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5(화)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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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꽃 피는 찰나를 보지 못했으나 그날 그 시각, 11시22분에 가슴 속에서 순간 꽃봉오리가 터지는 것을 발견했다. 메마르면서 식어가던 온몸의 피톨들이 새로이 꿈틀거리며 살아 돌아오는 것을 그 시각에 느낀 것이다.
그동안 몸과 마음이 개운치 않아서 예전의 루틴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평화로운 일상을 일시에 앗아간 그자를 떠올리면 도저히 억울하고 분해서 죄 없는 벽만 두들겨 패고 있었던 것이다. 덩달아 나라 안에 그를 추종하는 위선자들이 백방으로 날뛰는 걸 볼 때는 침이라도 뱉고 싶을 만큼 증오로 가득한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상식이 무너지니까 모든 가소로운 자들이 주인인 양 설쳐대는 꼬락서니를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마치 곤궁한 양민들의 곡식을 야금야금 훔쳐서 제 구멍 속에 숨기기에 바쁜 들녘의 들쥐 떼처럼, 여기저기 숨어 있던 들쥐들이 세상 밖으로 정체를 드러낸 것이니, 나라 안의 모습이 거울 앞에 드러난 지귀(志鬼)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간 정부로부터 정을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정마저 빼앗겨 버렸다. 아예 정이란 걸 모르고 태생한 집단인 만큼 삭막하고 건조하고 억압적인 사회 풍토를 조성해버린 것이니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무지하고 혹독한 정부를 견디느라 우리의 귀중한 에너지를 쓸쓸하게 소비해버린 것이 아까울 뿐이다.
지난주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을 비롯해 414명의 문인들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한 줄 성명’을 발표했다. 동시에 전국에서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2천487명의 회원들이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필자가 속해 있는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들도 릴레이 천막농성과 피켓시위를 통해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면서 ‘한 줄 성명’을 발표했다.
“시가 내게로 왔다.”로 널리 알려진 칠레가 사랑한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등장하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장편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와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일포스티노』를 감상하면서 현 시국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네루다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아르튀르 랭보(1854-1891)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1873)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새벽 세 시의 별들은 유난히 영롱해서 눈빛이 상큼해진다. 동서남북 어디에나 별은 박혀있지만, 동쪽 하늘은 듬성듬성 외로이 빛나고 남쪽 하늘은 잔칫날의 문전성시처럼 왁자하다. 서북쪽 능선 위에는 북두칠성이 큰 국자의 홈에 무언가를 감춘 듯 내밀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그날의 큰 선물임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지천에 드문드문, 옹기종기 올라온 풀꽃들은 정겨워도 혹한의 계절을 인내한 걸 생각하면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양지바른 쪽의 꽃들이 더 윤기를 띠고 밝은 표정을 짓지만, 응달에서 자신의 존재를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는 꽃들을 지켜보는 일은 애달프지만 그만큼 더 정이 가고 사랑이 더 머무르게 된다.
우리는 응달에서 인내하며 자라고 있는 풀꽃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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