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랭이 할아버지>

우리 동네에서 푸랭이 할아버지는 딱 한 분이었다. 푸랭이는, 무등산 수박을 말한다. 무등산 수박은 재배 조건이 까다로워 무등산에서만 나오는 검은빛의 수박이다. 줄무늬가 없고 과피(과일 껍질)도 아삭아삭하며 일반 수박보다 달고 시원한 맛에 크기가 큰 것이 특징이다. 옛날부터 임금님께 진상이 되었을 정도로 무등산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다. 때문에 무등산에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푸랭이 농사를 지었다. 그래도 푸랭이 할아버지는 딱 한 명 뿐이었다. 푸랭이 할아버지는 바로 우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푸랭이 할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할아버지가 마을의 푸랭이 농사법을 온전히 바꿀 정도로 푸랭이를 너무 애정 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푸랭이 농사를 지으셨다. 증조할아버지도 푸랭이 농사꾼이셨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증조할아버지를 도와서 푸랭이를 농사지었던 할아버지는 성인이 되자 도시로 가셨었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지쳐 귀향해 증조할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으셨다. 잘 되던 사업까지 다 접어버리고 오신 거였다. 돈을 더 잘 벌 수 있었음에도 할아버지는 귀향과 푸랭이를 택하셨다. 증조할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져 일손을 도우러 왔다가 노력하는 대로 결실을 보는 매력에 빠져서 푸랭이 농사를 이어받으시게 되었다.

이렇게 택한 푸랭이를 정성껏 농사지으셨다. 새로운 농사법을 공부해서 시도해보시기도 하고, 새로운 비료를 조합해 시도도 해보시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더군다나 푸랭이를 알리기 위해서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파실 정도로 애정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노력 덕에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푸랭이는 좋은 품질로 소문나, 계약하는 소매나 도매점이 많아졌다. 할아버지의 푸랭이는 마을에서도 제일이라서 마을 사람들이 푸랭이 농사법을 알려달라 간곡히 부탁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나서서 마을에 농사법을 알려주셨고 그 결과 동네의 푸랭이 생산량과 판매량이 몰라보게 늘어났다. 할아버지의 별명이 푸랭이 할아버지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그게 지금까지도 자부심인 사람이셨다. 푸랭이를 이만큼이나 잘 키우는 방법을 확산시켰다고. 할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그 얘기를 입버릇처럼 꺼내셨다.

일평생 푸랭이를 바라보고 살아오신 할아버지에게 푸랭이는,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청춘을 다 받친 것이고, 자식들을 키우게 해준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푸랭이와 함께 세월을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생을 함께했던 동반자였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에게 푸랭이란 그 의미가 남달랐다. 가족들 모두 그런 할아버지를 이해했다. 그 중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건 손자인 나였다.

맞벌이인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게 일하셨다. 방학 때도 휴가를 못 갈 정도로 바쁘게 일하셨다.도시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을 대신에 나는 방학 때면 할아버지 집에서 살곤 했다. 나도 매일 비어져 있는 우리 집보다는 저녁이나 아침마다 얼굴을 볼 수 있는 할아버지 집이 더 좋았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해왔던 터라, 나는 조금 크곤 나서는 할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매일 비닐하우스 밭에 가서 일하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쳤던 어린 날이 시작이었다. 할아버지가 딴 푸랭이를 손수레에 넣고, 푸랭이를 닦는 정도의 잡일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일을 물려받아도 되겠다면서 치켜세워주시면서도 약간의 기대감을 표하시기도 하셨다.

