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역사는 2022년 봄을 ‘전염병(코로나19)이 창궐해 하루 10만명 넘게 감염되는 대혼란 속에 새 대통령을 뽑았다’고 기록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엄혹한 시대, 위기의 시대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들을 보면 이재명 후보를 제외하고는 지금이 ‘위기’라는 인식이 없다.

21일 대통령후보TV토론회에서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대통령을 4번 이상 지낸 프랭클린델러노루스벨트가 거론됐다. 20세기를 이끈 정치 거물들 중,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두 차례의 국난을 안정적으로 극복하여 미국을 지금의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전설적인 정치인이다.

한 후보는 루스벨트 정치철학으로 한국의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말했고, 한 후보는 뉴딜 정책의 성과가 생각만큼 크진 않으며, 자유시장경제를 왜곡했다는 비판으로 루스벨트 모델을 경계했다.

필자가 볼때, 뉴딜 정책이 갖는 중요한 의의는 정책의 호불호를 떠나, 미국이 방임주의로 대공황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지만, 다른 지역이 파시즘을 대안으로 선택하던 시절, 대중들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사회 내 극단주의자들의 성장을 억제하고 큰 틀에서의 기존 체제를 지켜낸 점이다.

단점도 많았지만 루스벨트는 ‘위기미국’을 ‘위대한 미국’으로 만든 정치가다. 필자는 그의 전기를 읽어보고 그에게는 정치가로서 다섯 가지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첫째 용기, 둘째 인내심, 셋째 아주 작은 일에서 아주 큰 일을 보고 극히 사소한 세부 문제를 포괄적인 전체와 연결시키는 능력, 넷째 이상주의와 확고한 목적에 대한 분별력, 다섯째 사람들의 마음속에 결단성을 심어놓는 능력.

무릇 정치행위란 어떠한 경우에든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의 반영 이외의 딴 것일 수가 없다. 나쁜 사람은 나쁜 정치를, 좋은 사람은 좋은 정치를 하기 마련이다. 우매한 인간에게서 현명한 정치를 바란다거나 무지한 자에게서 지혜로운 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인과법리에도 어긋나는 턱없는 욕심이라 생각한다.

정치혐오시대라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정치가 탄생했다. 하지만 사회가 커지면서 관습이나 규칙에 의해서 공동체가 강제로 가치를 배분하기 시작하고, 강한 자만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둘러싼 경쟁의 질서를 세워 분쟁을 최소화하고, 약한 자를 배려하기도 한다. 그 중심에 지도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이 있다.

지금 정치가 비판을 받는 것은 정치인들이 만든 가치의 권위적 배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탐하기 이전에 ‘정치인’이라는 권한을 누가 부여해주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도자, 정치인에게 이런 거대한 권한을 누가 준 것일까? 먼 옛날 지도자들은 “왜 당신이 우리를 다스리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하늘에서 찾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질서를 제공하는 것의 근거를 하늘로부터 온 고결한 피라고 생각했다. 삼국시대 건국 신화를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고귀한 사람임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많다. 이후 고려나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명령, 즉 천명(天命)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이 세상의 질서를 제공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는다는 민주주의 개념이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 정치 정당성의 근원은 천명(天命)이었다.

그러면, 국민이 선거 행위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시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천명(天命)은 국민이다. 대부분 정치인들이 ‘왜 내가 국민을 다스리는가?’ 스스로 자문해보지 않는다. ‘국민이 권력을 위임해줬으니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등 기본적인 정치철학조차 장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후보가 권력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권력 나누기에 혈안에 돼서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인물은 안된다. 소통과 화해를 통해 미래를 위한 역량 결집에 나서는 리더십을 누가 가졌는가 따져보시라.

지금, 이 시대, 한국은, 루스벨트의 위기극복 용기와 결단력, 세종대왕의 다면적 핵심역량 ‘정치적 멀티어십’을 갖춘 대통령이 필요하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당리당략 이전투구 파당정치 혐오정치로 분열된 대한민국을 구할자 누군가. 국민은 엄숙하게 천명(天命)을 대신해 한표를 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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