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정말 뜨겁다. 숨이 막힌다. 비단 30도를 넘는 날씨 때문만 아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지구촌 자체가 발광하는 여름이다. 남자 연예인의 잇단 성추행·성폭력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으며 현직 검사장의 뇌물 구속, 정치권의 녹음 폭로, 성주 사드배치 논란 등으로 휴가지에서도 국민들의 입방아 논쟁이 뜨겁다. 지역에서는 7월 들어 기초의회 광역의회 의장단 선출로 참 많이 시끄러웠다.

7월중에 거의 원구성을 마친 광주·전남 지방의회는 금품살포, 중앙당 개입논란 등 광역과 기초를 막론한 추태가 그대로 드러나 원성을 샀다. 7대 후반기를 시작한 광주시의회는 전례 없는 의장단 공백사태라는 시민 원망을 들으며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신경전이 치열했다. 목포시의회 의장선거에서는 국회의원의 영향력 행사가 문제가 되었고, 전남도의회에서도 이합집산을 막기 위해 더민주가 중앙당 차원에서 심하게 단속을 했음에도 국민의당에 의장을 내줘 내홍이 일기도 했다.

특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표 매수 의혹도 잇따라 불거지면서 지방의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여수시의회에서는 의장선거 과정에서 수백만원대 표 매수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고흥군의회는 의장 선거 막판 1,000만원이 오갔다는 구체적인 액수에다 금품을 제공하는 장면이 찍힌 CCTV 영상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나주시의회도 금품설이 지역정가에 돌고 있고, 함평군의회는 특정후보의 불·탈법 의혹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지역민들은 지난 4·13총선후 광주·전남 정치판도가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경쟁체제가 되면서 상생발전을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이전투구가 더 심해졌고, 국회에서 본 계파·지분 다툼이 답습되었다.

현재진행형인 지방의회 흑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각종 비리와 오만한 권력의 온상이 된 지방의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날로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의원들은 왜 의장이 되려고 혈안일까.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지방자치법이나 자치법규 등에 따라 의장은 의회대표권, 의사정리권, 질서유지권, 의회사무 처리 및 감독권 등을 지닌다. 외부에 대해 지방의회를 대표하면서 집회요구 공고권, 의결된 의안의 단체장 이송권, 집행기관과 관계 공무원에 대한 보고·출석요구 이송권 등을 갖고 있다. 개의선포, 의사일정 작성·협의, 회의 산회·중지 선포 등 회의 전 과정에 걸쳐 의사 정리에 관한 권한과 함께 의회 사무처리도 지휘·감독한다. 단체장과 공무원 출석요구, 행정사무감사 때 보고나 서류제출 요구, 증인출석 요구 등 위원회의 행위도 의장을 거쳐야 한다. 의장 스스로 위원회에 출석해 발언할 수도 있다. 지역 단체장에 이은 두번째 서열로 공식 의전을 받으며 대형 승용차를 관용차량으로 배정받는다. 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에 따라 매월 수백만원의 업무추진비도 받는다. 광주시의 경우 의장은 월 420만원씩 연 5천40만원 챙긴다. 의장은 전용 사무실과 함께 5급 1명, 6급 1명, 별정 1명, 운전기사 1명, 여직원 1명 등 5명의 인력도 지원받는다.

그러나 이런 막강한 지원과 권력만큼 지방의원들의 일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주민의 기대만큼 시정·군정을 감시·견제하는 본연의 임무를 잘한다고 볼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추문 탓에 ‘풀뿌리 민주주의’로 불리는 지방의회 위상이 위태롭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기초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 원칙이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할 때 지자체 의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지금은 기초의원들도 1인당 의정비·경비 명목으로 연평균 4000여만원을 챙겨간다.

비용에 비해 효율이 안 나고 부작용만 커지다보니 결국 기초의회 폐지론이 나왔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해외견학을 둘러싼 잡음, 함량미달의 행동들, 끊이지 않는 비리와 부패, 주민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 의정활동에 앞서 국회의원 지역구 관리대행 같은 정당 활동에 더 신경 쓰는 문제 등 기초의회의 무용론으로 들 사례는 부지기수다. 특정 정당의 조직책이나 토박이가 지방자치 실시 후 ‘동네 국회의원’처럼 행세하면서 적잖은 월급과 활동비를 받아가는 것은 분명한 세금낭비 요인이다. 때문에 분권단체나 기초의회·의원단체들의 주장과는 달리 국민 상당수는 기초의회 무용론에 공감하고 있다.

해서, 기초의회가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폐지 위협을 받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환골탈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주민들로부터 존재감을 얻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단체장에 대한 견제강화 방안, 정당공천 폐지와 특정정당이 독식하는 문제, 주민대표성 향상과 다양성 확대를 위한 비례대표의석 비율 향상, 여성 및 소수자 진출확대 방안, 임기 2년 단축 방안, 주민의 의회참석 및 발언권 확대, 광역지자체 선거와 분리, 출마조건 완화, 해외견학 폐지, 유급의원제도에 대한 대안검토 등 사실상 원점에서 재출발하는 수준의 획기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권력의 중심에 있는 지방의회는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지역 토호 사이의 유착 고리를 만드는 비리 온상이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동네정치를 찾아야 한다. 기초의회의 의장단은 ‘감투’도 ‘완장’도 아니다. 그 지역의 중요 사항을 주민을 대표한 의원들이 최종 심의 결정하는 최고의결기관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초의회가 스스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면 무용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욕심 버리고 생활정치가 뭔지 공부해보라. /ssnam48@kjdaily.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