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 죽겠어.”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날 때가 있다.

가슴으로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으면 화가 나고, 몇날 며칠 공들여 했던 일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었을 때도 화가 난다. 실컷 화나게 만들어 놓고는, 왜 화가 났지? 눈 껌뻑이며 빤히 쳐다보는 사람 앞에서도 가슴이 답답!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욕심대로 되지 않을 때도 화가 나고, 갖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갖지 못할 때도 화가 난다. 내 편이라 믿었던 아빠가, 엄마가, 언니나, 오빠, 동생 편만 들 때도 화가 난다. 왜 화를 내냐는 말에도 마찬가지다. 정말 정말 화가 나 죽겠는데,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가슴이 부글부글,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에 등장하는 소피도 화가 난 아이다.

장난감 때문에 언니와 다투게 되고, 내 편이라 생각했던 엄마까지 언니 편만 드는 것 같아 정말 정말 화가 난 소피의 마음은 새빨갛다. 쿵쿵쿵, 발을 구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소리 질러 봐도 소피의 마음은 더욱더 시뻘건 불이 된다. 펑, 펑, 펑! 불 화산이 되어 폭발해 버릴 것만 같다. 뭐든지 부숴버리고 날려버리고 폭발해 버리고 싶은 마음에 집 밖으로 뛰쳐나온 소피는 달리고, 달리고, 달려 작은 숲에 도착한다. 숲길을 걷고 걸으며 훌쩍, 눈물을 흘리는 소피. 소피는 너도밤나무위에 올라가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산들바람을 느끼며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된다.

“꿀꺽!”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음식이 눈앞에 잔뜩 쌓여있어도 침만 꿀꺽, 삼켜야 할 때가 있다. 이미 배 불리 음식을 먹어 배 속이 꽉 찬 상태일 때다. 물론, 먹을 수도 있지만 먹어봤자 별 이득이 없다. 맛도 재대로 느낄 수 없고, 탈만 나기 일 쑤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 속 층층이 슬픔이 쌓여 있을 땐,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들어도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다. 미움이 가득할 때도 마찬가지다. 배가 고파야만 또 다른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마음 또한 비워야만 새로운 마음으로 채울 수 있다. 미움을 비워야 사랑할 수 있고, 슬픔을 비워야 기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비워줄 수는 없다. 엄마도 언니도 아닌, 집 근처 숲길을 통해 눈물을 쓱 훔친 소피처럼, 우리 또한 스스로 비워내야 한다. 끝없는 청년실업에 날마다 터지는 사건사고들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분노조절이 필요하다.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원인들을 제거하거나, 잊어버리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땐, 나만의 방법이 필요하다.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몸을 바쁘게 움직여 보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없는 차 안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소리 질러 보는 것도 좋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고 숨이 막힐 것 같고, 뜨거운 뭉치가 뱃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것 같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고, 소화가 안 되고, 만사가 귀찮고 성가시고, 머리가 아프고, 잠이 잘 안 오고, 숨이 차고, 입안이 자주 마르고 갈증이 나고, 목이나 명치에 뭉쳐진 덩어리가 느껴지는 등, 화가 나고 답답한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해 생기는 병, 홧병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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