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4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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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가 품은 국립광주박물관 이야기]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과거로 맺어진 인연…16세기 선비문화 한 단면, 그림으로 투영

  • 입력날짜 : 2020. 05.13. 18:00
작가 미상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 1542년. 작은 사진은 부분도.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조선시대의 계회도(契會圖)
계회도는 조선시대의 양반관료층이 참여한 계회를 기념해 그린 그림이다.

계회를 통해 관료 상호간의 사교와 친목을 돈독히 하고, 이를 그림으로 기록해 남기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계회의 장면이나 기념이 될 만한 행사 내용을 그린 계회도는 참가자 수만큼 그려져서 각자의 가문에 대대손손 물려 내려오며 보관돼 온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양반관료층의 계회는 고려시대에 시작돼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관료들의 경우 관아(官衙)를 옮길 때마다 그 관아의 계회에 참석하기 때문에 일생을 통해 수십 차례 계회를 갖기도 했다. 때로는 같은 해에 태어나거나 과거 시험에 함께 합격한 관원들이 계회를 갖고 기념해 계회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계회도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초기에는 상단에 계회 명칭인 표제(標題)를 전서체(篆書體)로 적고 중단의 넓은 화면에 산수를 배경으로 계회의 장면을 묘사했다.

그리고 하단에는 참석자들의 인적 사항을 관계(官階)의 서열에 따라 적은 좌목(座目)으로 구성돼 있으며 시문(詩文) 등이 기재돼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림의 내용은 배경인 산수를 위주로 하고 있으며 계원들의 모습이나 계회 장면은 아주 작게 상징적으로만 표현돼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로는 계회의 장면이 배경인 산수와 대등한 비중을 두고 표현되다가 점차 계회의 장소도 건물 내로 바뀌고 계회의 비중이 커지면서 계원들의 모습도 크고 자세하게 그려졌다.

또한 형태도 대체로 족자인 축(軸)의 형태에서 책의 형태인 첩(帖)으로 변하게 됐다.

이와 같이 계회도는 대부분의 경우 계회 장면은 물론, 명칭을 적은 표제, 그리고 참석자들의 인적 사항을 적은 좌목 등을 갖추고 있어서 제작연대를 확인할 수 있고 당시 양반관료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점에서 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김인후의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는 1531년(중종 26) 실시한 사마시(司馬試)에 같이 급제한 김인후를 비롯한 7인이 십여 년을 전후해 문과에 급제한 후 1542년에 다시 모여 계회를 갖고 기념으로 그린 작품이다.

당시 모임에 참여한 사람은 하서 김인후 그리고 정유길(鄭惟吉·1515-1588), 민기(閔箕·1504-1568), 남응운(南應雲·1509-1587), 이택(李澤·1509-1573), 이추(李樞·16세기 활동), 윤옥(尹玉·1511-1584) 등 7명이다.

이 그림 역시 조선시대 계회도의 일반적인 양식에 따라 상단에 전서(篆書)로 쓴 표제(標題), 중단의 계회 장면, 하단의 참가자의 관직과 성명, 자와 호, 본관, 부친의 관직과 이름 등을 기록한 좌목(座目)을 갖추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좌목 좌우에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배치한 것이다.

계회도 위쪽에 있는 글은 김인후가 쓴 것이며 하서집(河西集) 10권에도 칠언율시 신묘연방조사계회축(辛卯蓮榜曹司契會軸)으로 실려 있다.

그림에는 산수를 배경으로 강변의 너른 터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7명의 참석자와 2명의 수행원이 보이는데 산수의 비중이 매우 크고 인물은 작게 그려져 있다.

화면의 구도가 화면 오른쪽에 치우쳐 있으며 근경의 언덕과 나무의 묘사, 멀리 떠 있는 듯한 원산의 표현 등에서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산수화 양식을 지니고 있다.

하단의 좌목 좌우에 그려진 묵매(墨梅)와 묵죽(墨竹)은 독립된 그림은 아니지만 연대가 알려진 조선 초기의 작례(作例)로서 의미가 크다.

사군자(四君子)에 꼽히는 매화와 대나무가 계회도에 그려진 데에는 이들이 상징하는 강인함과 꿋꿋함을 본받아 관직에 있으며 그러한 정신을 잊지 않으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계회도는 하서 김인후가 소장한 후 장성의 울산(蔚山) 김씨 문정공(文正公) 대종중에서 보관해오다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계회도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같은 계회도 한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소장돼 있지만 국립광주박물관 소장본의 보존상태가 더욱 뛰어나다.

하서 김인후가 화명 상단의 왼쪽에 초서(草書)로 쓴 칠언율시七言律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衿佩當時一榜歡 (금패당시일방환)
진사에 같이 급제한 당년의 선비들이
科名先後十年間 (과명선후십년간)
십년을 전후하여 대과에 올랐구려.
朝端共路非新契 (조단공로비신계)
벼슬길 함께 가니 새로 맺은 벗이 아니오.
都下分司各末班 (도하분사명말반)
맡은 구실 다르지만 모두 다 말단이네.
隨處未開眞面目 (수처미개진면목)
만나는 자리마다 참된 면목 못 얻어서
偸閒須向好江山 (투한수향호강산)
한가한 틈을 타서 좋은 강산 찾아가네.
相從乍脫塵銜束 (상종사탈진함속)
진세의 속박을 잠시나마 벗어나니
莫使尊前笑語蘭(막사존전막어란)
술 마시며 웃음 웃고 이야기나 실컷 하세.


계회도 하단의 좌목(座目)에 기록된 참가자는 다음과 같다. 하서 김인후는 여섯 번째에 기록돼 있다.

박해훈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관>
承訓郞吏曹佐郞知製敎兼春秋館記事官 鄭惟吉 吉元 本 東萊
父 禦侮將軍行中樞府都事 福謙
奉直郞行兵曹佐郞兼春秋館記事官世子侍講院 閔箕 景說 本 驪興
父通訓大夫行陽川縣令 世瑠
奉直郞行刑曹佐郞兼承文院校檢 南應雲 景遂 本 宜寧
父嘉善大夫全州府尹全州鎭兵馬節制使 世建
承訓郞工曹佐郞兼承文院校檢 李澤 澤之 本 固城
父奮順副尉 嶠
務功郞承政院注書兼春秋館記事官 李樞 機仲 本 永川
父展力副尉 煥曾
從仕郞弘文館正字兼經筵典經春秋館記事官 金麟厚 厚之 本 蔚山
父學生 齡
宣敎郞行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 尹玉 子溫 本 茂松
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都摠府副摠官 思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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