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서 계수초등학교 교사

“기억하지 않는 고통은 반복된다.” 홀로코스트 기억의 맥락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 말은, 역사가 비극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광주는 해마다 5월이 되면 도시 전체가 ‘기억의 교육장’이 된다. 거리마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의 현수막이 걸리고, 학교 안팎에서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다양한 수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기억이 단지 기념일의 행사로만 소비된다면, 우리는 과거를 비극에 머무른 단절된 역사로만 알게 된다.

올해의 5월은 유독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회 전반에서 ‘법치’와 ‘정의’, ‘민주주의’라는 단어들이 무겁게 소환되는 가운데, 우리는 다시금 5·18 민주화운동이 단지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국민을 향한 부당한 권력 행사와 불법적 폭력이 45년이 지난 후에도 되풀이된 지금의 현실 앞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 부당함에 맞섰고, 정의를 향한 외침으로 또 한 번 민주주의를 지켜내었다. 이러한 일들을 겪어내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다시금 품게 된다.

그렇다면 교실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5·18 민주화운동이 학교 교육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지고, 아이들 각자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의 모습, 그리고 우리가 길러내고자 하는 다음 세대 시민의 모습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한 답이 돼야 한다. 며칠 전 5월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 여러분이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나요?” 질문을 통해 아이들에게 만약 내가 그때 광주 시민이었다면 어땠을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말이 없다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뒤이어 말을 꺼낸다. “무섭고 피했을 것 같아요.” “정의를 외치고 싶지만 나 혼자라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는 아이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단순한 역사 전달을 넘어, 그 상황을 공감하고 상상하고 스스로 입장을 정립하는 연습이 이루어지게 한 것이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암기가 아니라, ‘왜 기억해야 하는가?’,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함으로써 기억을 통해 미래를 묻는 교육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또한 교육은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보며 미래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 민주주의는 교실에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 되어야 하고 아이들의 삶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를 투표와 제도 속에서만 생각한다. 하지만 교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토론, 일상의 문제들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들어주는 일, 다양한 질문을 허용하는 분위기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교육 없이는 자라지 못한다. 이렇게 길러진 우리 아이들의 민주주의는 각자의 머리와 가슴속에 튼튼한 뿌리로 자리 잡아 역사를 통해 공감하고 과거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키우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5월이 될 때마다 다시 교실에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은, 오늘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게 만들고 있는가?”

기억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것이다. 한 아이가 5·18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시간에 이렇게 적었다. “5·18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면서 제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어요. 저는 그날을 겪지 않았지만, 이제 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 문장은 우리 광주 교육이 도달해야 할 지점을 보여준다.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고, 내일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한다. 기억을 의무로 강요하지 않고, 공감으로 풀어내며, 질문으로 연결하는 교육. 그것이 미래를 살아갈 태도를 키우는 진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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