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문명의 이웃들(Somewhere over the Yellow Sea)’이 오는 30일부터 10월30일까지 두 달간 목포·진도·해남 일원에서 열린다. 사진은 동시대 수묵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목포 실내체육관 전시 전경./최명진 기자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오는 30일부터 10월30일까지 두 달간 목포·진도·해남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주제는 ‘문명의 이웃들-Somewhere Over the Yellow Sea’이다. 뿌리(해남)·줄기(진도)·동시대 확장(목포)을 축으로 삼아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양한 수묵의 얼굴을 선보인다. 행사에는 국내외 20개 국가 83명 작가가 참여해 회화·설치·사진·미디어아트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과 해석을 펼친다. 목포·해남·진도 내 6개 전시장을 찾아가 눈앞에서 마주한 풍경을 담았다. /편집자주

공재 윤두서作 ‘세마도’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뿌리(해남), 줄기(진도), 동시대의 확장(목포)이라는 큰 구조를 따르지만 직접 발길을 옮겨가며 마주한 현장은 훨씬 복합적이고 다층적이었다. 각 지역의 성격은 달랐지만 서로 스며들고 이어지며 오늘의 수묵을 만들어냈다.

◇‘목포’…빛과 겹친 수묵, 경계를 넘다

목포에서 마주한 풍경은 화려함이었다. 문화예술회관 전시장 안, 세계적인 미디어아트그룹 팀랩(teamLab)의 파동 영상은 빛과 먹이 만나 파도처럼 번져가며 수묵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냈다.

이란 출신 작가 파라스투 포로우하르의 ‘쓰인 방(Written Room)’은 한 발자국 더 깊은 경험으로 이끌었다. 장식처럼 보이던 페르시아 문자가 사실은 전쟁과 억압의 흔적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작품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작가들의 개성이 강하게 부각된다는 점도 이곳 문화예술회관 전시장의 특징이다. 박그림의 작업은 불교 도상과 퀴어의 상징을 교차시켜 정체성을 세련되게 드러냈고, 김은진은 자개의 빛으로 산수를 새기며 수묵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파라스투 포로우하르作 ‘Written Room’

버스로 10여분을 이동해 목포 실내체육관에 도착했다. 평소엔 체육관이던 공간이 탁 트인 전시장으로 변모한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5m에 달하는 층고 덕에 작품들이 크기와 성격을 가리지 않고 저마다의 매력을 드러냈다.

중앙을 차지한 전광영의 약봉지 설치는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이곳에선 다시금 압도적이었다. 수천 장의 봉지가 넓직한 공간과 맞물리며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냈고 관람객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황인기의 레고 산수는 멀리서 보면 전통 산수화, 가까이 다가서면 블록 하나하나가 드러났다. 그 간극 자체가 흥미로우면서도 경외를 불러왔다.

가장 신선했던 작품은 프셰미스와프 야시엘스키의 실험적 장치였다. 관을 따라 흐르는 먹물이 형상을 만들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동양의 재료와 현대적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해남’…300년 만에 만난 세마도

팁랩作 ‘Main_Memory of Waves’

해남은 수묵의 뿌리로 돌아가는 자리였다. 고산윤선도박물관에서 윤두서의 ‘세마도’가 321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먹선 하나하나에 응축된 긴장과 힘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옆 어두운 전시장에서는 윤두서 자화상과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서로를 마주하며 걸려 있었다. 조명과 공간 연출이 만들어낸 긴장 속에서 두 걸작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 자연, 내면과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윤재갑 총감독이 거듭 강조한 녹우당의 가치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회화에 국한되지 않고 시·음악·건축까지 아우른 입체적 문화의 보고라는 설명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김은진作 ‘신의 자리_인산인해 1’

땅끝순례문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분위기는 다시 달라졌다. 규모는 작지만 실험성이 살아 있었다.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가 한국적 산수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했고, 일본의 린타로 하시구치는 아마존 상자를 오브제로 삼아 고립된 삶의 풍경을 펼쳐 보였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어우러졌다.

◇‘진도’…거장 발자취 속 수묵의 줄기 확인

진도에선 줄기의 힘이 두드러졌다. 남도전통미술관에 모인 고암 이응노, 박생광, 서세옥, 송수남, 황창배의 작품은 각각의 무게감으로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태피스트리, 추상, 강렬한 색채, 인물 군무가 한자리에서 만나며 전후 한국 수묵의 거대한 맥을 드러냈다.

소전미술관은 서예와 서화의 집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필력과 흥선대원군의 병풍이 전시 공간에 힘을 더했고, 손재형·학정 이돈흥·목인 전종주의 작품들이 그 흐름을 잇고 있었다. 글씨와 그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전통의 깊이를 드러냈다.

이세현作 ‘Beyound Red’

이번 수묵비엔날레가 남긴 인상은 분명하다. 전통은 놓치지 않으면서도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역사적 작품과 동시대적 실험이 한 전시 안에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뤘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수묵은 꼭 먹으로 종이에만 그려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내놨다. 이번 전시는 수묵의 본질이 재료가 아니라 정신에 있음을 보여줬다.

전시가 이뤄지는 3개 지역을 모두 돌아보기는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한 곳만 꼽자면 목포다. 가장 많은 작가와 작품이 모여 있고 체험적 요소와 젊은 감각이 살아 있다. 해남의 세마도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그 자체로 의미를 갖고, 진도의 거장전은 한국 수묵의 줄기를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3개 지역을 모두 돌아보는 여정이야말로 이번 수묵비엔날레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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