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2024년 10월10일 20시40분, 단 한 줄의 속보가 떴다. ‘작가 한강 노벨문학상 선정!’ 좀체, 웃을 일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전 국민을 기쁨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 제정돼 첫 수상자로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을 배출했으니, 작가 한강이 123번째인 셈이다. 세계적인 문호로 추앙받는 앙지레 지드, 펄벅, 헤르만 헤세, 헤밍웨이, 타고르, 알베르 까뮈 등이 모두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작가 한강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가 있은 지 20여 일이 지났건만, 그 감동의 파장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에서 출렁이고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은 작가 개인의 문학적 성취를 넘어 국가 브랜드 가치는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위상 제고에도 결정적 계기가 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요즘 듣자 하니, 노벨문학상 수상작 ‘채식주의자’가 청소년 유해 도서로 지정된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논란의 중심은 ‘문학적 표현의 자유’냐와 ‘청소년 보호’라는 관점의 견해차인 것 같다. 서로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의 지적 수준과 시민의식의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한림원이 수상 이유에서도 밝혔듯이, 한강의 작품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감각적인 문장과 철학적 깊이를 지닌 게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주로 인간의 고통, 상처, 그리고 그로부터의 치유를 다루고 있다. 한강의 소설들은 독자에게 감정적 반응을 끌어내며, 특히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직시하는 방식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작품을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어둡거나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는 표현에 대해 지적하는 이도 없지 않다.

지금 논란이 된 ‘채식주의자’ 역시 인간 본성과 폭력,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행위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비정상성에 대한 탐구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면서 예술적 가치와 감동을 동시에 전달한 수작이다. 이러한 복잡한 성격의 작품이 사회적 기준에서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청소년들을 문학과 담을 쌓게 할 순 없다. 문학은 다양한 시각과 세계관을 접하게 하고, 이를 통해 비판적 사고와 상상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만약, 유해 도서 지정이란 틀에 가둔다면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문학적 폭이 줄뿐만 아니라 창의적 사고를 기를 기회조차 막는 꼴이다.

사실, 우리와 달리 서구 문학계는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요시 한다. 그래서 청소년 유해 도서 지정에 대한 우리의 작은 논란들이, 그들에게 자칫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과도한 검열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학 작품을 관통하는 고전적 주제는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 탐구’로 귀결된다. 다만, 그 같은 주제 의식이 문학의 장르에 따라 다소 다른 양식으로 드러날 따름이다.

이러한 문학적 특성으로 볼 때, 청소년 유해 도서 지정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구체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여기서 고민할 건 딱 두 가지다. 한국 문학을 우리 안에만 품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K-문학으로 키워서 제2, 제3의 한강을 배출할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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