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부회장

20대 대선에서는 참 희한한 일이 많았다.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가 대결했다. 투표결과 20대 이하 남성 58.7%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20대 이하 여성의 58.0%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남녀의 성별에 따라 정당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갈린 것은 초유의 일이다. 정상적이지 못하다. 정치라는 게 남녀가 상생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인데, 남녀 사이의 분열을 획책 선동하기까지 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도 같은 선상에 있는 듯하다. 새정부는 무조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약이었다. 잠시 광주시청에서 여성정책 업무를 해봤던 필자는 의아했다. 여성정책은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육아 노인 청소년 등 가족업무를 포괄하는데, 가족과 삶의 돌봄정책을 폐지한단 말일까.

국민의힘 안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서병수 의원은 “젠더의 차이를 가를 게 아니라 함께 헤쳐 나갈 길을 제시하는 게 옳은 정치”라 했고, 조은희 의원은 “여성가족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해야 된다”고 했다.

결국 643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고 성평등 추진체계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참여연대 등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여가부의 ‘역사적 소명’인 성차별 해소·성평등 실현은 여전히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근거로 얘기한 성차별이 없어졌다는 진단부터 사실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세계 성격차지수에서 152개국중 102위(세계경제포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성별임금격차 1위, 유리천장지수 꼴찌(이코노미스트), 기업의 여성이사 비율 4.2%로 세계 평균의 5분의 1 수준(딜로이트), 여성국회의원은 OECD 평균(31.6%)의 3분의 2정도인 19% 수준이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등에 따르면 2020년 4대 강력범죄(흉악) 중 성범죄가 91%를 차지할 정도로 성범죄가 많은 나라다. 행복지수에서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는 북유럽 국가 대부분은 성평등 선진국들이다.

수많은 통계가 증명해주듯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용률이 낮고 훨씬 더 많은 폭력에 노출돼 있고, 기업은 여성이라 뽑지 않고, 가사노동, 육아 등 돌봄은 여성에게 전가돼왔다. 여성의 고용률이 낮거나,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 임원에 여성이 적은 이유는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 뿌리깊게 내재돼 있는 성별고정관념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여가부는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한 후 보육업무, 가족정책을 이관받아 여가부로 확대 개편됐다가 다시 보육, 가족정책이 보건복지부로 이관되고, 또 다시 가족정책과 청소년정책이 여가부로 이관되는 등 정부의 성격에 따라 그 기능에 대한 부침을 반복했다. 이런 부침에도 불구하고 여가부는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로서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등 성 주류화를 위한 정책 수단의 제도화 및 정책적 실행, 젠더 이슈 공론화 및 법·제도 정비를 통한 추진기반 마련, 젠더폭력 예방 및 피해자 지원체계 구축 등의 성과를 보였다. 이런 성과는 여가부가 독립부처로 존재해 성평등 정책을 기획·통합해 집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이 부족했고, 그 결과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청년세대 및 사회전반에 성평등 의식은 향상된 반면, 청년세대 간의 성별 갈등, 세대별 성평등 인식 차이, 편향성 등으로 여가부 폐지가 대선 공약이 되도록까지 방치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가부는 독립부처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을 보강하고 성평등 정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가족의 다변화로 인한 가족정책의 중요성은 어느 시대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선진국들은 늘 새정부가 출범할 때 최우선 순위로 성평등 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 성평등 비전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미래’를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이고 시대정신의 응축이다. 성평등 국가 비전 속에서 ‘모두를 위한 존엄’이 지켜지고 인권감수성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정당의 이념, 정책방향, 지도자의 철학에는 ‘평등’ ‘평화’가 근저에 깔려있어야 하고, 그 역사적 소임을 다해야 한다. 이대남 이대녀, 갈라치기, 편가르기, 혐오, 패거리, 정치문화의 수준을 떨어뜨렸던 분열정치가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야 할 법칙까지 막아설수는 없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더 높은 수준의 연대와 통합을 꾀하기는커녕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분열을 증폭시키면서 세(勢)를 모으는 행태는 자기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짓밟는 일이다. 여가부를 폐지하기 보다는 개선하는 방안에 무게를 둬야 한다. 가족복지와 양성평등을 제대로 실행할 기관으로 새 출발 하는 게 맞다.

‘이대남’ ‘이대녀’도 우리 아들 딸이다. 대결을 넘어 ‘우리’ ‘우리 사회’로 통합하고 보듬어내는 정치가 제대로 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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