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문학평론가/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장

세상에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내년 대선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정치권에선 정제되지 않은 저급한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발원지는 대선 후보군의 입이다. 얼추 헤아려보니 뜻을 둔 사람만도 20여 명에 이른다. 아무리 다다익선이라지만, 이 문제는 좀 달리 여겨진다. 아무튼 나랏일을 해주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좋긴 한데,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리 곱잖은 것 같다. 연일 시답잖은 말과 행동으로 이전투구 모습을 보여준 탓이겠다.

요즘 대선주자들이 뱉어낸 말들을 뒤적여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언어라고 하기엔 너무 격이 낮고, 국정철학이나 국가 비전 역시 뚜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말은 남 앞에 자화상을 그려놓은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언어의 품격을 상·중·하로 나눠 설명했다. 인생과 철학을 논하면 상급에 속하고, 생활 속의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 중급에, 남의 흉을 보거나 오만과 독선에 찬 자기 자랑 따위를 늘어놓는 사람을 최저급인 하로 분류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언어품격은 과연 어느 분류에 포함될까. 글쎄, 그 답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을 의미하는 ‘언(言)’의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두 번(二) 생각한 뒤에 입(口)을 열어야 비로소 말(言)이 된다는 뜻 같다. 사람에게는 인품이 있듯, 말에도 품격이 있고, 그 품격은 곧 언품(言品)이란 것이다.

조선 시대 벼슬의 등급인 품계와 언어에 관한 재밌는 얘기도 있다. 품계는 1품에서 9품까지 있는데, 1품은 아홉 번 생각한 뒤에 한마디 말을 한다. 그러나 9품은 한 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말은 어찌해야 할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규정했다.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선현들이 말조심을 신신당부했던 까닭이다. 복잡다기한 세상을 표현할 때는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더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명색이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의도 정치는 혼탁한 막말 공해로 이미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정치지도층일수록 품격있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국 정치의 품격도 따라서 높아질 것이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언어 표현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정치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언어와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지도자의 입에서 범죄자의 말투가 나오거나 저질적인 행동을 보이면 다수의 언중이 실망하게 된다. 말에는 그 사람의 품격이 배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흔히 말은 그 사람의 그림자이며, 언품은 대화를 이끄는 힘이다. 언품에 진심이 더해지면 상대의 입과 귀를 열고 마음까지 얻게 된다. 모든 힘은 밖으로 향하는 동시에 안으로도 작용하는 법이다. 언어의 힘도 예외는 아니다. 말과 문장이 지닌 예리함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을 우리는 수 없이 봐왔지 않은가.

사물의 형체가 굽으면 그림자가 굽기 마련이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바른 법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말은 사상을 담는 그릇이며, 마음의 소리다. 우리가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할 때 말과 글을 살피는 이유다.

그렇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이 귀로 듣고, 만 사람이 입으로 옮긴다. 이게 말의 효과이며 파급력이다. 큰일을 하려거든 먼저 언어의 품격부터 높이는 게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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