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아동문학가

“넌 몇 살이니?”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에서 만나는 조개껍데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크고 작은 크기를 비롯해, 모양과 색깔들이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중에서도 껍데기의 무늬가 모시로 짠 옷감의 무늬결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다는 이름, 모시조개는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껍데기 색이 다르다. 검은빛을 띠는 흑모시인지, 흰색에 노란빛이 섞인 백모시인지를 보면 조개의 일생을 알 수 있다. 아기 조개가 자라는 만큼, 껍데기도 따라 커지며 층층이 선을 이룬 조개껍데기의 나이테를 통해 조개의 나이도 알 수 있다. 2007년 아이슬란드 인근 바다에서 발견된 북대서양 대합조개의 추정나이가 507살이라니, 조개의 수명도 짧지는 않다.

그렇다면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을까.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녹의 아들이자 노아의 할아버지 무드셀라처럼 969세까지 살 수 있을까. 프랑스의 잔느 칼망 할머니처럼 122세까지 살 수 있을까. 1960년대에만 해도 52.4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1990년에는 71.4세를 넘어 이제는 약 83.5세로 예상하고 있는 만큼, 허황된 꿈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대수명의 연장이 누구에게나 희망이 되진 않는다. 날마다 빠듯한 생활에, 결혼에서부터 자녀교육에 노후생활까지의 인생설계를 70세나 80세쯤으로 계획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힘들게 살아온 만큼이나 막막해질 것이다. 길어진 기대수명만큼이나 주어질 길고 긴 시간들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경제적 문제는 물론이며, 신체적 건강염려에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 중에 “나무도,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 우리들처럼 나이를 먹는다”는 가사가 있다. 나무들의 나이가 궁금한 만큼이나 나무들만 보면 저절로 불러졌던 노래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동그란 나이’라는 동요의 가사처럼 나무의 나이는 나무의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나무를 베어야만 볼 수 있는 동그란 모양의 나이테의 개수를 통해 알 수 있다. 나이테의 모양이 언제나 똑 같은 것도 아니다.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만들어지는 춘재와 늦여름부터 초가을에 걸쳐 만들어지는 추재가 한조를 이루는 나이테의 모양은 자라온 환경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적당량의 비와 따뜻한 햇살에는 넓은 폭의 나이테가 만들어지며, 반대의 환경에서는 좁은 폭의 나이테가 만들어진다. 극심한 가뭄이나 병충해나 늦서리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는 가짜 나이테를 만들거나, 나이테 만들기를 멈추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하면 예쁜 몸매에 얼굴에 있는 주름들을 없앨 수 있을지, 고민하며 애쓰고 있지만 이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이는 얼굴로만 먹는 게 아니라 머리숱과 뱃살, 근 골격계, 신경계, 감각계, 심혈관계, 호흡기, 소화기, 비뇨기 등을 통해서도 나이를 먹기 때문이다. 얼굴에 있는 주름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감춘다 할지라도 머리카락이 빠지고 뱃살이 찌고 온몸이 저리고, 쑤시고, 아프고, 막히는 증상들까지도 완전하게 감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25년 7월의 여름.

마음을 먹던 안 먹던, 마음에 들건 들지 않던, 우리는 오늘도 나이를 먹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마음에 새겨질 나이테의 모양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나이테의 모양만으로도 나무와 조개의 일생을 알아 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내는 삶의 과정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흔적으로 남게 됨을 기억하며, 이왕이면 멋지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언제든 나의 몸과 마음에 새겨있는 나이테를 보며 잘했다,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단단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지금 이 순간도 아름다운 흔적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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