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부게로 作 ‘규피드에 저항하는 소녀’

보티첼리 作 ‘봄’부분도

안토니오 카노바 作 ‘큐피드의 키스에 깨어나는 프시케’ <사진=위키피디아 검색>

손에 활과 화살을 들고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화살을 쏘는 모습이 인상적인 사랑의 신 큐피드를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귀여운 이미지 때문에 만화 속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종종 등장하기도 하는데, 달달하지만 늘 고통을 함께 수반하는 사랑처럼 행동이 짓궂기가 이를 데 없는 신이기도 하다.

미(美)의 여신 비너스의 아들로도 유명한 큐피드는 오래된 명화 속에서도 비너스와 함께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나 사랑이라는 단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자주 찾아볼 수가 있다.

보티첼리의 ‘봄’이라는 명화의 부분에 보면 큐피드는 그림 속 주인공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비너스의 머리 위로 날고 있는데 눈을 가린 채 어디론가 화살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부호 가문인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고 있던 보티첼리는 이 작품 속에 메디치가의 상징인 오렌지 나무를 그려 넣었고 이를 통해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외에도 150여 가지 꽃들과 500여 가지가 넘는 식물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봄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잘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큐피드의 화살을 맞게 될 이는 바로 비너스 옆에서 동행하거나 시중을 들며 사랑의 원리를 설명해내는 삼미신이다.

순결, 사랑,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삼미신 중 큐피드의 화살은 순결이라는 여신을 향해 조준되고 있어 ‘순결한 처녀가 사랑에 눈뜨면 아름다워진다’라는 사랑의 원리를 그림을 통해서 드러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윌리엄 부게로의 작품 ‘큐피드에 저항하는 소녀’에서도 보면 싫다는 소녀에게 억지로 화살을 들이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봄날의 꽃같이 이제 막 피어난 소녀에게 고통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해주고 싶은 큐피드의 심보는 말을 안 해도 그림 속 표정에서 읽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남의 사랑에 시시콜콜 간섭하며 감놔라 배놔라하던 큐피드의 사랑은 정작 어땠을까?

그의 연인은 신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인간 공주 프시케(psyche)였다. 어떻게 하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물론 아름다운 외모가 한몫을 했을테지만 그 과정이 그다지 편치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딸을 가진 프시케의 아버지는 딸 걱정에 한숨만 내 쉴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운 그녀에게 감히 청혼을 해오는 사람이 없었고, 낙심한 찰나 아폴론에게서 받은 신탁마저도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내용인 즉 ‘프시케가 짝을 찾기를 바란다면 신부로 치장해 암벽에 버려두라. 그러면 괴물이 나타나 그녀를 신부로 맞을 것이다’라는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녀의 짝은 괴물이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신탁을 따르기로 한 왕은 슬픈 마음을 감추고 프시케를 치장시켜 암벽에 데려다 놓는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는 프시케의 아름다움을 질투한 비너스가 있었고, 자신의 아들 큐피드를 시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추남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라고 시켰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자 어안이 벙벙해진 큐피드는 실수로 자신의 손을 화살에 찍고 만다.

이후 사랑에 빠진 큐피드가 그녀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그리고 어머니의 질투로부터 프시케를 보호하기 위해 아폴론에게 거짓 신탁을 부탁했던 터다.

이를 모른 채 서풍의 신 제피로스에 의해 괴물의 궁전에 실려 온 프시케는 까만 밤이 되어서야 남편이 된 괴물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얼굴은 볼 수는 없었지만 자상한 그의 행동에 점점 행복을 느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죽은 줄로만 알고 걱정할 가족들이 마음에 걸려 남편에게 가족을 한번 보고 오겠다고 한다. 아버지와 언니들은 건강한 프시케를 보자 너무 기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행복해 보일 뿐만 아니라 진귀한 보석들로 치장한 동생을 보자 언니들은 샘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굴도 보지 못한 남편이 무섭지는 않느냐 궁금하지는 않느냐라며 채근했고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프시케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야 만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린 다음 촛불을 몰래 켜서 얼굴을 확인하다 아름다운 모습에 촛농을 떨어트리고 만다. 어깨에 화상을 입은 큐피드는 프시케가 자신을 의심했다는 생각에 떠나버리고 만다.

낙심한 프시케는 궁전을 나와 몇 날 며칠을 큐피드를 찾아 헤매지만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물에 빠져 죽을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던 목신이 다가와 큐피드를 만나러 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고 그 길을 따라가던 중 그의 어머니 비너스와 마주친다. 시어머니가 되는 미의 여신은 프시케에게 말도 안되는 문제를 내며 이를 해결하면 아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콩쥐 팥쥐는 저리가라 할 만한 첫 번째 과제는 각종 곡식들이 섞인 자루를 저녁까지 모두 정리해 놓는 것이었다. 속상한 것도 찰나 개미 떼들이 몰려와 금세 해결해 줬고, 다음으로 받은 두 번째 과제는 사나운 황금 양들에게 가서 양털을 걷어오는 것이었다. 이 역시 강의 신의 힘으로 가뿐히 끝낼 수가 있었고, 세 번째는 지옥 입구를 흐르는 스틱스 강에서 물을 길러 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누군가 보낸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독수리가 항아리를 물고 가더니 해결해 줬다.

그러나 막장과도 같은 마지막 문제에 프시케는 절망에 빠지고 만다. 다름아닌 저승의 여왕 페르세포네에게 아름다움의 묘약을 받아오라는 것인데, 살아있는 인간인 프시케가 저승으로 가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절망한 그녀가 터벅터벅 높은 탑으로 올라가는 도중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며 저승으로 가는 법을 일러준다.

그러나 목소리는 상자를 받더라도 절대 열지 말라는 당부도 남기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판도라의 상자처럼 인간의 호기심은 이번에도 발동하며, 고생 끝에 받아온 상자를 프시케는 열게 되고 깊은 잠에 빠져버린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이 광경을 하늘에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던 큐피드는 다가가 그녀를 화살촉으로 깨우고 아버지 제우스에게로 가 그녀를 신으로 만들어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 빌게 된다.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도 불사했던 프시케는 신들의 회의를 가볍게 통과했고 마침내 신이 돼 ‘인간의 영혼’을 관장하게 된다.

짓궂은 장난꾸러기인 줄로만 알았던 큐피드의 사랑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 여인에 대한 의젓한 사랑꾼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는 영혼이 담길 수 밖에 없다’라는 사랑의 정의에도 닿아볼 수가 있었다.

독자들의 사랑에도 이와 같은 영혼의 아름다움이 가득 깃들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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