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림 ㈜리얼프로텍 대표이사

AI는 기술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새로운 언어다. 데이터와 전력, 인프라, 냉각수, 그리고 인재를 품은 도시가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잡는다. 20세기를 석유가 지배했다면, 미래는 인공지능(AI)이 지배한다. AI를 선점한 도시는 자본을 끌어들이고, AI 인프라를 확보한 국가는 산업을 통제한다. 지금 세계의 자본은 인공지능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AI 국가전략’을 내걸고, 지자체마다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광주는 2019년 다른 도시들이 도로·철도 같은 SOC 사업을 선택할 때, 과감하게 AI 산업을 국가균형발전 예타면제 사업으로 추진했다. ‘미래는 기술에 있다’는 믿음이 그 출발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AI 데이터센터 유치 실패는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 광주가 스스로의 전략과 실행을 돌아봐야 할 계기로 지적된다.

초거대 AI 모델인 챗GPT는 일반 검색보다 10배 이상의 전력을 사용한다. 오픈AI와 글로벌 컨소시엄이 구상하는 ‘AI 수도’에는 수만 대의 슈퍼컴퓨터가 24시간 쉼 없이 돌아간다. 그 전력소비량은 웬만한 중소도시 하나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결국,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낮은 자연재해 위험, 정치·사회적 안정성, 빠른 통신망, 그리고 확장 가능한 부지를 두루 갖춘 도시만이 경쟁력을 가진다.

광주는 5만㎡ 규모의 AI 집적단지와 인재양성 체계를 내세우며 AI 데이터센터 유치에 나섰지만, 민간기업 삼성SDS는 해남을 선택했다. 전력 인프라와 냉각수, 부지 확장성 등 비용 효율성에서 해남이 앞섰기 때문이다. 광주시의 파격적 제안도 ‘최소비용·최대효율’을 중시한 기업의 판단을 바꾸지 못했다.

광주는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라는 배경에 기대며 범시민 서명운동으로 여론몰이에 나섰다. 첨단산업 유치에 아날로그식 전략을 꺼내 든 셈이다. 협상력과 데이터 기반 논리가 아닌, 이벤트 중심의 홍보가 앞섰다. 그러나 “오픈AI의 심장이 해남으로 간다”는 한 줄의 보도가 만들어낸 프레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여론의 주도권마저 해남에 내줬다.

정치 리더십의 부재는 더 뼈아프다. 전남의 중진 국회의원들이 중앙 무대를 누비는 동안 광주의 초·재선 의원들은 존재감을 잃었다. 정치의 깊이가 얕아지면 행정의 추진력도 약해진다. 국회의원도 짬밥 순서가 있다는데, 3선 4선의 중진 의원을 키워내지 못한 책임에서 시민도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는 해남의 교통 여건을 문제 삼지만, 혁신은 언제나 변두리에서 시작된다. 1950-60년대 실리콘밸리의 새너제이와 팔로알토는 과수원과 목장이 이어진 평범한 시골이었다. 그러나 그 ‘변두리의 실험’이 세계 기술 문명을 바꿨다. AI 산업의 교통은 도로가 아니라, 전력망과 데이터 회선이다. 사람보다 데이터가 더 빠르게 움직이는 산업에서 접근성보다 확장성이 더 큰 경쟁력이다.

삼성SDS의 해남 선택은 블랙록이나 오픈AI 같은 글로벌 투자사에 ‘이곳이 실제로 작동 가능한 AI 인프라 허브다’라는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 광주는 이 흐름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남의 배후 도시로서 AI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는 상생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AI 데이터센터 유치 실패를 둘러싼 이해타산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공방이 아니라,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선거는 사람을 뽑는 과정이지만, 결국 평가받아야 할 대상은 행정의 구조와 작동 방식이다.

객관적 데이터로 판단하고, 일관된 원칙으로 움직이는 행정이 진짜 힘이다. 권력 교체 때마다 정책이 흔들리고, 조직이 눈치를 보는 방식으로는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

광주의 과제는 ‘누가’가 아니라 ‘무엇을’과 ‘어떻게’의 문제다. 개인보다 시스템이, 감정보다 논리가, 정치적 구호보다 데이터가 앞서는 구조가 필요하다. 통제보다 신뢰, 감시보다 학습, 그리고 정체보다 혁신이 자리 잡을 때, 광주는 이번 실패를 딛고 진정한 ‘AI 중심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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