이번 방학 때도, 당연히 할아버지의 집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방학식이 끝나자 미리 챙겨두었던 짐을 가지고 할아버지 집으로 내려갔다. 내가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나를 반겨주시며 어서 짐을 풀라면서 밥을 차려주셨다.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었다. 그저 밥에 나물 반찬, 계란 후라이, 국일 뿐인데 오랜만에 먹는 할아버지 밥에 허겁지겁 먹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천천히 먹으라 말하시면서 수박화채를 만들어주셨다. 당연히 푸랭이로 만든 거였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수박화채를 보면서 또 푸랭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랑할 때처럼 배를 살짝 내밀었다. “당연하지, 할아버지가 키운 푸랭이는 최상품이야, 그것도 특등품.”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는 푸랭이가 그렇게 좋아?”

“그럼, 푸랭이가 내 인생이고, 내 인생이 푸랭이인데.”

“역시 푸랭이 할아버지.”

푸랭이 할아버지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내게 쓸쓸한 미소로 말하셨다.

“푸랭이 말야. 이제 못할지도 몰라.”

내가 당황해서 다시 묻자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농사짓는 게 힘에 벅차시다고 했다. 몸이 말이 듣는 한 계속할 테지만 생산량이 확연히 줄었다고 말하셨다. 더군다나 요새는 푸랭이의 인기가 적어지면서 계약한 가게들도 점점 줄고 있다고 하셨다. 이대로면 정말 푸랭이 농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 말을 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근심걱정보다는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자신의 일평생을 받쳤던 푸랭이를 그만둬야 하는 할아버지의 기분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까지 표정이 어두워지자 할아버지는 괜한 얘기를 하셨다고 말하셨지만 나는 계속해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그런 어두운 표정은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떻게 더 방법이 없을까 했지만, 고등학생인 내가 무언가를 하기엔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거니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때문에 나는 부모님께 지금의 상황을 알고 계시냐고 물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상황을 알게 된 부모님은 할아버지가 이참에 일을 그만두시고 도시로 와 편히 여생을 사셨으면 했다.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일을 그만두시는 건 어떠냐 물어왔다. 할아버지는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하셨다. 결국, 부모님과 할아버지는 의견차이로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후회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할아버지에게 일찍이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를 구했던 나는 할아버지의 괜찮다는 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더라 면하고 계속 후회만 쌓여갔다.

그러다 어느 날 수박밭에서 계속 일하시던 할아버지가 점심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내가 할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는 나와 함께 밥을 먹겠다고 매일 점심때는 집으로 오셨던 할아버지였다. 그렇기에 할아버지가 점심시간이 한참을 지나고서도 돌아오지 않으시는 건 의아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건, 옆 밭에서 푸랭이 농사를 하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셨다. 할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쓰러졌다고 말했다. 일사병 때문에 쓰러진 것 같다며, 지금 할아버지가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빨리 가보라고. 나는 그 전화에 부모님께 연락할 새도 없이 할아버지가 계신다는 병원으로 황급히 향했다. 할아버지는 진찰을 받고, 넘어지면서 부러진 다리에 깁스하시고 수액을 맞고 계시는 중이었다. 간호사가 내게 할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해주고 내 눈으로 수액을 맞고 계신 할아버지를 보고 나서야 부모님께 연락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깨셨다. 할아버지는 언제 여기 왔냐며 호들갑이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호들갑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정말 위험했다고 말하는 내게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시는 할아버지는 어쩐지 힘이 없으셨다. 수액까지 다 맞자 할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하셨다. 우리는 안된다면서 이렇게 된 거 입원하셔서 쉬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몸이 성치 않은데도 오로지 푸랭이 생각밖에 없었다. 여름에는 푸랭이 철인데 이렇게 입원해서는 기껏 키워둔 푸랭이를 따지도 못한다며 할아버지는 입원을 극구 반대하셨다. 하지만 이미 다리가 낫을 동안 입원해 있기로 의사와 이야기를 마친 부모님에 의해서 할아버지는 입원하시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입원이 결정되자 자신이 키워둔 푸랭이가 이번에 전부 폐기하게 됐다면서 슬퍼하셨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이제 슬슬 푸랭이를 수확해 전국의 계약한 도매, 소매점으로 보내야 할 때였다. 하지만 푸랭이 농사를 홀로 짓고 계신 할아버지가 입원하고 있으셔서 푸랭이를 수확할 사람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전부 제 푸랭이를 수확하기도 바쁜 시기였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일을 휴가 내고 오는 건 힘들었다. 때문에 이번에 힘들게 맺어낸 푸랭이들을 전부 폐기해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제 자식 같은 푸랭이를 전부 제 손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것에 굉장히 침울해하셨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없을까 생각했다. 가뜩이나, 부모님께 말을 한 걸 후회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더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찾아다니게 됐다. 그러다가 내가 할아버지 대신 푸랭이를 수확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어릴 적부터 지냈고, 옆에서 수없이도 봐왔던 푸랭이 수확이었다. 더군다나 중학교 때부터는 할아버지를 도와서 푸랭이를 수확하기도 했었다. 덕분에 수확하는 법도 알았고, 할아버지에겐 아직 한참을 못 미치지만 나름의 노하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곧바로 수확 철에 맞춰서 푸랭이를 수확하기로 했다.

