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0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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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0주년기념] 장경화 '오월의 미학'
<1> 프롤로그
‘5월광주’ 민중미술, ‘용서’를 넘어 ‘평화의 미학’을 담고 싶다

  • 입력날짜 : 2020. 02.13. 19:16
오윤(1946-1986) 作 ‘통일대원도’( 1985) 홍성담(1955- ) 作 ‘대동세상’ (1984) 임옥상(1950- ) 作 ‘보리밭’ (1983) 최병수(1960- ) 作 걸개그림 ‘노동해방도’ (1989) 신학철(1943- )作 ‘모내기’ (1987) 위의 작품은 1987년 전시회에 출품돼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몰수돼 작가에게 돌려받지 못하였다.
▶광주의 이름으로 새기는 평화
1980년 대학생 신분이었던 필자는 시위현장과 골목길에서 공수부대의 곤봉과 총과 대검에 죽음을 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학생과 청년, 광주시민을 목도하고 두려워 집으로 숨었다. 광주 5월은 어둠의 무거움이 새벽을 짓누르고 모든 사람들의 귀와 눈이 가려진채 끊임없던 무성한 소문에 소문만이 가득했다. 그중 하나는 ‘곧 미군이 광주로 진입해 우리를 구해 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필자는 10년 전(201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이해 전국에 흩어져 작품 활동에 전념하는 한국민중미술 대표작가 30명 선정과 그들의 스튜디오 방문, 인터뷰로 ‘광주매일신문사’ 지면에 소개했다. 이는 ‘5월 광주’라는 창을 통해 우리가 역사 속에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꿈꾸는지를 우리시대의 미학으로 탐구하려 했던 것이다.

전남도청의 마지막 새벽, 어느 여성의 가두방송은 지금도 생생하다. 비겁한 겁쟁이였던 필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가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너머 죄책감은 점차 무거운 책무감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학예원으로 공직생활 중에 필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미술을 광주정신이라는 미학의 창으로 탐구하고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러한 일중 하나가 한국민중미술 작가 30인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5월광주’ 시각으로 분석해 단행본을 발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광주매일신문’의 지면에 게재했던 원고를 다시 정비해 ‘오월의 미학-새벽을 여는 뜨거운 가슴’을 발간했다.

이제 다시 10년이 지나 ‘광주5월’이 확장된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접근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의 변화는 ‘광주5월’ 정신은 민중미술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광주5월’은 40년의 시간을 거칠게 호흡하면서 그토록 무거웠던 어둠을 조금씩 조금씩 걷어내어 왔다. 이제 ‘광주5월‘은 아시아로 지구촌으로 확장돼 국가와 민족은 다르지만 그들의 가슴속에 ‘광주5월’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역사앞에 당당한 그림으로…
‘인권’과 ‘민주’가 우리의 곁에 다가오면 새벽녘 푸른 기운이 스며들 듯 그 기운을 느낄 여유도 없이 ‘평화’가 곁에 다가오게 된다. 평화가 우리 곁에 있을 때 한반도에는 ‘통일’의 기나긴 장정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출발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외세의 침략에 죽창으로 마주했던 이름없는 의병에게서…. 목숨을 내려놓고 항일을 했던 독립운동가에게서…. 군부독제 앞에 몸으로 맞선 민주투사에게로 점화돼 갔는가? 이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기나긴 역사의 장정에 나라와 시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마다 광주와 호남은 나라를 지키는 ‘횃불’이 됐다는 점이다. 그러한 연장선에 ‘5월 광주’의 위대한 시민정신은 ‘6·10민주운동’의 용기로 그리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무혈의 ‘촛불’은 문화운동으로 다시 이어져 우리시대 광장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79년, 시대정신과 환경에 의해 민중미술은 화가들은 음습한 작업실에서 주린 배를 막걸리와 라면으로 달래고 붓을 세우기 위해 연마를 거듭하면서 시위현장으로 뛰어 다녀야 했다. 당시 시대의 무거움과 고통 앞에 온몸으로 맞서왔던 민중미술가에게는 한가지의 희망이 있기에 힘든 시간들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언젠가는 평화시대가 올 것이며, 역사 앞에 그 당당함으로 후회하지 않는 그림을 그렸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술에 감동은 ‘서정성’에서 출발된다. 민중미술가 역시 작품에 서정성을 담아내고 자는 의도를 작가별 차이는 있지만 읽어낼 수 있다. 작가마다의 독창적인 미학어법과 형상성으로 감추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작품에는 무거운 형상과 이미지가 시선을 가리지만 그 형상과 이미지 속의 메시지와 기호는 평화로 귀결돼 진다.

