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버린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고 했다. 30년 세월. 이제 와 돌아보자니 그 시작점의 기억들이 오롯이 돋아 오른다. 시간의 물결에 밀려서 왔건, 거센 풍파를 헤치고 여기까지 왔건 광주매일은 내 언론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창간 신문사의 공채 1기로 입사한 것은 행운이었다. 생각하면 늘 자랑스럽고 고맙고 감사하다.

언초사초(言草史草). 기자로 살면서 항상 머릿 속 깊이 새겨 놓았었다. ‘기자는 결국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신문에 나지 않은 것은 사라지는 것이다.’, ‘기사는 모여져서 기록이 되고 그것은 쌓여서 역사의 한 단면이 된다.’

수습시절 선배들로부터 숱하게 귀담아 들었던 말들.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정말로 사관의 자세를 가지고 임했는지 낮은 자세로 더듬어 본다. 여전히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들을 보면 기자적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버릇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건 끝까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유년시절 장래의 꿈 두 가지를 품었었다. 그 중 한 가지가 기자였다. 중학교 시절이던가. 중동전쟁 현장에서 뉴스를 전하는 종군기자의 모습을 보고 기자의 꿈은 발아했었다. 전쟁터에서 덥수룩한 수염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리포트하던 특파원의 모습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골 소년이 TV 화면만을 보고 품어버린 달콤한 유혹이 아니었나 싶다.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겠다고 깝죽대던 20대에 들어서면서 내 꿈의 눈금이 수정됐다. 눈높이에 맞췄다고나 할까. 신춘문예 응모 원고 뭉치를 들고 신문사를 찾아갔다가 “여기구나!” 했다. 분주한 편집국의 분위기를 보고 이런 곳에 둥지를 틀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 것이다.

내 원고를 받아주었던 사람이 후에 나의 사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입사하고 알게 되었다. 이미 나는 특파원은 내버려두고 ‘멋진 문화부 기자’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광주매일 창간을 앞두고 편집부에 입사했다. 한강 이남의 ‘편집의 달인’으로 정평이 자자하던 장광영 이사님과 이재창 차장, 박준수(현재 광주매일신문 사장)·고규석 선배 등의 지도편달을 받아 기자로서 달구어져 갔다.

특히 이 차장은 일과 관련하여 엄격하게 후배들을 대했다. 반대로 박준수 선배는 푸근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황량하던 수습시절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편집 숙제를 하느라 박상원·최수진 등 동기 셋이서 밤새 대학 도서관 바닥에 엎드려 제목 뽑고 레이아웃하던 피눈물(?) 나는 기억은 아름다운 한 컷의 추억이 되었다. 당시 ‘수습기자 중 임용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들이 편집국에 돌아 바짝 긴장했던 하루하루가 생생하다.(이 모든 것이 창간을 앞두고 속성교육을 위해 일부러 분위기를 잡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창간을 한 달여 앞두고 나는 문화부로 옮겨 앉았다. 나를 기자로 뽑아준 김원욱 편집국장의 배려 덕분이었다. 문화부 말석에서 시작된 나의 기자생활은 매일이 새롭고 행복했던 것 같다. 김준태 부장과 박원균·남성숙 차장의 지도편달로 글발을 익히고 시각을 넓혀 갔다.

특히 남성숙 차장은 문화부 기자가 지녀야할 감각과 시각, 글맥의 깊이와 호흡을 일으켜준 ‘영원한 사수’로서 나의 조련사가 되어 주었다. 지금도 감사할 따름이다.

‘서른 살의 광주매일신문’. 이제 이 지역 중견 언론사로 자리매김하였다. 시대의 흐름에 걸맞는 컨텐츠와 변화된 모습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언론환경의 급속한 변혁의 시기에 지역 여론을 이끌어가는 매체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종종 현장에서 선·후배님들을 만나면 ‘광매인’의 끈적한 정감을 느낀다. 슬쩍 웃음기를 흘리며 지나치지만 마음은 언제나 가족같다고 고백한다. 더불어 ‘청년신문’ 광주매일신문으로 더욱 발돋움하는 기세를 보고 싶다. 항상 성원하겠다는 약속을 이 기회를 빌어 해본다.

창간 30주년을 거듭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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