일체의 미신에서 벗어나자. 일체의 세속적, 전설적 압제에서 벗어나자(‘자유사상’ 1호)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므로 나중에 행동으로 옮기려는 과정에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간노의 투옥 등으로 결행이 연기됐다고는 하나, 모의 진행 과정에서 고토쿠가 관여한 것을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모의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내연의 처인 간노나 서생 니무라 다다오와 고토쿠가 동거하는 일상이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기실 자유민권운동 시대의 고토쿠의 천황 인식이 일반적 수준을 벗어나거나 보통 시민의 시점과 간극을 보이지는 않았다.

‘만조보’의 기자 생활을 하던 고토쿠가 우익성향의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그곳에서 뛰쳐나와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와 함께 평민사를 창간하고 평민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1903년. 이미 고토쿠는 1902년 ‘암살론’이 포함된 ‘장광설’(長廣舌)을(人文社) 간행한 뒤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고 있었다.

고토쿠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러시아 혁명가 등과 친교를 쌓은 후 귀국해서 직접 행동론을 주장하며 아나키즘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것은 1906년 무렵. 직접 행동론을 기치로 내건 그가 일본제국주의의 조선 식민지배와 관련해서 보인 행동은 획기적인 것이었다.(조선 식민지배 강화에 대해 항의하는 결의문 등 참조)

고토쿠는 크로포토킨, 바쿠닌, 말라테스타 등과 같은 서양의 아나키즘 이론가의 서적을 번역하며 “지배가 없고 국민이 위로부터의 권위나 권력의 대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자치를 행하는 상황(말라테스타, ‘아나키’)을 절대적 가치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최근 고토쿠 등이 번역한 서적이 신채호는 물론 1920년 후반 학생운동에 앞장선 조선의 독립가에게도 식민지 지배 극복을 추구하기 위한 이론서로 읽히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아주화친회(亞州和親會) 등의 활동을 통해 동양 평화와 동아시아 국제연대를 모색하는 일에 앞장선 것도 유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일 것이다.

안중근이 추구한 평화 사상과 그의 노선 아나키즘 사이에는 분명 다름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임, 전남과학대 교수

안중근은 카톨릭에 기반한 종교적 신념을 품고 민족자존을 회복하기 위한 일심으로 독립 의지를 불태우며 동양 평화를 주장했다. 이에 반해 고토쿠 슈스이는 모든 권력을 거부하는 무정부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며 권력 지배가 없는 절대적 자유와 인간해방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연대를 부르짖었다.

신념과 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토쿠가 안중근의 거사를 실천적 테제로 인식한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고토쿠에게 안중근은 그가 평소 품어온 혁명적 꿈을 현실로 재현해 보여준 행동의 표상이었음이 틀림없다.

그가 품속에 간직하던 안중근의 사진엽서는 곧장 어떤 특정한 행위로 옮김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한시를 되뇌며 혁명 정신을 다지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기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이 염원하던 무정부주의 이념 실현과는 다르지만 직접 행동을 통해 불법적 식민지배를 강행한 권력자를 사살하는 모습을 안중근은 당당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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