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숙희

사진을 보는 건 조금 쓸쓸한 일이다
어느 먼 추억 속에 꽂혀 있는 생의 한 갈피
사진은 왜 과거 속에서만 희미하게 웃을까

나비가 잠시 앉았던 것 같은 그때 거기서
젊은 한때가 젊은 채로 늙어가는데
사진은 왜 모르는 척 모서리만 낡아갈까
(시조집 ‘먼 길을 돌아왔네’, 푸른사상, 2020)

[시의 눈]

앗따, 우리 영감도 스물한 살 젊었을 때는 미남이었지라우. 힘도 장사였어. 동란 때 이불 보따리에, 보릿자루 셋에다, 김칫독, 된장항아리까지 짊어지고 역전으로 뛰었제. 5남매 이끌고 나도 죽자사자 쫓아갔당께. 새벽기차를 탈라고 하는디, 아, 연착한다는 거여. 그때 읍내 사진사 양반이 찍었제. 찡그리지 말고 있으락 했어. 부산 피난 동네 가서 빼준 게 바로 이것이구먼. 지랄맞고 나 그때 웃었는가 모르것어. 팽주 댁은 모서리 낡아가는 흑백 사진 한 장을 불쑥 가리킵니다. 생사를 바꿀 만큼 위태로웠지만 사진을 찍는다니까 웃는, 그게 젊음 때문이었겠지요. 처절한 시대를 버튕긴 ‘생의 한 갈피’를 사진에 담던 순간이 느릿 지나갑니다. 고사리 더듬이처럼 꼼지락거린 막순이가 등뒤 미지근히 전해져 아, 애가 살아있구나, 펄쩍펄쩍 뛰던 때군요. 근디, 사진은 왜 그걸 모르는 척하고 있을깨라우. 오늘이 마침 영감 제삿날이여. 인자 영감 생각이 나도 이 사진 안 볼라요. 눈물은 고하간에 쓸쓸해지려는 맘이 영 거시기하구만. 거친 손이 나비인 듯 잠시 헐렁한 가슴에 얹혀집니다. 서숙희 시인은 경북 포항에서 나, 1992년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2000), ‘손이 작은 그 여자’(2010) 등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지상의 동반자로 삼으며 아픔이나 슬픔 또한 따듯하게 품는 시리도록 겸허한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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