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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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농장
김규랑
문화기획자

  • 입력날짜 : 2020. 06.29. 17:43
초록 숲속에 비가 내린다. 장화를 꺼내 신고 흙길을 따라 걷는다.

나무들과 풀밭 사이를 거닐며 이름 모를 야생 꽃들도 보고 숲 속에 있는 농장으로 가는 길은 늘 설렌다. 상추와 양파 밭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석류꽃들이 활짝 피고 매실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주말마다 오는 도시농부 토종씨앗학교 농장이다. 농장은 도심 숲 속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농장에서 저 멀리 아파트 숲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분에 빠지곤 한다. 도심 한 가운데 이런 숲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방금 씨앗과 모종을 심고 자두나무아래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빗방울 소리를 듣는다.

매주 아이들과 함께 오는 엄마, 부부, 싱글, 교육자, 퇴직자, 직장인 등 서로 다른 이유로 도시농부를 시작했지만 농장에서 만나면 새로 심을 작물과 씨앗이야기, 농사이야기로 늘 웃음꽃이 피어난다. 오래전부터 흙과 숲, 자연과의 교감을 하고 싶었던 내겐 선물 같은 시간들이다.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도시농부 선배들과 이제 처음 시작하는, 아니 생애 처음 농사를 지어보는 초보 도시농부들과 공동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숲속농장이다.

도시농부를 처음 시작하던 날 3개월 전에 심었던 설봉감자와 자주감자를 수확했다. 나는 씨앗을 하나 심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감자들이 땅속에서 자라고 있었다니 자연은 정말로 경이롭다. 방금 수확한 감자를 삶아 농장식구들과 맛을 본 감자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씨앗과 모종 하나에서 수십 개가 열리는 채소들, 쌀 한 톨에서 온 밥 한 공기까지 우리 밥상에 오르는 모든 것이 씨앗 하나에서 시작돼 밥상에 오르고 있었다.

농장에서 배우는 토종씨앗들을 보며 살아있는 생명체 가운데 바로 다음 세대에 이토록 많은 결실을 맺는 개체가 또 있을까? 생각한다. 한 알의 씨앗은 수억만개로 수억만년의 기억을 담은 유전자로 복제돼 세상에 나와 자기만의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도시농부의 삶을 통해 몸으로 터득하게 되는 식물의 이치, 자연의 이치, 몸의 이치, 삶의 이치를 배우고 있다. 농장에서 채소를 키우며 손으로 만지는 흙의 감촉과 초록숲은 도시의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땅을 딛고 감각을 깨우고 움직임을 통찰하면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것 같다. 몸으로 시작하고 몸으로 터득하고 마침내 내가 우주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배움을 학교 교육제도나 책으로만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주변의 존재 모두가 나를 가르치는 스승인 것처럼 내가 만나는 친구와 이웃, 내가 키우는 동물, 내가 보는 꽃과 식물들, 매일 먹는 밥상, 매일 맞이하는 아침햇살도 이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현대인의 삶이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고 뻗어나가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며 일과 소비에 집착해 쉼이 부족했던 우리에게 강요 아닌 휴식을 취하게 된지도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매년 바이러스들이 창궐하고 페스트가 휩쓸었던 시기보다 의료기술과 과학문명이 발달했는데도, 몸에 좋은 영양제를 안 먹어도 면역력이 좋을 것 같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감염되고 있다.

수많은 정치·사회·경제·자연 현상은 자립적인 생태순환사회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사화와 생명공학과 자동화로 가는 요즘, 생명의 지속성이 자연의 이치 속에 있음을 농사를 배우면서 깨닫게 된다. 디지털사회가 세상을 지배하더라도 아날로그 사회와의 교집합은 늘 존재한다.

겉으론 풍요롭지만 내적으로는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사회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려들고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사회구성원인 개인이 존중받는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식물재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규모가 큰 농사는 집단 바이러스에 취약하고 규모가 작아 사람의 손끝이 식물 한 포기까지 미치는 농사에서는 집단적 바이러스나 병해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과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모든 생명체들은 분노와 공격적인 행동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이러스처럼, 하나의 씨앗이 수많은 씨앗이 되고 수많은 공간으로 이동해 살아가듯이 수없이 쪼개지고 만들어져 소우주가 살아가는 공간을 만든다.

농사도 식물마다 재배방식을 달리해야 하는 것처럼, 식물의 성질을 잘 알고 자연을 잘 알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생명이든 몸, 물질을 통해 존재한다.

부모님의 몸과 마음을 빌어 세상으로 나온 씨앗인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 우리는 모두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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