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3(일)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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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홀은 『기호학 입문』에서 “사물, 이미지, 텍스트 등은 시간과 공간 구성에 따른 구조를 갖는다”고 썼다. 사물, 이미지, 텍스트는 생각을 만드는 핵심 요소다. 시간과 공간의 다름은 서로 다른 사물의 존재와 배치에 따르고, 존재와 배치의 구조를 읽는 가운데 다른 생각이 탄생한다. 세대별 차이는 다른 구조가 생각을 낳았다는 전제를 두고 이해해야 한다.
문학 작품은 결국 사물이 존재와 사물의 작동을 통해 구조를 갖는다. 20세기 이후의 사물은 이전 세기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질적 차이와 작동구조를 보였다. 오스발트 슈펭글러(1880-1936)가 이전 시대와는 다른 양상의 전쟁(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집필한 『서구의 몰락』(1918-1922) 서론에서 “현대는 문명의 시대이지 문화의 시대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은, 새롭게 등장한 사물이 인류의 삶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만들었다는 이해에도 적용된다.
사물과 인간의 관계는 20세기 이전, 20세기, 21세기로 나눠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근대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 20세기 이전의 모든 문화권에서 사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영혼을 매개하는 존재로 인간과 관계를 맺은 것이 주류였다. 모든 사물에 신성과 영혼이 깃들었다고 여겨졌던, 막스 베버(1864-1920)가 ‘마술화’의 영향 속에 있다고 본 시기에 인간은 사물 속에서 자신들이 믿는 신의 흔적을 보고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로 엮여 있었다.
나라와 문화권별로 진입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20세기는 산업혁명의 영향과 ‘탈마술화Entzauberung’가 낳은 영향이 주류가 된 세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과학 기술 만능주의의 시대였던 이 시기의 사물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평가받으며 영혼을 잃고 도구가 되었다. 인간과 사물이 영혼으로 맺는 관계는 비합리적인 미신과 반지성으로 몰렸다. 기계와 공장은 마술 대신 효율을 숭배했고, 인간 스스로 생산 체계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20세기는 다른 생명체들과 사물을 배제하고 인간이 구축한 관계들에 대해서만 집착한 시대였다. 68, 4·19, 5·18 같은 숫자들이 대변하는 시대정신은 인간들 사이의 투쟁적 관계를 상징했다. 독재에 대한 항거, 경제적 생존 경쟁에 내몰렸던 20세기를 주류로 살았던 세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다른 생명체와 사물은 교감을 위한 대상이 아니고 수치화하고 얻어야 할 재산 목록으로 추락했다.
모든 시대는 반동을 낳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다른 생명체와 사물을 도구화한 이전 세대의 사유체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세대는 폐기되었던 관계를 복원하려고 한다. 덕분에 20세기에 철저히 도구화되었던 생명체와 사물과의 관계가 다시 살아나고, 마술화와 예술화의 오브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있다. 영혼을 교감할 자연 사물은 효율을 추종한 20세기 산업 구조하에서 대부분 괴멸됐고, 젊은 세대의 삶 주변에는 효율적 도구로 살아남은 문명적 사물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그런 구조 속에서 자랐고, 20세기 세대들이 남겨놓은 생명체와 사물들과 영혼을 나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하잘것 없어 보이는 작은 생명체들과 사물들 앞에서 기뻐하고 사진을 찍고 어르고 있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못마땅한 그 모습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영혼을 만나는 모습이다.
도구의 세기를 지나 교감의 세기로 돌아왔으나 20세기 이전과 21세기는 사물과 이미지가 다르다. 한동안은 20세기가 구축해 놓은 구조물들 속에서 영혼을 나눌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겠지만 21세기는 4분의 1일 지났을 뿐이다. 21세기 세대는 구시대가 축적해 놓은 것 안에서만 관계를 복원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체와 사물, 구조까지를 영혼의 관계에 호응하는 것으로 복원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우리가 남긴 것을 다르게 보는 눈을 키우고 있는 젊은 세대의 고투가 측은하고 감사하고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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