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9일(화요일)
홈 >> 오피니언 > 시론

휴먼 뉴딜이 목표다
최형천
㈜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 입력날짜 : 2020. 08.09. 18:55
코로나19의 장기화를 예상하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한국이 방역에는 선방하였지만 경제위기는 이제부터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는 한국형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소위 K방역으로 자신감을 얻어 K경제의 일환으로 한국형 뉴딜을 제시한 것이다. 그간 제조업과 산업사회에 맞춰졌던 시스템을 디지털 및 그린 뉴딜로 전환하여 산업을 재편하는 정책이다. 더불어 고용안전망 강화 등 고용안정 정책은 뉴딜의 한 축이 아니라 경제의 기본토대로서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히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시는 격차가 벌어져서는 안된다”면서 간접적으로 ‘사람중심의 뉴딜’ 즉 ‘휴먼 뉴딜’을 강조했다. 국가를 개조하는데 있어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수단이라면 휴먼 뉴딜은 목표라는 것을 대통령이 천명했다고 보아야 한다.

휴먼 뉴딜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 건강과 역량 등 사람중심 경제를 구축하는 데 투자하는 혁신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내세웠던 ‘사람중심 경제’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경제의 근본 목표는 국민의 행복한 삶, 안전하고 여유로운 삶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행복수준은 OECD 회원국 중 하위에 머물러 있다. 이제 휴먼 뉴딜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만들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고루 분배하여 사람을 살리는 경제가 되도록 사회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포용적 성장의 길이다.

먼저 성장 중심 경제시스템의 개혁이 절실하다. 이번 팬데믹 위기를 통해 단기효율에 집착하는 신자유주의의 약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경제시스템이 안전이나 유연성보다는 단순한 생산성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효율성을 높인다는 미명으로 모든 부담을 약자에게 지운다. 이제는 사람을 위한 생산성 향상이어야 한다. 성장은 그 질 즉 얼마나 공평하게 나누느냐가 더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방식의 성장은 그 과실이 상위계층에 집중되어 빈부 격차만 더 벌어졌다. 이미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어선 한국은 비록 성장은 더디더라도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번 위기로 우리나라도 고용안전망이 매우 부실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특히 도래할지 모르는 ‘대규모 실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우리 국민은 1998년 외환위기 시 대규모의 구조조정과 해고를 당한 아픔이 있다. 당시 노사 모두가 힘들었고 함께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가 안았으며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상시화 해버렸다. 이제는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이 해고여서는 곤란하다. 실업은 사회적 비용이 더 크기 때문에 고용유지를 전제로 한 기업지원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핀란드나 스웨덴은 실업급여가 월급의 60-70% 정도이며, 2년간 지급한다. 더불어 재교육과 직업도 알선해준다. 그래서 이들은 구조조정이나 기술혁신에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 우리도 국민을 안심시키는 고용안전망이 절실하다. 또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다. 이런 불평등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면 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더 많은 소득에 더 많은 과세를 하는 방식으로 누진세율을 높였다. 그래야만 복지를 강화하고 평등한 교육기회의 제공이 가능하다.

그간 우리사회는 오로지 ‘성장’ 한 방향으로만 질주하면서 모든 시스템이 경쟁 중심적으로 굳어버렸고 그 모순이 이제 드러난 것이다. 지금이 불평등한 사회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론’에서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였는데 그 하나인 ‘차등의 원칙’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 줄 때 사회계층간 불평등이 정당성을 갖는다고 본다. 적어도 사회적 약자계층에게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이루어지는 능력에 따른 차등 분배는 공정하다고 여긴다. 그에 의하면 평등한 제도를 갖추지 않고 공정성을 운운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으며 기득권층을 계속 비호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을 만든다면 세상은 두렵지 않고, 서로에게 관대할 것이다. 좋은 사회시스템이 좋은 국민을 만든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