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8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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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7)곡성 공북마을
황금거북이 알 품은 땅…장수·부자마을 명성 자자
대장부 기개 담은 선비의 칼 ‘낙죽장도’ 명맥 이어
고령의 어르신들 깻잎농사 활력…공동체문화 근간

  • 입력날짜 : 2020. 12.01. 21:14
곡성 공북마을은 아주 오래전부터 풍수지리학적으로 금구몰니(金龜沒泥)의 형국이라 황금거북이가 알을 품은 명당으로 불렸다. 그런 연유인지 공북마을은 장수하는 주민들과 부농이 많은 마을이다.
거북은 예로부터 무병장수와 복을 준다는 상징으로 영물이었다. 황금거북이의 영험함 때문일까! 아미산자락 아래에서 보성강을 주변으로 삼각지를 이루고 있는 공북마을은 장수마을이며 부농으로 80이 넘은 어르신들이 아직까지 깨밭에서 활력 넘치게 움직이며 깨를 쏟고 있다.

또한 마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인 낙죽장도 1대 기능보유자인 고운 한병문 선생의 낙죽장도전수관이 자리하고 있다. 가업을 이어 2대 기능보유자 한상봉 선생이 수작업으로 낙죽에 글을 새기는 모습에서는 숨소리마저 숭고하게 느껴진다.


◇황금거북이가 알을 품은 명당 터

마을표지석.
공북마을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이 거북처럼 생겼다해 박의정지(舶艤亭池) 또는 배기정지(龜龍)라 부르던 마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을 앞 연못에 거북이가 한 마리 살았는데 천년이 되던 날 ‘용이 돼 등천(登天)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 연못은 ‘여정자들(여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심은 정자나무가 있던 들)’ 한가운데 있었는데 지금은 메워지고 주택이 들어 서 있는 곳으로 주민들은 주택이 들어선 이 곳을 샛터라고 부른다. 샛터는 풍수지리학적으로 금구몰니(金龜沒泥)의 형국으로 황금거북이가 알을 품은 땅이라 했다.

아미산자락 아래에서 보성강을 주변으로 삼각지를 이룬 구룡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공북1리 마을이다. 공북리 자연마을에는 공북1리 공북마을과 공북2리 효대마을이 있는데 공북(拱北)이란 칭호는 임금님이 하사한 마을이름으로 그 옛날 효대마을에 소문난 효자가 한명 살았는데 효자는 1년에 한번씩 한양으로 상경해 임금님께 문안을 올렸다고 한다. 먼 길을 오는 효자의 충성심을 불쌍히 여긴 임금님이 마을에서 북쪽을 향해 절을 해도 된다고 하명을 하자 그 후부터 두 손을 맞잡고 북쪽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해서 공북이 됐다는 아주 독특한 유래가 전해온다.

특히 공북나루터가 외부를 나다닐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마을은 배가 머무는 나루터라 해서 박의정지(舶艤亭池)라 했는데 1971년 목사동교가 준공되면서 나루터가 폐지됐다. 공북나루터가 있던 샛터 서북쪽으로는 현재 구호정(龜湖亭)이 있는 지역으로 배가 닿았던 강 건너편은 석곡면 능파정(凌波亭)이 있던 바로 아래 지역인데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길에 건넜던 나루터다.

이 곳 공북마을은 경지정리전까지만 해도 학교가 자리했던 터라 해서 학교밭이라 불렀던 마을로 현 석곡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월미학교’가 마을 앞터에서부터 시작하면서 신식교육의 장을 열었던 곳이다. 1915년에는 마을 왼편 언덕에 기독교 포교당이었던 ‘청룡등 교회’가 들어섰는데 이후 학교와 교회가 석곡면소재지로 옮겨가고 지금은 황금거북이가 알을 품은 땅이 맞기라도 한 것처럼 깻잎농사를 지으면서 부농으로 이름을 알리는 마을이 됐다.


