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3(목)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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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선의 역사와 언어를 배우는 민족학교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민족교육 수호 집회에 참여하고 남북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급진적 부르주아에 의하여 주도되던 과거의 문학에서 현장성이 강한 노동계급의 리얼리즘…, 이 프롤레타리아 문학논쟁을 가열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현장성이 강한 노동계층의 민족적 리얼리즘이 결코 계급성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는(문병란 ‘민족문학 강좌’, 남풍출판사, 1991)”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일본 내에서 마쓰다 정도로 ‘노동계급의 리얼리즘’을 추구하고 ‘조선의 자주독립 노선’을 지지한 이는 흔치 않다. 우리네 시점에서 보더라도 그의 문학은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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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가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선인을 비롯한 인물들을 통해 작품에 투영시킨 것은 해방 후였다. 일본 내에서는 민주화운동을 재일조선인과 손을 맞잡고 전개한 때가 있었다(에자키 준).
마쓰다는 처음으로 도쿄에서 교육위원 선거가 벌어지는 상황에 조선인 여성과 함께 선거 투쟁을 전개하는 사건을 소재로 삼아 집필한다. 작품명은 ‘R에 관한 일’. 그녀는 ‘R에 관한 일’을 1949년 잡지 ‘나의 대학’ 13호에 발표했다. 단편소설이지만 조선인 여성 ‘R’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가 ‘R’을 주목하며 그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얘기를 전달하니 1인칭 관찰자적 시점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라는 화자=일본인 여성은 ‘R’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연대와 공조가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나’는 단순히 관찰자적 시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때때로 전지적 시점을 내보이며 얘기에 개입한다는 점을 우선 거론하고 싶다.
소설 속에서 ‘나’라는 화자가 조선인 여성 ‘R’을 처음 본 것은 진보적 활동가들의 모임이 열린 날 저녁이었다. 화자가 한여름 다른 모임에서 돌아와 자신의 집에서 열리고 있는 회의에 참여하는 장면이 펼쳐지며 소설의 막은 열린다. 방 입구까지 가득 찬 동료들 속에서 화자는 후미에 앉은 젊은 미인 두 사람을 발견한다.
일본인 여성인 화자=‘나’는 자신을 두 사람보다 두 배쯤 나이 든 여성으로 소개한다. 그러기에 두 사람에게 더 관심이 있다고 서술하며 젊음과 외모를 동경하는 시선을 그들에게 보낸다. “나도 여자이므로, 게다가 나이를 먹었으니 이 새로운 얼굴의 여성들을 특히 따뜻하게 대해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일찌감치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작가의 장치로 읽히는 것은 왜일까? 불온, 불순하다는 말을 듣는 코뮤니즘 추구 활동에 젊은 여성들이 모습을 보이는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지만, 주목받을 만한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도하는 의장의 소개로 젊은 미인 두 사람의 정체는 밝혀진다.
“소개할게요. 당신 곁에 있는 분은 R씨, 그 옆 분이 H씨입니다. R씨는 조선분으로 전에 중부 조직에 계셨는데 이참에 이쪽 4가로 이사하셔서 우리 조직에 소속하게 됐어요. H씨는 C구의 신식 중학교 교사였죠.”
의사진행 중에 의장이 화자에게 두 사람을 소개하자 화자는 젊은 동지를 만난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화자가 더욱 각별한 감정을 드러낸 것은 R이 조선인 여성이었기 때문. 그녀에게는 그날 밤의 첫 만남이 예상 외의 일로 새롭게 느껴졌다. 화자는 그 이후로 R에게 유달리 관심을 쏟는다.
회의는 도쿄 교육위원 선거를 앞두고 조직 자금 모금운동을 급속히 펼치기 위한 목적이었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숙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깃발과 플랙카드, 서명부를 준비하고 러시아워 때 역 개찰구 앞에서 조직의 선전을 하면서 행인의 관심을 끄는 일이 필요했다. 또한 R과 S등의 조직원이 가가호호를 방문해 일용품을 팔고 그 수익을 조직의 자금으로 사용하는 안이 채택됐다.
R이 동료인 S에게 온정을 베푼 것은 두 번째 회의 때다. 장교 출신 아버지가 세상을 떠 어머니와 둘이서 지내는 신세이기에 S는 자신에게 결혼만을 강조하는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조직 활동을 한다. 그래서 S가 밤의 활동이 불가능하고 주말 낮의 활동만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R은 S의 일정에 자신의 일정을 맞추는 것이다.
