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딸이 아이 키우는 모습을 보면 우리 때와 크게 다르다. 저염식이라고 해 철저하게 염분을 통제한 식단을 유지하고, 절대 TV나 동영상도 보여주지 않는다. 잠시 손주를 돌봐야 해서 딸 몰래 컴퓨터를 통해 아이가 좋아하는 작은별 노래 동영상을 잠시 보여줬다가 곤욕을 치렀다. 거실로 데려갔더니 계속 서재의 컴퓨터로 와서 다시 보여달라며 떼를 썼다. 동영상의 신기함이 아이를 매료시킨 모양이었다. 아이에게 동영상 보여준 것 아니냐며 딸애가 즉각 반응을 보였다. 발을 잡고 거꾸로 번쩍 들어 올려 시계추처럼 앞뒤로 흔들어주는 시계추 놀이, 손발을 동시에 잡아 범종 타종식 하듯이 좌우로 흔들어주는 타종 놀이, 그리고 먹을 것도 주며 한참을 노력한 결과 겨우 아이의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동영상을 보게 하는 것의 효과 및 유해성을 검색해보니 부작용이 생각보다 크다. 2세 이전에 TV 시청을 시작한 아이들은 언어 발달 지연 위험이 6배 높고, 하루 2시간 이상 TV를 시청하는 4세 이하 아이들은 언어 발달 지연 확률이 4배나 높았다. 뇌 기능 발달 지연도 발생했다. 동영상 노출 시간이 많은 아이일수록 뇌 백질의 발달 속도, 특히 신경 임펄스 속도가 느렸고, 스크린 노출이 많은 아이들은 생각 속도와 읽기 쓰기 능력이 떨어졌다. 동영상 시청시간이 늘어나면 주의력과 집중력, 충동 조절, 감정 조절 등의 정서발달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 외에도 동영상 시청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지적하는 연구는 참으로 많았다. 요새 젊은 부부들이 아예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동영상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디즈니 영화 테이프를 구해 계속해서 보여줬다. 그렇다고 해서 위에서 지적한 여러 문제가 나타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볼 때마다 처음 보듯이 빠져들어 재미있게 보았고, 비디오를 보면서 영어에 익숙해지고, 상상력도 커진 것 같았다. 과학적 연구 결과 많은 부작용이 있다고 하니 믿어야겠지만, 이러한 연구 때문에 동영상 보여주는 것에 질겁을 하는 딸을 보면 이 또한 극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깨달은 것은 극단은 늘 다른 유형의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스크린 노출 기회 자체를 차단하려고 하더라도 스크린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 소아청소년협회도 18-24개월 아이에게는 아예 금할 것이 아니라, 고품질 프로그램을 선별해 부모와 함께 시청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2-5세 아이들의 경우 하루 1시간으로 제한할 것도 권고한다.

의학 학설은 계속해서 바뀐다.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동영상 시청시간에 대한 연구 결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동영상 시청시간의 효과와 부작용은 아이의 특성, 부모의 특성, 사회문화, 가정 및 주변 환경 등등에 따라 차이를 보일 것이다. 연구 결과를 맹신하기보다는 우선은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길러야 한다. 일반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면서 다른 아이와의 비교 속에서 자기 아이의 반응을 살필 필요가 있다.

자녀 통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의 동영상 시청시간 통제이다. 아이 덕에 자신의 습관을 돌아보고, 아이를 위해 동영상 시청시간을 조절하다 보면 자신도 함께 커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동영상 시청시간 통제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일상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할 것인가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혹은 여러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수고로움 때문에 자연스러운 성장 기회를 많이 주기 어렵다. 하나의 대안은 어린이집을 마친 후와 주말에 가능하면 이웃과 공동육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하는 것이다. 2세 이하 아이의 뇌 발달을 위해서는 동영상 시청 시간을 최소화하고, 아날로그 세계에서의 경험과 상호작용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놀이터로 산책로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좋다.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은데 주위에서 그런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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