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7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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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4)나주 ‘금남동’
천년의 세월 오롯이…문화·역사 중심지 ‘우뚝’
나주목 행정치소·향교 자리잡아 읍성권 정체성 그대로 간직
도시재생사업 활발…역사·장소·상징성 지역 대표 손색없어
원님샘·이성계가 심은 은행나무 등 ‘살아있는 박물관’ 각광

  • 입력날짜 : 2020. 11.17. 21:28
금남동은 ‘역사문화도시’ 나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지로 꼽히는 마을이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인 만큼 한옥, 골목, 노거수, 문화유산, 일제강점기 근대건축유산이 어우러져 있다.
‘역사문화도시’ 나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지로 꼽히는 마을이 있다. 국도 13호선, 시도 36호선과 호남선이 관통하고 금성산을 돌아 영산강이 흐르는 도·농복합지역 금남동이 바로 그 마을이다.

금남동은 조선시대까지 전라도를 관할하던 나주목의 행정치소와 향교가 자리잡고 있으며 광주학생운동 진원지로서 나주의 문화 역사 중심지라 할 수 있다. 1981년 나주읍이 금성시로 승격함에 따라 금성마을과 남내마을의 지명을 합쳐 금남동이라 했고, 1986년 금성시가 나주시로 바뀌면서 나주시 금남동이 됐다. 1998년 인구 5천명 미만의 과소동을 통폐합함에 따라 금남동·남산동·향교동을 합해 지금에 이른다.

특히 금남동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주민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며 마을발전에 대한 의지가 강해 역사, 장소성, 상징성, 협력 분야에서 나주를 대표할만하다.


◇나주읍성권 정체성 ‘간직’

금남동은 고려-조선시대까지 약 1천년간 나주목(羅州牧)의 행정치소인 나주읍성 내 서부면에 해당하며, 행정관리인 향리들의 주된 거주지로 나주읍성권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천년 나주목의 상징인 관아, 성벽, 성문, 향교, 골목길, 한옥 등이 밀집돼 있으며, 고려-조선시대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 스토리가 도처에 남아 있다.

특히 나주읍성 서성문은 1895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수성군과 농민군의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 현장으로, 농민군이 많이 희생된 역사적 장소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인 만큼 한옥, 골목, 노거수, 문화유산, 일제강점기 근대건축유산이 어우러져 있다.

현재 나주시의 문화재 복원사업과 전라도 역사문화천년정원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전라도 중심 나주목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금남동은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 아래 성안을 흐르는 나주천을 끼고 자리잡은 명당으로, 노령산맥의 자락인 금성산이 영산강 물을 먹기 위해 멈춰선 용의 형국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조선시대 전국 7대, 11대 명산인 금성산의 산신신앙을 지키는 예조당 터, 전쟁신을 모시는 둑제당 터,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 터 등 전통신앙을 엿볼 수 있는 마을이다.


◇한옥보존지구 개발 등 도시재생 ‘활발’
나주 금성관.

최근 한옥보존지구 개발로 한옥카페와 청년창업거리가 조성되고 있다.

금남동은 ‘살아있는 박물관’을 주제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한옥주민협의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동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전통과 근대문화 자산이 집중돼 있는 매력을 활용해 나주관광의 활성화에 주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한 도시재생사업과 문화재 활용사업이 진행 중이다. 최근 한옥보존지구 개발로 한옥카페와 청년창업거리가 조성되고 있으며, 문화유산 정비와 함께 관광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실제 금남동은 지난 7월 행정복지센터에서 통장단 월례회의를 통해 현재 추진 중인 지역 개발사업에 대한 담당 부서별 총괄 설명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취소·연기된 사업별 주민설명회를 대체하기 위한 자리로 금남동 통장협의회, 시청 도시재생과, 역사관광과 등 6개 부서 관계자 4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민·관 협업의 중심인 통장단과의 소통을 통해 각종 개발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지역민의 관심과 협력을 당부했다.

현재 금남동 지역에서는 ▲나주목 관아 향교 복원정비 ▲나주읍성권·죽림동 도시재생 ▲나주천 생태하천 복원 ▲전통한옥마을 지원 ▲금성산 국립숲체원 진입도로 및 공원조성 등 원도심 역사·문화·생태 자원을 활용한 2천800여억원 규모, 18건의 개발 사업이 추진 중이다.

마을미술프로젝트, 잠사공장을 재생한 나빌레라문화센터 등 문화예술공간이 위치하고 있는 금남동은 전통자산, 전통을 기반으로 한 미래자산이 어우러지는 매력 창출로 느림의 시대, 전환의 시대에 걸맞은 문화관광 마을로 나아가려 한다.


◇마을 곳곳이 문화재·박물관

금남동 곳곳이 문화재고, 박물관이다. 금남동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벼락맞은 팽나무,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주향교 은행나무가 있다. 조선시대 원님이 길러다 먹었다는, 지금도 물이 마르지 않는 ‘원님샘’이 나주고등학교 앞에 존재한다.

1900년대 초에 건립된 나주시 남파고택은 안채, 바깥사랑채, 아래채 등 본디 모습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근대 호남 재산가의 주거 및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지 구 나주역도 있다. 1929년 10월30일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의 댕기를 희롱해 한일 학생 충돌이 발생, 광주를 통해 전국학생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주성당도 금남동에 소재해 있다. 순교성당으로 알려진 나주성당은 성당건물과 한국 최초의 까리타스 본원인 한옥, 근대식의 붉은 벽돌건물인 주교관이 어우러져 있어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힌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려 현종때 거란족이 침입해 현종이 나주로 피난와서 9일을 머무르는 동안 말 4마리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다니던 사매기 거리 ▲조선 중기 학자이자 역사가이며 세계 3대 표류기인 ‘표해록’을 남긴 최부가 살던 집터▲호남 최초의 제칠안식일교회 ▲1910년 광주-목포를 잇는 1등 도로(국도 1호선)를 건설하기 위해 건설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교량 금성교 등이 있다.


◇금성산 야생차 ‘차품평대회’ 금상

지역 특산물로는 자생녹차가 있는데 유래를 알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국가적 산신제(山神祭)를 지냈던 영산(靈山) 금성산에는 예로부터 향기가 높고 맛이 좋은 야생차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

지금 현재도 약수터 위 군락지에는 어른 팔뚝 굵기의 차나무가 야생하고 있다. 금성산의 차는 유명해 구한말에는 우국지사인 다천(茶泉) 정우익(鄭遇益)선생이 금성산 야생차를 손수 따서 차를 만들고 다회(茶會)를 열었다. 삼남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우국충정을 다졌으며, 일제 강점기 때는 차의 향기를 욕심낸 일본인들이 금성산 야생차를 전량 수매했다고 한다.

생산품 ‘금녹’(錦綠)차는 전통방식인 ‘구증구포’ 덖음차로 만들어 지는 수제 녹차로서 향이 맑으며 맛이 깊고 부드러워 위를 깎지 않아 좋다. 발효차인 ‘금황’(錦黃)은 감칠맛이 좋고 화과향(花果香)이 높으며,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차로서 ‘2013년 제6회 대한민국 차품평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차다.

/임후성 기자
/나주=정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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