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만난 김석출 작가.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내 고향은 언제나 한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자기 나라를 항상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고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어디서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죠.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작품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디아스포라의 삶과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60여 년 간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이어온 재일작가 초대전이 마련됐다. 오는 5월26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리는 디아스포라작가전 ‘김석출-두드리는 기억’이다.

하정웅미술관은 해외에 거주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디아스포라 작가를 초대해 그 성과를 조명하고, 예술을 통한 역사와 문화 교류의 의미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지난해에는 재일작가인 김영숙 씨를 초청해 전시를 진행했다.

올해는 하정웅컬렉션 작가로서, 일본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재일작가 김석출을 초대해 전시를 꾸몄다.

전시는 시대 흐름별로 작가의 작품 주제를 ‘재일디아스포라, 김석출의 생애’, ‘미술에 입문과 재일의 인권’, ‘광주의 기억’, ‘되돌아보는 유관순’, ‘과거와 현재를 잇다’ 등으로 구성했다. 10대 후반에서부터 최근작까지 60여 년 동안의 예술세계 전체를 조망한 105점 작품과 아카이브자료 100여 점을 선보인다.

‘되돌아보는 유관순’

김석출 작가는 일제강점기 시대 이주와 해방, 조국 분단, 가난과 차별, 가족 이산 등 재일디아스포라 역사의 전형적인 삶을 경험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고전 형식으로 구성됐다.

전시 초반부에는 작가의 자화상들이 여러 점 걸려있다. 이는 일본에서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또 1970년대 유신 독재 시절 열사들의 당당한 모습이 엿보이는 회화도 눈길을 끈다.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지만 결연한 의지가 담긴 눈빛과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아카이빙 자료들은 일본 도서관에서 수집한 기사들로, 1980년 5·18 항쟁 기간 작가가 참고했던 일본 신문들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1980.5.27.’

작가는 이러한 매체를 통해 5·18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으며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으로 20여 년 간 ‘5월 광주’ 시리즈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는 1980년 정치·이념적 경계를 넘어 재일작가들을 포괄한 단체 ‘고려미술회’를 창립했다. 1985년에는 ‘고려미술회 연구소’를 설립해 재일작가 육성에 힘썼다. 당시 재일작가라는 이유로 전시장을 구하기조차 어려운 차별적인 분위기 속 작품 발표 기회를 제공하는 등 많은 역할을 했다.

그는 끊임없이 재일과 민족을 둘러싼 불의와 부조리에 반응하며 이를 회화로 남겼다.

2층 5전시장은 작가가 2000년대 들어서부터 시작한 ‘유관순’ 연작을 소개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소녀 열사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유관순의 맑은 정신을 담아내고자 한 작품들이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작가가 유관순 열사를 주제로 그린 작가의 동화책 삽화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김희랑 하정웅미술관장은 “부모로부터 시작된 디아스포라적인 삶은 그의 작품세계 형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재일로서의 삶이 녹록하지는 않았지만, 작가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지니며 시대의 불의와 부조리를 주시, 60여 년 간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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