◇장인의 혼으로 글 새긴 선비의 칼 낙죽장도

낙죽장도.
선비의 칼이라 부르는 낙죽장도는 한권의 책이었다. 호신용 장도에 선비가 갖춰야 할 사유(思惟)와 철학을 새겼다. 낙죽장도는 대나무에 불에 달궈진 인두로 문양이나 글씨를 새기는 기법을 말한다. 그렇기에 낙죽장도는 글을 새길 칼집과 칼몸으로 쓰일 분죽캐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낙죽장도는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지니고 다녔던 비수(匕首)로 호신용이나 장신구로 애장품이었다. 정자나 누각에 앉아 학문에 정진하면서도 상시 몸에 지녔던 낙죽장도에 서책이나 문집에 있는 글을 새겨서 패용하고 다녔다. 낙죽장도에서 칼집의 재료는 칼만큼이나 중요한데 최소한 3년 이상 자란 한 뼘의 길이에 7마디 이상으로 구성된 대나무(분죽)를 사용했다.

낙죽장도에 글을 새기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아랍지역을 포함해 다양하게 많지만 수백 및 수천자의 글을 새긴 칼은 낙죽장도가 유일하다. 장도 하나 만드는데 짧게는 2개월에서 반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대를 이어서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로 인간문화재 기능 보유자 2대인 낙죽장도장 한상봉 선생’이 혼을 담아 대장부의 기개를 표현해 내고 있으며 선생의 아들 한준혁을 이수자로 키우고 있다. 이렇듯 문과 무가 함께 한 칼, 낙죽장도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공북마을에 있는 낙죽장도교육전수관에는 조선시대 왕명에 의해 주술용으로 만들어진 벽사용 칼인 경인 사인검이 전시돼 있다. 경인도는 육십갑자에 경인일에만 만든 칼로 양의 기운이 강한데 호랑이 네 마리를 그려넣어서 경인 사인검이라 한다.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또 하나는 지팡이 하면 생각나는 사람 김삿갓이 들고 다닌 낙죽장도 지팡이가 전시돼 있다. 김삿갓이 화순 동복으로 가면서 지팡이를 고치려고 맡기고 가서는 죽고 오지 않아 지금에 이른 것이다. 낙죽의 도구는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풍구와 화로와 인두가 전부이다. 불에 닳은 인두로 낙죽에 한자한자 새겨넣는 작업은 숨 한번 제대로 쉴 수가 없을만큼 정교한 작업이다.
공북마을에는 장인의 혼으로 글을 새긴 선비의 칼인 낙죽장도의 명인이 살고 있으며 교육전수관도 운영중이다.

전수관에서는 예비창업을 꿈꾸는 일반인들도 장도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2020년 낙죽장도 전수관 활성화사업으로 ‘꿈을 품은 책가도’ 사업이 준비돼 있다. 전통문화상품 창업 장려의 일환으로 죽세공예품체험, 이순신장군 가검 체험 등이 무료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깻잎으로 부농이 된 깨 쏟아지는 마을

일제 강점기때부터 짚신삼기 등 남녀공동작업을 비롯해 좀돌이 쌀을 모아 시미저축(匙米貯蓄)운동을 벌여서 마을의 공동기금을 마련해 부자마을로 소문이 났던 공북마을은 여전히 부농으로 관내에서 명성이 높다.

마을사람들은 스스로가 1941년 논농사에 필요한 이앙물을 해결하기 위해 보성강물을 양수할 계획을 세웠다가 기술부족으로 마을의 기금을 다 써버렸으나 1964년에 주민들의 노력에 의해 농촌진흥원 지역사회개발지원금으로 원동기 35마력짜리를 지원받아 양수장을 개발하고 밭을 수리안전답으로 만들어 일찍이 하우스농사를 시작했는데 현재는 깻잎농사로 아플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마을이 됐다. 바쁜 만큼 일한 노동의 대가는 부농이 됐고 개개인의 소득 또한 높다.

이처럼 전통과 문화와 풍수로 인해 건강하고 부지런한 마을이 된 공북마을은 주민들 스스로 주민자치규약을 만들어 아름답고 깨끗한 마을을 가꿔가고 있다. 편백나무로 리모델링된 마을회관은 공동체문화의 산실이 돼 한달에 한번 반상회를 열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논의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특히 깻잎농사는 마을 공동체문화를 유지하는 근간이 돼 주민들의 단합을 이끌어냈으며 관내에서는 가난을 극복한 대표적인 마을로 선망의 대상이 됐다. 주민자치회 수장인 정규수 이장의 리더십과 주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공북마을의 미래는 여전히 밝아서 그곳에서 함께 살고 싶은 마을이다.

/정연우 자유기고가
/곡성=이호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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