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 作 ‘프리마베라 부분도’ <위키피디아 검색>

따스한 봄기운이 만연해지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여기저기서 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이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꽃을 보면 으레 드는 생각이다.

게다가 예쁜 꽃을 보고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꽃은 졸업식, 생일, 결혼식 등 주로 행복한 일들을 축하하기 위한 용도로 많이 주고 받는다. 이외에도 요즘에는 자기만족을 위해 스스로에게 꽃을 보내는 광고까지도 등장하고 있는 추세지만 어떤 의미의 꽃이든 꽃 선물은 다 기분 좋다.

이렇게 보면 예쁜 꽃이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 내는 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는데, 아주 오래된 구석기 인류화석에서도 이 같은 인류 감성을 엿볼 수가 있다.

한반도 유일의 구석기 화석으로 알려진 ‘흥수아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사람 뼈 가운데 유일하게 온몸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어린아이 화석을 말하는데 발견자의 이름을 따 ‘흥수아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런데 이 화석에는 조금 독특한 점이 있다.

발굴 당시 함께 발견된 ‘국화꽃 화석’이 그것인데 아이가 죽은 것을 슬퍼하며 땅에 묻기 전에 시신 위에 꽃을 뿌렸을 거라 추측되기 때문이다. 아주 까마득한 과거에 존재했던 그들에게도 꽃이 정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는 매한가지였던 걸 보니 작은 생명체가 참 대단해 보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명화 속에서 꽃은 어떻게 등장하고 있을까?

봄 하면 떠오르는 그림으로는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를 꼽을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은 그림의 정중앙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 비너스지만, 온갖 꽃이 만발하는 봄에 ‘꽃의 여신 플로라’를 빼놓고서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작품 ‘프리마베라’의 오른쪽 부분에 위치하는 곳에서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플로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어 flower의 어원이기도 한 플로라는 그림 속에서 꽃의 여신답게 비너스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그만의 생기를 보여주고 있다.

여신 플로라 뒤에 님프의 모습이 중첩돼 있어 얼핏 보면 조금 이상하게도 보이는 이 그림은 서풍 제피로스에게 납치당한 님프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이 되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 클로리스에게 제피로스는 꽃을 관장할 수 있는 힘을 선물로 주며 환심을 사려 한다. 따뜻한 서풍을 따라 봄이 오듯 제피로스가 그녀에게 바람을 불자 클로리스는 마침내 여신 플로라로 변하게 된다. 한편,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 고백을 할 때 꽃 선물을 하는 것이 바로 여기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꽃이 주인공인 그림은 없을까? 꽃이 그림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부터이지만 배경이 아닌 주연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 정물화(still life)가 출현하면서부터 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30년 전쟁에서 신교가 승리하면서 에스파냐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게 된다. 이렇게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네덜란드는 대외 무역으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되고, 경제적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기존 귀족과 교회 세력이 몰락하고 역사상 유례없는 부를 이루게 된 중산 계급은 이제 자신들의 지적, 예술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이상 제단화를 그릴 수 없게 된 화가들도 그들의 구미에 맞게 예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물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생생히 표현해낸 그림들은 무엇을 그렸는지 한눈에 알아차리기가 쉬웠다.

중산층은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역사화보다는 알기 쉽고 보기 좋은 혹은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그림들을 원했다. 당시 이런 상황과 잘 맞물리며 정물화 중에서도 특히 꽃 정물화가 크게 성행하게 된다.

한스보링어가 1639년에 그린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실내에 마련된 탁자 위에 단정히 줄을 선 채 예쁜 모습을 한 꽃들이 당당히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분홍장미와 노란프리지아 그리고 나머지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꽃들은 그 유명한 튤립이다.

한스보링어 作 ‘꽃 정물화’ <위키피디아 검색>

네덜란드의 상징이기도 한 이 튤립에도 얽힌 사연이 있는데, 우리가 아는 단색 튤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점박이 튤립이 문제의 주인공이다.

17세기 유럽에서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일어난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을 들어본 적이 있을까? 그리고 그에 따라 발생한 1634년 튤립 파동(Tulipomania), 튤립 버블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이다.

모자이크 바이러스에 의해 줄무늬가 잎을 뒤덮어 독특한 이 튤립은 영원한 황제(Semper Augustus)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당시 튤립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했던 종류였다.

이 튤립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급작스럽게 모이기 시작하며 1630년대에는 튤립 구근 하나가 우리 돈으로 약 1억6천만 원까지 치솟으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피지도 않은 꽃들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거품이 꺼지며 네덜란드 국민들이 파산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그리고는 결국 영국에게 경제 대국의 자리까지 넘겨주게 되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꽃 한 송이가 가지는 위력이 이렇게 클 줄이야! 역사상 최초의 투기로 기록된 이일은 정말 말 그대로 아름다움에 속아 낭패를 본 경우라고 하겠다.

고흐 作 ‘아몬드 나무 꽃’ <위키피디아 검색>

유명화가 고흐에게도 예쁜 꽃 그림이 있다. 다들 알다시피 그의 그림은 대부분이 힘겨운 정신상태를 보여주듯 어두움 일색이다. 그러나 고흐가 자신의 생애 마지막 봄에 그린 작품 ‘아몬드 나무 꽃’은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매력적인 청록색이 칠해진 이 작품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린 그림으로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며 선물했던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아들이 형처럼 굳센 의지와 용기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라는 마음에서 형의 이름을 따 빈센트라고 아들 이름을 지었다’던 테오의 편지를 보고서 너무나 기뻤던 고흐는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아몬드 나무 꽃을 그려 선물한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그림 속에는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우기에 강한 생명력을 가진 우리나라의 매화와도 비슷한 아몬드 나무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예쁘게 피어있어 보고 있으면 청량한 느낌이 든다.

‘작지만 아름다운 꽃’ 앞서 여러 명화 속에서도 살펴봤다시피 작은 꽃 하나가 사람을 기쁘게도 혹은 슬프게도 때론 나라를 움직일 정도로 황당하게도 만드는 일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비록 미미한 생물일지라도 꽃만이 가진 매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코로나 때문에 꽃구경 하는 것도 어려워진 요즘이다. 더군다나 함께 찾아온 불경기로 꽃 판매가 잘되지 않는 지금 상황은 두말할 것이 없다.

이 기회를 빌어 오늘 귀가길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줄 꽃 한 송이를 사보는 것은 어떨런지 권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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