푸랭이를 수확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챙겼다. 푸랭이 줄기를 자를 가위와 목장갑, 손수레 같은 것들부터 편한 옷과 모자까지 준비를 단단히 하고선 푸랭이 밭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할아버지의 푸랭이는 튼실하고 빛깔도 선명하게 나 있었다. 언제나처럼 최상품의 푸랭이였다. 나는 푸랭이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가져온 작업 방석을 매곤 푸랭이의 줄기를 잘 살피고 적당한 지점에서 잘랐다. 그리고 잘린 푸랭이를 품에 안 듯 해서 끌어내려 수레에 조심히 옮겼다. 사실상 푸랭이 수확은 간단했다. 다만, 푸랭이가 상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무거운 무게를 계속 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들 뿐이었다. 할아버지를 도와 많은 푸랭이를 수확했던 나지만, 이 넓은 밭에 푸랭이를 다 수확해야 한다는 거에 조금 걱정이 들었다.

일단, 걱정보단 계속 몸을 움직이면서 푸랭이를 수확했다. 줄기를 자르고, 푸랭이를 끌어내리고 손수레에 옮기고. 자르고, 끌어내리고, 옮기고. 그 세 가지 행동만을 두어 시간 동안 반복했더니 팔이며 허리며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욱신거리다 못해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고 팔은 스스로 덜덜 떨릴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이런 일을 어떻게 혼자서 해오신 건지.

푸랭이 수확은 도저히 하루 만에 끝날 일이 아니어서 사흘 동안 걸쳐서 끝낼 수 있었다. 푸랭이 수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부 다 따내고 난 뒤, 푸랭이를 깨끗하게 닦아내서 도매점과 소매점용에 맞게 각각 포장해야 완전한 푸랭이 수확이 끝이 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 푸랭이 수확을 마치니 일주일이나 걸렸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빨리 혼자서 해오셨으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푸랭이 수확을 마치고 일주일 만에 할아버지의 면회를 갔다. 부모님도 같이 오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손주에 할아버지는 화색 하면서 반겨주셨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선물이 있다면서 내가 수확한 할아버지의 푸랭이를 건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에 나는 확실히 말했다.

“푸랭이 폐기할 필요 없어요. 제가 다 수확해놨으니까, 할아버지는 이제 푹 쉬시기만 하면 돼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곤 내가 수확한 푸랭이를 보면서 한참을 고맙다고 말해오셨다. 푸랭이와 함께 내 머리를 쓰다듬는 할아버지의 손은 내가 아는 할아버지보다 훨씬 나이 든 손이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아 죄송할 뿐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따듯해서 나는 그저 웃었다. 할아버지는 내 웃음을 보시고 푸랭이를 잡아서 어서 먹어보자며 재촉하셨다. 그제서야 원래의 푸랭이 할아버지로 돌아오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역시 푸랭이 할아버지일 때가 가장 좋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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