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5(화)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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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관사 안에서 한바탕 즐기는데
자는 객 이불 없고 촛불도 꺼져가고
열 두 봉 꿈에 어리여 추운 줄 모르겠네.
扶桑館裡一場驩 宿客無衾燭燼殘
부상관리일장환 숙객무금촉신잔
二十巫山迷曉夢 驛樓春夜不知寒
이십무산미효몽 역루춘야부지한
조선시대 시인의 대부분이 높은 벼슬아치들이었다. 그래서 시가 권세의 여기(餘技)로 떨어지는 일도 많았음을 보인다. 시인의 시가 당대는 천하의 명품으로 알려져 좋았지만 그의 관운도 어지간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벼슬이 높고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위인들의 뒷모습을 보면 외직이건 경직이건 거드름 피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무산 열 두 봉에 새벽꿈이 어리는데, 역루에서 맞이한 봄밤은 차가운 줄 모르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자는 길손 이불 없이 잠들고 가는 촛불도 꺼져가네’(寄星山妓)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목계(木溪) 강혼(姜渾:1464-1519)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9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이라는 이유로 장류됐으나, 얼마 뒤 풀려나와 문장과 시로써 연산군의 총애를 무한히 받았던 인물이다. 1506년 중종반정을 주동하던 박원종 등이 죽이려 했던 것을 잘 피했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부상관사 안 두 사람 한바탕 즐기는데 / 자는 길손은 이불 없이 잠들고 가는 촛불도 꺼져가네 // 무산 열 두 봉에 새벽꿈 어리는데 / 역루에 맞이한 봄밤은 차가운 줄 모르겠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성산기녀에게 주다(1)’로 번역된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스캔들로 시끌벅적할 일이겠지만, 봉건적 조선 사회에서는 일부다처제였다. 기녀를 첩으로 두는 것은 다반사였고, 신분이 양반계열이거나 능력만 있으면 첩을 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시인도 대제학 공조판서까지 지낸 인물이었기에 성산기녀의 따스한 품속에 묻혀 지내는 일은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
시인은 아름다운 여인의 품속에서 더불어 살면서 이불이나 촛불이 없는 것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시상 주머니는 넉넉해 보인다. 부상관사 안에서 두 사람이 한바탕을 즐기는데, 자는 길손은 이불도 없고 촛불도 꺼져간다고 했다. 살림가지며 생활필수품이 없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자신만만한 의지를 보인다.
화자는 무산에서 꿈을 어리면서 봄밤의 차가움도 참아내겠다는 자기 소신이다. 무산 열 두 봉에 새벽꿈이 어리는데, 역루에서 맞이한 봄밤은 차가운 줄 모르겠다고 했다. 무산은 휴전선을 따라 북류해 고성 부근에서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남강과, 남류해 서화계곡을 따라 흐르는 소양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곳에 있다고 한다.
※한자와 어구
扶桑: 중국 신화에서는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館裡: 관아 안에서. 一場驩: 한바탕 즐거워하다. 宿客: 자는 길손. 無衾: 이불도 없다. 燭燼殘: 촛불이 꺼져 가다. // 二十巫山: 무산 열 두 봉. 迷曉夢: 새벽꿈이 어리다. 驛樓: 역의 높은 누각. 春夜: 봄이 한스러운 밤. 不知寒: 차가움을 알지 못함.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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