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순난자 공양탑.

김일수 증언으로 진실을 접해

마쓰다 도키코가 조선인의 징용 과정과 그들의 일상에 대해 상세히 접하게 된 것은 김일수의 증언을 통해서다. 마쓰다는 김일수와 함께 현지를 방문하며 그에게 확인한 뒤 조선인 징용자가 중국인 포로와 어떻게 다른지를 기록했다.

태평양전쟁 중에 하나오카로 징용된 조선인 수는 2천여명(이우봉). 그 중 독신자들은 5개의 조선인 기숙사로 나뉘어 배치됐다. 김일수는 기숙사에는 당시 7-8명의 일본인 직제(職制)가 머물며 감시했고 조금만 작업 시간에 늦어도 구타하고 린치를 가했다고 증언했다(‘회고문’).

직제들은 아무리 병을 앓는 환자라도 아침 6시와 저녁 8시에 점호를 받게 했다. 조선인 징용노동자들은 아침마다 황국예배에 시달렸음은 물론, 증산을 위해 가혹한 광산의 갱내 노동에 내몰렸다. 게다가 식량증산을 위한 개간 작업에도 동원됐으니 고통의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하지만 중국인 포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일본정부(도조내각)는 1942년 제정한 ‘중국인 노무자 일본유입에 관한 건’에 의거해 중국인들을 끌어들여 중노동을 강요했다. 하나오카로 끌려온 중국인은 중일전쟁의 포로였다. 즉 일본제국주의가 중국본토에서 자행한 ‘중국인 토벌’의 피해자였으며 삼광정책(모두 죽이고 모두 붙 태우고 모두 약탈한다)의 대상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하나오카 사건의 전범기업 가시마구미(가시마건설)가 하나오카 광산으로 986명의 중국인 포로를 연행했을 당시 그들이 얼마나 쇠약했는지, 특히 식량 배급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김일수가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점이다.

마쓰다는 1951년 간행된 ‘하나오카 사건―일본의 포로가 된 한 중국인의 수기’나 1964년 출간된 ‘풀의 모표―중국인 강제 연행 사건의 기록’을 참고자료로 삼았지만, 무엇보다도 김일수의 생생한 목소리를 가장 중요한 자료로 여겼다. 마쓰다가 “제1회 하나오카 조사 한도 내에서는 모든 것을 증언해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김(일수) 씨 일행에게서……”(회고문)라고 흘린 독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필자는 4회째 연재에서 “조선인 징용자의 생생한 증언을 어떤 형식으로든 여러 번 접했을 작가의 체험”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1950년 김일수와 동행한 현지방문 당시 마쓰다는 숙소를 하나오카 마을에서도 중심부에 있는 사쿠라 마을의 요시모토(吉本)씨 집에서 광부촌의 김기수(김일수 동생 이름과 동일) 씨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이다(井田)씨 집으로 옮겼다고 밝혔다(‘회고문’).

하나오카 광산의 갱내에서 노동하는 조선인 연행자(이우봉의 증언록에서…)

그런데 “이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 노동자였고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전쟁 중 계속된 물자 부족과 조선인으로서의 괴로운 삶에 시달리면서도 협력을 잘 해줬다(같은 책)”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마쓰다는 조선인들과 숙박을 함께하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음에 틀림없다. 숙박 장소를 알선하고 조선인들을 소개한 사람이 김일수이었음은 자명하다.

현지조사 때 조선인연맹 사무소에서 회합

마쓰다 도키코와 김일수는 현지조사 당시 회합에도 참가했다. 갱도 견학 직후에 하나오카 노조대회가 교라쿠칸(共樂館·영사설비를 갖춘 극장식 오락시설로, 이곳에서 중국인 포로들이 대량학살 됐음)에서 개최됐을 때였다. 하지만 이곳에선 회사의 독단적 경영에 관한 것이 의제였다.

바사와(중국인 유골이 대량 발견된 장소=하나오카 광산광업소 뒷산 계곡)의 조사를 마친 뒤 열린 그날 저녁 회합장소에서 비로소 나나쓰다테 사건과 하나오카 사건이 논의의 대상이 됐다.

회합장소는 다름 아닌 조선인연맹 사무소. 조선인과 일본인 노동자, 주부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나나쓰사건에서부터 중국인 포로의 유입과 봉기, 교라쿠칸 터에서 참살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보고 들은 바를 증언했다.

마쓰다 도키코는 서브노트를 마련해 김일수를 비롯한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 중국인의 증언을 빠뜨림 없이 기록했다. 솔직한 대화로 한·중·일 노동자와 주부들이 역사적 사건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참가자들은 중국인 포로들의 봉기(1945년 6월30일)의 원인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가시마구미가 포로 학살을 합리화하기 위해 연합국의 배가 아키타에 들어와서 포로가 봉기했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린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포로들이 봉기한 원인은 무엇보다 식량 문제였다. 식량 배급을 맡던 일본인 4명과 포로의 식량 담당자 1명이 살해된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봉기 후 중국인 포로들은 모두 산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헌병대, 경찰, 지역 경방(警防)대원이 5일간에 거쳐 산을 포위하고 주위를 샅샅이 수색했다. 포로들은 무기 하나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붙잡혔다. 그리고 교라쿠칸 터에서 전원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김일수를 비롯한 증언자들 중 가시마구미의 악랄함에 치를 떨지 않은 이가 없었을 터. 그들의 얘기를 받아 적던 마쓰다 도키코의 마음도 심히 요동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증언록 ‘제일 1세가 증언한다’를 집필한 이우봉은 조선인과 중국인 희생자의 넋을 위무하기 위해 기타 세츠지가 완성한 50여편이 넘는 서사시를 번역하기도 했다(1951년 ‘하나오카 이야기’로 출간). 거기에는 ‘조선인’이라는 시가 있다.

