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청장으로 알려진 김재균 북구청장은 지난 봄 개최했던 개인전에 힘입어 한국성을 드러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그리고 또 그렸다. 일주일이면 크레파스 한 세트가 닳아졌다. 소년은 그리는게 그렇게도 좋았다. 어느날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크레파스를 그렇게 쓰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어쩔 수없이 그림그리는 횟수가 줄었다. 그 후 그 소년은 그림을 그리는 대신 글을 지었다. 무언가를 보고 댓구를 맞춰 시를 지어냈다. 그림그리기 대회를 석권했듯이 이젠 많은 백일장을 휩쓸었다. 김재균 북구청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 시절 정치를 하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글을 쓰거나 학문을 할 거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정치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을 하고 있다. 예술적 감성과 행정. 조금 빗나간 성 싶다. 그러나 그가 풀어나가는 구정 형편을 살펴 보면 결코 엇나간 것이 아니다. 21세기가 지향하는 문화행정을 앞서 실천하는 선각자적인 행정가이기 때문이다.
요즘 광주에선 북구에 살면 행복할 거라고 단정짓곤 한다. 구정목표를 '자치와 문화'로 내건지 수년. 이제 북구는 문화가 꽃피는 마을로 영글어가고 있다. 전남대 주변을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기 위해 전남대 정문주변을 '역사 상징의 거리' 후문주변을 '청년문화의 거리', 옛 삼일로를 '향토문화의 거리'로 지정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특히 향토 문화의 거리는 유흥업소가 84개소나 밀집돼 홍등가로 유명했지만 자미갤러리 등 향토문화센터와 문화기반시설을 갖추었다. 이처럼 문화의 꽃이 활짝 핀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기쁨이 북구민들에겐 늘 충만해있다.
북구 문화의 집, 일곡도서관 갤러리, 유휴청사를 활용한 광주 전통공예문화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등산 주변의 시가 문화권 복원과 보호에도 적잖은 애정을 기울이고 있다.
또 북구에서 눈여겨볼만한 점은 북구청 1층에 상설갤러리를 마련해 연중내내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2-3천명의 주민이 민원실을 방문한다는 점에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단지 서류를 발급해 준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북구청 민원실을 방문하는 주민이면 누구나 수준높은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있도록 한 것입니다." 처음엔 다소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늘 보게 되면 친숙해지고 친숙해짐에 따라 좋아지게 되는 효과를 노렸다는게 김청장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적중했다. 구청 직원들만하더라도 수년째 지속되는 전시회에 눈이 순해져 이런 화풍은 어느 작가의 특기란 것 쯤은 금방 눈치 챈다. 더 나아가 직원들끼리 그림계를 묻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전시회 때 부담없이 한점씩 구입하는 이들도 생겼다. 놀라운 변화다.
문화애호가인 김청장이 지난 봄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독학으로 20년 넘게 그려온 그림을 모아 개인전을 개최했던 것. 그림을 좋아해 한점 두점 그리는 줄로만 알았지 개인전을 할 정도로 많은 양을 그린 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그 뿐이랴,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이 한결같이 전업작가의 그것처럼 수준높음을 자랑했기 때문에 지인들은 뒤로 나동그라졌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기질을 엿보이는 작품들로 전시장을 꽉 채웠기 때문.
거기다 자신의 독특한 컬러를 충분히 집어넣었다.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엿보여줌으로써 화단에까지 충격을 던져주었다. 주제는 '한국성'의 발현이었다. 화순 운주사의 돌부처와 전통사찰 그림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같은 주제의식에 기인한 것. 거기에 그는 끝없는 실험성을 추구하고 있다. 돌가루도 섞어보고 송화가루도 짓이겨보아 새로운 질감 찾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렇게 해서 개인전 때 입체감 뛰어난, 독특한 릴리프 효과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는 언제 붓을 들고 작업할까. 주로 밤에 그린단다. 구정을 살피느라 낮시간 동안 짬이 나지 않고 야간에 작업실에 들어앉아 차분히 작업 삼매경에 빠져든다. 그러느라 그는 골프도 끊고 고스톱도 끊었다. 작업을 하고 있으면 삶의 환희가 생긴다. 그래서 밤 늦도록 불 밝히고 선을 그리고 색을 씌운다. 다행히 십수년 동안 쫓아다닌 현장 사생의 결실 때문인지 요즘엔 굳이 현장을 보지 않고도 심상으로 자연을 재해석해내게 됐다. 자연에 대한 모방이 아닌 풀어헤치고 다시 끌어모으는 작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번 개인전 때도 그런 작업이 상당수 선보였다.
"시의원 시절만 해도 캔버스 메고 나가 사생을 많이 했는데 자치단체장이 되면서 그럴 기회가 없어졌어요. 단체로 일정맞춰하기 힘드니까 차에 장비를 구비해놓고 어디서건 좋은 풍광이 나오면 잠깐 동안 쓱쓱 그려오는 때도 있어요"

오랜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다시 붓을 들게 된 것은 80년 대위로 예편한 뒤 방황하던 시절이다. 등산도 하고 전시회를 다니면서 마음자리를 잡느라 애를 썼다. 그러던 차에 전시장에서 오건탁씨의 작품을 한점 구입하게 됐다. '모과' 정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단다. 그 후 오씨로부터 한번 그려보라는 제의를 받았고 데상부터 기본기를 다지고 일요일이면 화구를 들처메고 사생을 다녔다.
절경이 나오면 캔버스 펴놓고 스케치해오는 자치단체장. 그림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시집도 몇권 출간했다. 시인이자 화가인 셈이다. 처음 북구청장에 당선되고 첫 간부회의 때 시낭송을 했단다. 그 때 참석한 간부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그러나 이젠 자연스러워졌다. 직원들 생일 때면 시집과 시낭송 테잎을 주는 청장. 올핸 개인전 도록을 선물하고 있다.
시집 '달빛 아래 찔레꽃'은 민중의 삶에 대한 신뢰와 그 생명력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대의 역사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은 언제나 고달프게 살아가는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이라는 생각에서 그는 민중에 한없는 애정을 보낸다. 구청장으로 재직 중에도 그는 여러 편의 시를 지어냈다. '자미탄을 꿈꾸며'와 '지산사람들'이 그것. 자미는 백일홍 또는 배롱나무를 가리키는 한자어로 된 꽃이름이고 자미탄은 백일홍 꽃 핀 여울을 말한다. 무등산 시가문화권인 식영정 바로 앞에 광주호가 생기기 전에 흰물결을 흐르던 창계천의 이름이다. '자미탄을 꿈꾸며'는 백일홍이 여울물에 비치면서 가관을 이룬 자미탄을 복원할 계획을 세우면서 지은 시다. 또 '지산사람들'은 어느 핸가 수마로 인해 할퀸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구고 수확의 즐거움을 느끼는 농심을 표현한 시다.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문화청장 김씨는 광주를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게 꿈이다. 구한말 때부터 역사의 중심적 역할을 해온 이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살려 문화도시로 조성해나가는게 김청장의 소망이다. 그렇게 해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싶어한다. 김청장은 오늘도 '문화아카데미' 등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문화행정을 펴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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