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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창사30주년 릴레이 에세이](5) 박영래
야심만만 기자생활, IMF로 출렁

  • 입력날짜 : 2021. 03.01. 18:28
이른바 옆 눈길 한번 안주고 학업에 전념했던 몇몇은 7학기면 졸업하는 대학을 필자는 9학기 만에 했다. 그것도 미진한 상황에서.

늦여름에 졸업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코스모스 졸업’이다. 그때가 1995년 8월이다.

졸업과 함께 광주 북구 용봉동에 자리한 자취방의 전세보증금 500만원을 뺏다. 언론고시 준비를 위해 양림동으로 이사했고, 등용문으로 불리는 사직도서관 언론고시반에 이름도 올렸다.

기자를 꿈꾸는 20대 후반 청년의 야심찬 출발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언론고시반에 참여해 동료들 이름도 다 외우기 전에 광주매일 수습기자 공채가 떴고, 운좋게도 졸업한 지 채 한달도 안돼 언론고시에 합격하는 성과를 냈다. ‘운칠기삼’이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된다.

1995년 9월18일. 광주매일 공채 4기 입사동기 8명이 당당히 사령장을 받고 기자생활의 첫걸음을 뗐다.

그로부터 올해까지 횟수로 27년차. 파릇했던 20대 후반의 열혈기자는 이제 5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중견기자로 성장했고, 광주매일은 이제 서른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다.

필자가 기자생활을 시작했을 당시 대한민국 경제는 전무후무한 최고의 활황기였다. 기자생활 역시 ‘라떼는 말야’를 지금에도 자랑스럽게 읊조릴 수 있을 정도로 좋았고 재미가 있었다.

‘기레기’로 대변되는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던 사회적인 지명도, 몇몇 대기업 수준에 근접하는 나름의 연봉 수준, 애주가를 자칭하는 필자에게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할 만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 좋았던 시절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 2년여가 지난 1997년 12월, 대한민국이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는 초유의 외환위기 사태에 빠지면서 모든 건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박영래 뉴스1 광주전남취재본부 취재국장

그중에서도 자립기반이 극히 취약했던 지방신문사는 크게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연 600%였던 보너스는 가장 먼저 삭감이 이뤄지면서 월급은 홀쭉해졌다. 여기에 기본급 삭감이 어어진데다 급기야 ‘이번 달 월급이 제대로 나오나’라는 불안감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급여삭감에 인력 구조조정까지 더해지면서 선후배들은 줄줄이 신문사를 떠났다. 한 때 300여명이 넘었던 신문사 인력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기자들을 더욱 힘겹게 만든 건 은행권의 압박이었다.

당시 기자들 사이에 성행했던 맞보증의 후폭풍은 거세게 불어닥쳤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가 서로의 대출에 보증을 서줬던 ‘아름다웠던’ 맞보증 문화의 말로는 쓰라린 급여압류였다.

들쑥날쑥한 월급으로 대출금 이자 납입은 연체에 연체가 이어졌고, 급기야 대출연장이 안되면서 은행권의 상환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대출금 상황연체는 결국 급여압류로 이어지면서 상당수 기자들이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그 절반을 은행이 먼저 떼어 가져가는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다.

전 국민이 앞장선 금모으기 운동 등으로 외환위기 사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신문사나 기자들의 추락한 위상과 명예는 쉽사리 회복되지 못했다.

회사 안팎의 상황이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그동안 모아둔 돈 한푼 없는 상황이었지만 결혼은 또 미룰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후 어렵사리 결혼식은 올렸지만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아파트 우편함에 쌓여있었던, 봉투 겉면에 붉은 두 줄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신용카드사들의 최후 독촉장은 외환위기의 여파가 얼마나 심각했던지를 보여주는 증거물들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수많았던 위기상황들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아찔할 뿐이다.

광주매일 입사로부터 올해 횟수로 27년째. 필자는 2001년 광주매일이 문을 닫으면서 이후 몇몇 언론사를 거쳐 현재의 뉴스1에 근무하고 있다.

수많은 매체가 난립하는 지금의 언론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지방언론 환경 한번 만들어보자는 일념으로 지금도 취재현장을 뛰고 있다.

가끔 광천동 버스터미널 뒤를 지날 때가 있다. 이제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광주매일의 옛터를 바라보면 씁쓸한 마음이 들지만 당시의 기억과 추억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27년이 지난 지금도 오롯이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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