김일수가 마쓰다 도키코에게 보낸 엽서.

조선인

장교들과 회사 측은

일본인 노동자를 산에 풀어

몰아붙였지

조선인들은 끽소리도 못하게

갱내에 가두어 놓았지

뒤가 구린 그 놈들에겐

조선인들이

“무뢰한의 무리”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르니까

―해방의 폭탄!


봉기가 일어나자 가시마구미와 군은 조선인 징용자를 철저히 감시했다. 이우봉은 1991년 펴낸 또 다른 증언록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조선인 노동자는 강제연행, 강제노동에 반대해 집단적인 기피, 파업, 꾀병, 도망 등 여러 방법으로 저항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1943년 7월 하나오카 광산에서는 조선인들의 집단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회사 측(후지타구미=동화광업의 전신)이 고용한 조선인이, 유입노무자들의 노름판을 벌이는 장면을 발견하고 훈시하며 1명을 구타했다. 이를 동료 조선인 200여명이 목격했다. 그들은 분개해 회사 측 조선인에게 전치 1주일의 상해를 입혔다. 여기에 후지타구미 650명 중 205명이 참가해 조선인들에 맞섰다고 전해진다(같은 책에서 이우봉은 ‘쇼와특별고등탄압사’ 8권 내용을 인용).

가시마구미는 이러한 조선인들의 성깔을 누구보다 잘 간파하고 있었다. 가시마구미와 진압대가 조선인 징용자들을 ‘무뢰한의 무리’나 ‘해방의 폭탄’으로 표현한 내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쓰다는 김일수 일행이 모인 조선인 연맹사무소에서 그들이 하나오카 사건 전모에 대해 증언하는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을 터. 회합의 장소부터 회합의 주도에 이르기까지 김일수가 선봉에 서서 일을 진행했음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김일수와 함께 유골을 유족의 품에

김일수는 하나오카 노조위원장으로서 조합원들과 유골수습을 진행한 만큼 중국인들이 희생당한 장소를 꿰뚫고 있었다. 현지조사 당시 마쓰다 도키코와 중국인들을 구석구석 안내했다.

“이 물을 마시려고 포로들이 여기서…….”

“그래요, 여기서 일부러 굴러 손으로 떠서 마시려고 하거나 입을 대고 마시려는 포로를 가시마구미 감독이 호되게 구타했죠…….”(회고문)

우바사와 계곡을 돌면서 김일수는 포로들이 기거하는 수용소 세 동의 위치, 가시마구미 감독들이 지내던 방, 식당, 취사, 식량 창고까지 조목조목 소개했다. 마쓰다가 김일수의 설명 중 가장 귀담아 들은 내용은 역시 중국인 포로가 결사 봉기를 일으킨 결과가 아니었을까?

마쓰다는 김일수가 중국인 포로 봉기의 최대의 원인이자 직접적인 동기가 ‘기아(굶주림)’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그러나 봉기를 결의하게 한 것은 ‘침략자 일본제국주의’와 그것을 ‘직접 체현한 주체 가시마구미 감독들’.

마쓰다와 김일수의 현지방문은 1950년 9월이었으므로 6·25전쟁 직후였다. 이우봉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정부는 특수를 누렸고 경기가 좋아졌다고 증언했다(‘제일 1세가 증언한다’).

‘전쟁반대, 재군비 반대, 요시다 내각 타도’를 외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경찰의 엄격한 탄압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그런 뒤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오카의 조선인들은 자유노조 등을 기반으로 생활방어 투쟁의 선두에 서서 싸웠다. 그리고 하나오카의 중국인 순난자 유골수습, 송환운동은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이 일체가 된 거대한 운동으로 확대됐다”고.

김정훈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전남과학대 교수>

이우봉의 증언록 후기에 편집자 이국소(李國昭) 씨가 증언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하나오카 강제연행 중국인 희생자의 유골발굴과 유골송환의 내용을 소개함에 있어서는 새로운 사실을 포함해 이 운동이 전후사에 획을 긋는 한중일 서민의 연대 투쟁”이었다.

마쓰다 도키코와 김일수가 중국인 희생자 유골송환을 위해 함께 고베에서 배를 타고 처음으로 중국을 향한 것은 1953년 7월2일. 그 배에는 하나오카 사건의 중국인 희생자뿐만 아니라 고사카(小坂)광산, 오사리자와(尾去澤)광산 등에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를 포함해 560인의 유골이 실렸다.

각 단체의 일본인 대표 10명, 화교대표 7명이 승선했는데, 김일수는 하나오카 현지 대표로서, 마쓰다는 부인단체 대표로서 함께 동행했다. 7월7일에 천진에서 유골 출영식(出迎式), 8일에 추모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 참가한 일본인 대표들은 두 번 다시 하나오카 사건과 전쟁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의지를 중국인들에게 전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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