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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기강·염치의 재정립’ 기치로 위정척사 실천 ‘앞장’

[세계유산] ‘기강·염치의 재정립’ 기치로 위정척사 실천 ‘앞장’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80>무등산의 재발견-사람을 품은 산 (80)석전 이최선(石田 李最善)

노사 기정진 문하 최고봉…삼정 폐단 지적
조선후기부터 3대에 걸친 의병활동 본보기
  • 2013. 11.15(금) 00:00
  •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문일정(聞一亭)은 석전 이최선(1825-1883)이 지은 정자로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 장전마을의 동남쪽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 주변으로 노송 10여그루가 둘러져 있고 개천물이 언덕 옆을 흐르고 있다. 건축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방이 있고 정자 안에는 이최선의 스승인 노사 기정진이 쓴 ‘문일정기(聞一亭記)’가 걸려 있다.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 장전이씨 고택.


무등산의 특징 중 하나는 주변에 형성된 ‘정자문화’다. 무등산 언저리마다, 광주호 골짜기마다 고즈넉한 정자가 들어서 있다. 세월에 닳아 윤이 나는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가을 낙엽이 춤을 춘다.

무등산권 정자를 얘기하면 흔히 소쇄원이나 식영정만 떠올리지만 무등산 남쪽 담양 일대에는 아름다운 누각이 수없이 많다. 기록상으로 1400년대 중엽부터 담양 일대에 들어선 정자가 무려 170여개나 된다. 임진왜란 때 수없이 불에 탔고, 일제때 많이 철거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30여개가 남아 있다.

그중 향토문화유산 제12호 지정고시된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의 ‘문일정(聞一亭)’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문일정’은 1861년(철종 12년) 전주사람 이치고가 강학했던 곳으로 그의 아들 이최선과 이귀선에 의해 지어진 정자다. ‘문일정’이 있는 장전마을의 동남쪽 언덕에는 노송 10여그루가 둘러져 있고 개천물이 언덕 옆을 흐르고 있어 정자를 세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건축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방이 있고 정자 안에는 이최선의 스승인 노사 기정진이 쓴 ‘문일정기(聞一亭記)’가 걸려 있다

그렇다면 문일정의 주인 석전 이최선은 누구인가.

그가 살았던 조선 후기는 대내외적으로 격심한 변화가 있었던 혼돈의 시기였다. 혹세무민의 세도정치와 이로 인한 삼정의 문란 등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져 홍경래의 난, 진주민란 등 곳곳에서 민란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유민들이 발생하였다. 또한 서양의 진출로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를 거쳐 병자수호조약(1876)에 의한 개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허약한 왕실은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못한 채 외척의 변태적인 세도정치와 구미열강들의 횡포에 속수무책일 뿐이었다.

석전 이최선(1825-1883)은 기강과 염치의 정신적 기반이 바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의 폐단을 개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개혁이 절박하나 기강과 염치 먼저 세우지 못하면 말단에 매달려 근본적인 해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갈라진 틈을 따라다니면 틀어막거나 터진 둑을 따라다니며 막으려는 근본 문제에 맹목적인 행정보다는 근본을 다스리고 근원을 맑게 하는 도리로 기강과 염치를 중요시하는 행정을 펴야한다는 것이다.

석전은 태종의 큰아들인 양녕대군의 후예인 순조가 집권하던 1825년 이곳 장화리서 태어났다. 12살에 이미 경서와 사서에 능통해 과거 시험장에 드나들었으며 문장이 유려하여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의 인생은 15세 때 장성의 노사 기정진 선생을 만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제자의 예를 갖춘 후 40여년을 정성껏 스승으로 모시면서 학문의 道를 나눴다.

훗날 영재 이건창으로부터 ‘호남학을 꽃피운 인물’로 청송 받은 노사의 문하에서 가장 탁월한 이가 석전이었다. 그는 노사의 예법과 경전을 탐구하여 학문의 역량을 축적했다. 특히 스승의 저술인 ‘외필’이 학계에 소개되어 뭇 선비들의 의혹이 제기되자 석전은 ‘독외필’을 지어 스승의 학설을 명확히 변호함으로써 탁월한 제자로 추존받기도 했다.