R을 배려심 깊은 조선인 여성으로 그리는 작가의 필치가 돋보인다. 나아가 R과 S가 신분을 초월해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묘사하려는 작가의 의도 또한 엿보인다.
한편 작가가 화자에게 듣는, 혹은 독자에게 얘기를 전하는 역을 수행케 하면서도 회의 장소(조직 사무소)를 그의 집으로 설정, 중견 조직원으로서 두 사람을 지원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얼마나 가련한 이들인가, 그 감탄의 독백 속에 나도 모르게 R을 주요 인물로 정했다”라는 화자의 표현은 이 소설의 방향을 제시하는 표식이었던 것이다.
- 조선 의복 통제하는 일본 정부 비판 -
그럼 화자에게 조선인 여인 R의 얼굴은 어떻게 비칠까? 아니 작가 마쓰다는 조선 여인의 얼굴을 어떻게 그렸을까?
“R의 얼굴은 전혀 꾸밈이 없었고 고대 불상을 근대화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둥글고 긴 눈썹과 그 밑의 한 꺼풀 눈의 부푼 상태가 특히 그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열릴 때나 다물 때의 입매는 그리스 여자 조각상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이마, 뺨, 턱 등의 전체적인 윤곽은 ---전형적인 동양 여인의 비할 데 없이 둥근 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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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R을 통해서 조선인의 의복마저 탄압하는 일본 정부와 경찰을 비판하는 대목을 들추었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R의 볼멘 목소리를 작가는 다음과 같이 새겼다.
“조선인은 주로 흰 옷을 입죠. 조선의 부인들은 남편이 설령 토목 일을 하는 노동자일지라도…, 하루 입으면 시커멓게 변할 줄을 알면서도 그날 밤 반드시 새하얗게 세탁해 풀 먹여서…, 다음 날 아침 새하얀 옷을 입히죠. 그런데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조선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법률을 내세워요. 입고 있는 게 발견되면 일본 경찰이 검은 먹물을 등에 가득 뿌려 ××(금지) 표시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여인들이 잠을 자지 않고 깨끗이 세탁했는데 너무나 지독해요.”
일제강점기 조선의 의복까지 통제하는 제국주의의 만행을 R이 고발하는 장면이다. 이는 조선의 문화 탄압, 아니 모든 조선 여인들에 대한 학대다. 화자는 위의 언설 뒤에 “일본인이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 갖는 반감과는 어딘지 질이 다른, 완전히 조선인이 아니면 품을 수 없는 종류의 증오가 그때 R의 모든 표정에서 활화산의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R이 품은 분노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터.
그런데 화자의 시선은 그러한 처지의 R에게 적극적으로 동정을 표하지 않는 동료를 질타하는 곳까지 미치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R이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면 동지들도 더욱 열정적으로 R의 얘기를 듣지 않았을까?…. 나는 대부분 남성인 일본인 동지들이 더욱 강하게 R에게 동감을 표해주기를 바랬다”고 서술하니 말이다.
이곳에 조선인에게 무관심한 일본인 동지들에게 경고의 신호를 보내며 R의 얘기를 휴머니즘 그득한 메시지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화자의 시점이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화자가 단지 일본인 동지들만을 청자로 삼아 한 얘기는 아니었을 터. 지배계급인 모든 일본인에게 발신하는 경고장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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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에 관한 일’의 말미에는 일본의 진보세력과 재일조선인들이 합세해 ‘반전 평화’의 슬로건을 내거는 장면이 펼쳐진다. 도쿄 교육위원 선거 투쟁 와중에 R일행은 “일본은 포츠담선언으로 전쟁을 포기했으니 무기는 없다 이승만!”, “혁명 압살의 무기를 매입하려고 오는가 이승만!”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전단지를 뿌리며 이승만 방일 저지 운동을 전개한다.
R일행이 이승만의 방일 전후로 ‘재일조선인 민주단체’의 일에 더욱 몰입한 것은 당연하다.
마쓰다 도키코는 그것을 재일동포 모두에게 호소하는, 통일조선 민주 정부를 의식한 활동으로 소개했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임은 강조할 나위조차 없다.
<김정훈·전남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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