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다한 이야기1

잊혀 버린 얘기다. 꺼내지도 않았다. 당시엔 별 관심없던 얘기였고, 선배들도 뉴스가치에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기자를 하면서 목숨을 구해낸 얘기다. 때는 1992년 1월 하순, 창간1돌도 되지 않았던 시기. 4년차였던 나는 경찰서를 출입하는 후배기자들을 독려하고 함께하는 동부서 출입기자였다.

수습 끝난 후배 고금주 기자가 “조 선배, 조 선배!”하면서 나를 많이 따랐다. 노태우 정권 말기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절을 항상 함께 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또한 경찰서(북부)를 출입했던 것 같다. 북부서는 설치된 지 얼마 안됐던 터라, 조직이 많이 엉성했다. 시군에서 전입해온 직원들이 다수여서 이질감이 팽배했던 것 같았다. 게다가 골치 아픈 것은 시위의 중심지(?) 전남대가 관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부서가 뉴스에 많이 등장했고, 서장이 자주 갈렸다. 고사까지 지낸 바 있다.

기억하자면 1월28일 밤 북부서 무기고가 탈주범에 털렸다. 카빈소총과 실탄 등 900여점이 털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같은 날 다른 시각. 북부서 관할인 모 파출소에서 젊은 순경이 권총으로 자살했다. 조사결과 그 경찰관은 결혼문제를 비관했다고 전해졌다. 익일 새벽 고 기자로부터 보고를 받았고, 조간의 특성상 사건의 정황과 파급, 대응, 뒷수습에 주안점을 두고 취재에 들어갔다.

무기고 습격은 이미 해당 서장이 직위해제되고 후임 서장까지 발령받았기에 후속취재꺼리도 별로 없었다.

사건현장에 같이 갔다.

지금은 다르겠지만, 당시에는 수사팀보다 먼저 출동해 탐문취재(?)를 잘하는 게 민완기자라고 불릴 때다. 초동수사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요즘은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을 상황이나, 당시에는 그게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시절이었다.

사망한 경찰 신분증을 확인 후 집주소대로 찾아갔다. 문예회관 인근 2층 슬라브 주택의 이른바 상하방. 추운 날씨였지만 쾌청한 하늘에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났다. 아궁이에는 연탄불이 없는데 말이다.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동거녀가 방안에 피웠을 것이다. 부엌으로 가 방으로 연결된 작은 문을 잡아챘다. 잠겨 있었다. 힘이 좋은 고 기자에게 눈빛으로 지시하자 연탄집게로 뜯어냈다. 아니나 다를까 방안에 연탄 연기로 가득 찼고, 손목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흉기로 동맥을 끊으려 한 것 같았다.

의식은 있었다. 고 기자에게 들춰 매도록 했다. 그는 끙끙거리며 병원까지 옮겨 살려냈다.

그리고는 소문내지 않았다. 생사만 확인하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그녀가 쇼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했고, 그 과정에 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경찰도 무기고 습격으로 서장이 경질되고 권총자살까지 발생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동거녀의 자살시도는 아예 수사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더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 못다한 이야기2

그로부터 5년 후.

편집부와 경제부를 거쳐 법조를 맡았다.

여전히 사건캡이다. 일선 서 기자들은 팔팔한 2-5년차였을 것이다.

서부서 출입하던 박헌주 기자는 의리 그 자체다. 교육자 집안에서 아들만 너댓명 있는 집의 맏이로 태어나 책임감이 아주 강했다.

그러던 그가 대학 때부터 활동하던 산악회에 심취돼 에베레스트를 꼭 정복하고야 말겠다며 떼를 썼다. 당시 회사 분위기는 누가 휴가라도 가면 후배나 동료가 맡아야했고, 휴가란 여름에 3-4일이 전부였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산악훈련부터 시작해 에베레스트를 간다는 것은 팀원들에게 뒈져보라는 심보 아닌가. 그것도 서너 달씩이나….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인지 그는 일 만큼은 참 열심히 했다.

경찰서의 수사, 정보, 방범 상황에 대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는 FM기자였다.

일명 김장고무통 사체 보관 사건, ‘살인자 바꿔치기 사건’도 그의 치밀함에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강력사건이 발생해 초동수사가 꼬이면 미제사건으로 넘어간다. 이 사건도 그 중의 하나였다. 범인이 쉽게 잡히지 않자, 유력한 용의자를 별건으로 구속한 것이다. 살인죄를 가려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인죄를 씌우기 위해서라는 표현이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러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고, 이 친구는 ‘심심하면 한번씩’ 그 사건의 진행을 다뤘다.

출국 전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살인사건은 분명 애먼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으므로 캡께서 꼭 챙겨봐 주세요”라고 당부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밉던지…. 그래도 기자는 기자여야 하지 않겠나. 남부서 출입하던 임재식 기자를 그 사건에 투입해 분석보도를 자주 내도록 했다.

그러다 사건발생 5개월 만에 실종자가 진범의 자취방 김장고무통에서 밀봉된 채 발견됐고, 별건으로 구속된 가짜 살인범은 누명을 벗고 출옥할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의 집요함이 없었더라면 애먼 용의자가 영원히 살인범의 누명을 썼을 것이다.

광주매일을 나온 지 23년이나 된다. 언론사를 그만둔 지도 15년. 본 지 오래됐다. 이유를 달자면 각자 삶의 터전이 너무 다르다. 그때 생각하면 스토리가 밤새 끊기질 않을건데도 말이다.

한마디로 “닐러 무삼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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