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15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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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8. 03.07. 18:39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가 터트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핵폭탄급이었다. 북한특사로 간 분들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빅뉴스가 빛바랠 정도였다. 믿었던 지도자의 부도덕을 접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만큼 한국사회가 썩어있다는 것, 또 하나는 왜 우리나라만 이 난리냐, 였다.

잘 모르는 얘기다. 우리나라만 이 난리가 아니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외국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에 성희롱·추행·폭행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을 촉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 선정됐을 정도로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 미투운동이다. 타임은 이들 여성을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로 명명했다. 타임은 표지에 20년전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영화배우 애슐리 주드, 여성 직원들에 대한 상사의 성희롱·차별을 문제화한 우버의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등을 올렸다.

‘미투 캠페인’은 지난 10월 미국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이 일파만파 확대되자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트위터에 “당신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면 ‘미투’라고 써달라”고 제안하며 시작됐다. 하루만에 약 50만건이 넘는 리트윗이 달렸고,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이어졌다. 미국 연예계를 시작으로 정재계, 언론계, 스포츠계로 빠르게 퍼져나가며 세계 각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해시태그 ‘#미투’는 지금까지 최소 85개국에서 수백만번이나 사용됐다. 이 충격요법적 행동은 1960년대 이후 우리 문화의 가장 빠른 변화 중 하나를 촉발하고 있다.

공공연한 비밀을 밖으로 표현하고, 속삭이는 네트워크를 사회적 네트워크로 이동시키고, 우리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을 멈추도록 독려한 이후, 지구촌을 뒤흔든 ‘미투’는 성차별 문화를 퇴출하는 핵폭풍으로 진화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부총리를 비롯해 전세계 거물급 인사들이 부적절한 과거 행실로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최근에는 유엔과 국제적십자사 등 국제기구와 구호단체까지 뒤흔들었다.

‘왜 한국에서만 난리냐’가 아니라 전 세계의 미투문화혁명에 한국도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미투’는 단순히, 과거의 피해 사실과 가해자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성차별 문화를 바꾸는 실질적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미투운동은 안희정 충남지사를 지사직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정치권의 미투운동 변곡점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 비서관, 자치단체장 등의 성폭력 사실이 계속 폭로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 미투운동은 제대로 가고 있나. 미국에서 미투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내부 성폭력 고발로 인해 고발자들이 겪을 경제적, 사회적 불안으로부터의 보호였다. 그러나 한국의 미투에는 보호는 없고 수많은 고통과 그 고통을 전시하고 즐기며 ‘진짜’와 ‘가짜’로 판가름하는 시선들이 제2차 가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투운동 폭로자들이 보호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격리해 지켜주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불안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사회라는 또 다른 가해자를 마주하지 않을 수 있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감싸주어야 한다.

필자는, 현 폭로정국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사회 인권이 진일보하기 위해 꼭 건너야 할 ‘강’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만건씩 쏟아지는 미투운동 기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진보·보수를 떠나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의 성평등 문제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충분히 드러내고 곪은 부분을 도려낸 다음 처방전을 내면 한국은 직장 내 권력관계에 의한 성적 억압과 착취에 대해 ‘정의’를 세우게 될 것이다.

오늘은 ‘3·8세계 여성의 날’이다. 곳곳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미투 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여성단체협의회들이 미투 지원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각종 성폭력 철폐를 위해 앞장설 것을 결의한다.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전국미투지원본부’ 발족도 선포한다. 지역에서도 성폭력 피해 고발에 대한 사법당국의 엄정한 수사와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 거대한 물결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성적인 폭력을 겪고도 입 다물 수밖에 없었던 부당한 사회구조에 대한 변화 요구다. 국제적인 기준(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일반권고 35호)을 보면 성폭력을 신변 안전 및 육체적·성적·정신적 온전성(integrity)의 권리에 반하는 범죄로 특정 짓고, 성범죄의 정의를 ‘자유로운 동의에 반한’것으로 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형법에서는 아직도 현저히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로 인정하고 있다.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제 멈출 수 없다. 사회가 진지하게 답할 차례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우리 모두, 자신 안에 존재하는 비양심적인,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성차별적 의식과 구조를 성찰해봐야 한다. 그래서, 2018년, 사회변혁운동으로서 ‘미투운동’이 성과를 거둔다면, 세계인권역사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ssnam48@kjdaily.com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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