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3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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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창사30주년 릴레이 에세이](12)진은주 광주여성가족재단 경영기획실 과장
‘힘없는 이들의 손 잡는 일’ 우리의 사명

  • 입력날짜 : 2021. 04.07. 19:40
광주매일신문은 필자에게 고향과도 같다. 실제 나고 자란 땅이야 따로 있겠지만, 정신적 성장을 가능케 했던 제2의 풀뿌리인 셈이다. 들여다봐야 할 곳을 마땅히 보게 하는 철학적 가늠과 도덕적 시선의 성장을 실현케 해준 곳이다.

지금의 조직에서 “업무 기획할 때 문제의 지점을 시의적절하게 잘 찾아낸다”는 얘길 간혹 듣는다. 그럴 때면 필자는 “신문기자로 15년 남짓 살며 갖게 된 재산”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맞다. 광주매일신문 기자로 살며 시의적절한 것을 찾아내고 부조리한 것을 파헤치는 일은 언제나 당연했다. 딱히 매뉴얼을 상기할 필요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습성 그 자체였다.

경제부에 있을 땐 대형 유통체인에 멍든 자영업자들을 찾아다녔고, 사회부나 정치부에선 권력 농간의 그림자를 쫓았다. 또 문화부에서 오래 활동할 땐 소위 ‘예향’이라 불리는 광주의 뒤안길을 뒤지고 다녔다. 거대한 사회구조 갓길에서 흔들리는 약자는 없는지, 그것에 골몰했던 시절이었다.

특히 광주매일신문은 기자가 공부하는 것에 너그러운 언론사였다. 2000년대쯤, 대학원 석·박사 공부를 병행하는 취재기자가 유독 많았던 신문사였다.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전문영역을 찾아내 깊이 있는 취재와 울림 있는 집필로 빛을 발했던 기자들이 많았던 기억이다.

필자가 당시 찾은 전문분야는 ‘문화예술기획’이었고, 유독 관심을 가진 키워드는 ‘(불)평등’이었다. 대학원 등에서 문화예술기획을 공부하며 더러 이주여성 등의 인권문제를 문화예술프로그램으로 기획하는 경험도 쌓았다.

그러던 2016년 3월 21일, 필자는 15년 가량의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광주여성가족재단으로 터전을 옮겼다. 불평등과 소외의 지점을 끝없이 문제제기하고 해소하려 몸부림칠 수 있는 현장에 새 둥지를 틀었다.

광주여성가족재단에서 처음 맡게 된 일이 ‘여성전시관 운영’이었다. 새 기획전 준비시간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나, 막막했다. 그러다 ‘시의성을 찾는’ 기자 경력의 촉은 전형적인 전시 성폭력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들여다보게 했다. 당시 온 나라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들로 들썩였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촉구가 길거리를 채웠고, 할머니들의 인권 유린 방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을 뒤덮었다. 그런데 정작 광주는 이 문제에 대해 조용한 편이었다. 미술 등 문화예술분야에선 더더욱 그랬다. ‘이것이다’ 싶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거의 없는 탓에 발로 뛰며 찾아다녔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당시 광주·전남지역에는 2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생존해 계셨다. 해남에서 생활하던 공점엽 할머니와 담양에 거주하던 곽예남 할머니가 그들이다. 이들을 돕는 시민 모임인 ‘해남나비’ 관계자들을 만나러 해남을 찾아갔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전시자료를 가지고 있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도 찾아다니며 자료와 정보를 수집했다. 관련 작업을 하는 작가와 작업이 가능한 작가들 섭외를 위해서도 뛰어다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전시가 2016년 4월 27일 광주여성가족재단 내 여성전시관에서 막을 연 기획전 ‘마르지 않는 눈물; 나비의 꿈’이었다. 김대욱, 성유진, 이성웅, 이혜리, 주미희씨 등 청년작가 5명이 출품해 일제 강점기에 청춘과 인간의 존엄을 유린당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과 소망을 ‘나비의 꿈’으로 승화시켰다. 특히 성유진 작가는 곽예남 할머니와의 협업작품도 내걸었다. ‘위안부’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전시가 광주에서는 처음이었던 터라 당시 지역의 관심은 매우 뜨거웠다.

기획전은 전시공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관심은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던 정치인과 시민활동가, 문화예술인들을 만나게 해준 매개체가 됐다. 해서 전시를 기점으로 ‘광주나비’가 만들어졌고, ‘담양나비’ 등이 이후 태동했다. 가장 최근 운영한 전시는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내 안의 그녀-오월 꽃이 화알짝 피었습니다’였다. 광주오월어머니집과 2년 동안 준비해 열었던 이 전시는 전국에서 가히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취재기자 생활을 하던 때와는 또 다른 보람과 긴장을 느끼며 오늘도 새로운 공부를 한다. 그동안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영역들에 대한 체득의 연속이다. 광주여성가족재단이라는 특수성 탓에 필자는 소외되고 침체된 여성가족분야에 대한 조명과 지원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날마다 새로이 체화한다.

실상 따져보면 기자 생활 때와 가져야 할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어두운 곳을 밝히고, 힘없는 이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점 말이다. 이 향기로운 가치를 품고 신문기자 시절이 준 경험치에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도 발로 뛰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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