그러나 일반대중은 민중미술에 평화의 메시지와 기호를 읽어내지 못하고 거북하고 무서운 미술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민중미술처럼 건강하게 우리민족의 정서와 시대상황을 기반으로 긴 시간을 자생하면서 정당성과 함께 진정한 현대성을 확보해온 예술양식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민중미술’이라는 새로운 용어와 ‘걸개그림’의 양식을 탄생시켰다. 특히 시위현장을 이끌어 ‘민주화’라는 성과를 일궈내는데 큰 기여를 했음은 잘 알고 있는 터이다.

과거 긴 시간동안 우리의 역사는 일본과 미국에 의해 예술양식이 수입돼 왔으며, 그리고 우리는 이 양식들을 우선적으로 존중해 왔다.

현재도 그러한 연장선에서 자본과 타협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본 지면에서는 자생적이고 독창적인 우리의 예술양식인 ‘민중미술’을 40년이라는 시점에 다시 대중적 접근을 통한 재평가를 희망한다.


▶다시 40년…새로운 길을 제시하다
이번 40주년을 맞아 본 지면의 작가선정은 크게 3가지로 확장시키려 한다.

첫째는 지난 10년 전, 본 지면에서 누락된 민중미술가를 추가로 소개하려 한다. 당시는 물론 소홀함이 없도록 전국에 흩어진 민중미술가의 스튜디오를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으나 과정 중에 더러는 일정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하기도 했으며, 더러는 지방에 숨어있어 연락되지 못했던 작가도 있었다. 그러한 작가를 이번 기회에 소개하려 한다. 그리고 최근 젊은 작가의 독창적인 어법과 형상성으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른 민중미술을 열어가고 있는 작가도 추가로 탐구하려 한다.

둘째는 평화를 주제하는 자연주의 경향의 작가로 역사와 시대성을 은유적이면서 서정적으로 담아내고 자는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가는 과거에는 서정적으로 자연을 재현하는 자연주의 경향이었다. 그러나 ‘광주5월’을 목도한 이후 시간이 가면서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닌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시대와 역사를 평화의 주제로 자연에 담아내는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을 작가의 작품을 탐구하려 한다.

셋째는 뉴 미디어를 활용하는 작가를 소개하려 한다. 이러한 경향의 작가는 대다수가 젊은 작가다. 이들은 뉴 미디어라는 양식을 통해 평화적 이미지 속에 역사와 시대성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작가이다. 그리고 이들은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어 ‘광주정신’을 국제적 보편화된 자기미학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선봉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의 작가는 아직은 소수다.


크게는 이러한 3가지의 방향으로 작가선정과 탐구의 결과를 본 지면에 소개하려 한다. 40년이 지난 ‘광주5월’은 작가별로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하는 작가적 태도나 미학적 아우라 관점도 있을 것이다. 특히 ‘광주5월’을 경험하지 못했던 최근 젊은 작가들은 ‘광주5월’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형상화하는 가에 대한 탐구도 함께하려 한다. 다양한 관점의 풍성한 ‘광주5월’ 미학을 소개하겠다는 노력을 밝힌다.


▶작가 선정 3가지 방향
‘민중미술’의 태동은 유신정권 말기 광주(1979, 9)와 서울(1979, 11)에서 각각 출발됐다. 그리고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사건은 ‘광주5월’이 확실한 명분을 제공해 주어 치열하게 투쟁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슬로건은 광주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었다.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민중미술은 광주에서 출발한 예술운동이라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80년대 홍성담 작가의 주도는 광주시민 목판화운동과 전국 주요대학 미술패와 함께 시위현장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이러한 민중미술은 다시 40년이 지나 광주정신을 올곧게 다시 정비해 우리시대의 화두를 읽고 미래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40주년을 맞이한 ‘광주5월’은 과거의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를 찾아 용서하고 싶어 한다.

‘용서’ 자체가 평화요, 광주정신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아직 용서해줄 40년 전, 5·18의 책임자가 나타나질 않아 답답해 한다. 용서를 해주고 싶으나 용서할 대상자가 없는 것이다. 이 지점의 민중미술은 용서를 뛰어넘어 ‘평화의 미학’을 담아내고 싶다. 이제는 광주는 용서하고 평화를 찾아가고 싶어 하는데…. 민중미술은 그러한 용서의 미학을 역사와 시대 앞에 증언하고 평화와 함께 통일을 향한 메시지를 담아내려 한다. 이는 민중미술에게 우리시대가 쥐어준 숙명적 과제일 것이다.


장경화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관요원으로 학예연구사로 임용돼 28년 근무하면서 제1회·제2회는 광주비엔날레 전시본부에서 파견 근무했다. 뉴욕의 미술관파견(1년)과 금남로분관 개관, 상록전시관 개관, 사진전시관 개관, 서울 G&J광주전남갤러리를 개관시키고 국제교류전 등으로 시립미술관 활동을 확장시켰으며 학예연구관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현재는 조선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광주문화재단 비상임 이사와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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