38세에는 ‘삼정책’을 지어 국가의 폐단을 지적했으나 상달되진 못했다. 그는 삼정책에서 ‘기강과 염치의 재정립’을 문제해결의 근본적 접근방법으로 강조하였다. 그는 ‘기강이 위에서 세워지면 형벌과 상이 시행되어 모두 공적으로 빛나고, 염치가 아래에서 숭상되면 명분과 의리가 지켜져 온갖 방도가 모이게 된다’고 하면서 ‘오늘날 기강을 버리고 삼정을 구하려 하면 왜곡된 습관을 끝내 혁신할 수 없고, 염치를 버리고 삼정을 바로 잡으려 하면 탐욕에 찌든 습속을 결국 척결할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

무능력한 왕실과 부패된 국정운영의 상황 속에서 혁신의 문제가 민족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그 실천이 모색되는 시점에서 그는 재야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의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하였지만 시대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인재의 선발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석전 또한 수차례 과거시험을 치루면서 매관매직의 아픔을 겪었기에 그는 과거 시험을 엄격히 하여 언로를 개방하고 성학에 힘쓰며 이렇게 되면 마음으로 이치를 밝히게 됨을 역설하였다.

이즈음 그는 장전리 앞에 문일정을 지었다. 마을에서 2㎞쯤 떨어진 동산 위의 노송에 둘러싸인 문일정은 그의 서실로 쓰였다. 멀리 무등산의 웅지가 드러나 보이고 밑으로는 산계곡에서 바위 위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줄기가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다.

척사정신이 확고했던 석전은 이곳에서 병인양요를 접하고 의병 활동을 주도했다. 그는 도내에 격문을 띄워 의병을 구암땅으로 모은 뒤, 싸움이 임하고자 하는 사람은 맹첩에 서명케 하고 뜻은 있으나 일에 거리낀 사람은 옷·군량·무기 등을 마련하여 뒤를 잇게 하고나서 곧장 서울 종친부로 달렸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적이 도망친 뒤였다.

석전은 성이 수복되었다는 보고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 살아서 돌아간 적이 후일 또 침략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 당시의 집정이었던 흥선대원군을 만나 진언했다. 대원군에게 병인양요 같은 변란의 책임을 추궁한 석전은 전대주머니속에 들어있던 200금을 털어 순무영에 바쳐 군수품의 마련을 돕고 곧장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석전은 조정에 있던 삼종형에게 편지를 보내 관리의 행동관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어떻든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35세에 사마시에서 ‘일시(一詩)’과목에 2등으로 합격하여 증광진사가 되었다. 그 이후 40세에 초시에는 합격했으나 복시에서는 문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응시를 포기하였다.

그러다 1874년 그는 50세의 나이로 왕세자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증광회시에 응시했다가 낙방의 쓴 고배를 마시게 된다. 그는 한강을 건너면서 차고 있던 은도와 옥거울을 강에 던지면서 ‘다시는 이 강을 건너지 않겠노라’고 강의 신에게 맹세했다고 한다. 국가경영에의 의지가 남달리 강했던 그였지만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실력있는 인재를 몰라보는 시대에 분노하고 좌절했던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석전은 벽에다 ‘지팡이 짚고 산을 나서지 않을 것이며, 붓은 서울로 띄우는 편지를 쓰지 않으리라’는 최치원의 시와 ‘푸른 이끼 낀 황량한 돌밭 띠풀집에서, 여생을 밥이나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라네’라 읊었던 두보의 시를 붙여놓고 1861년 마을 입구에 문일정을 지었다.

문일정이라는 정자의 명칭은 석전이 정자를 짓고 이름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의 스승 노사 기정진이 견일정(見一亭)과 문일정 가운데 문일정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자를 짓고 시문을 논하며 살던 그는 1883년 어느 날 병에 걸려 눕게 된다. 절친한 친구가 비감어린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며 위로를 하니 그는 웃으면서 “남아는 죽음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이 여기나니, 어찌 아녀자 같은 모습을 하겠는가?”라고 말하고 평상시처럼 담소를 나누다가 12월23일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실천적인 의식과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아들인 청고 이승학(1857-1928)은 송사 기우만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다가 장성의병을 이끌던 그의 스승 기우만과 함께 의병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손자인 성균관 박사를 지낸 옥산 이광수(1873-1953)는 이기, 윤주찬, 민형식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각되어 사형을 언도받기도 하였다. 이렇게 이최선의 실천론은 3대에 걸쳐 구국의병활동으로 이어져 오늘까지도 본이 되고 있다.

석전의 혼이 서려있는 문일정에도 지금 낙엽비가 내리고 있다.

/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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