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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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다솔사 물고뱅이마을 둘레길
솔향 그윽한 골짜기에 만해와 김동리의 흔적이 스며있다

  • 입력날짜 : 2018. 03.27. 18:46
다솔사 뒤편 녹차밭에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다솔사 전경이 포근하게 내려다보인다.
남해고속도로 곤양IC를 빠져나와 다솔사로 가는 길은 정다운 시골길이다. 산골짜기에 형성된 논과 산자락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마을들이 마치 고향집처럼 다정하다. 승용차는 다솔사 문턱까지 갈 수 있지만 우리는 휴게소 주차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휴게소에서 다솔사로 통하는 600m에 이르는 솔숲길이 걷기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하늘높이 솟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룬 길을 걷다보면 곧게 솟은 소나무들이 우리의 마음을 청정하게 해준다. 솔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인간에게 지혜의 빛을 전해주는 듯하다. 전도몽상에 사로잡혀 사는 중생들이 솔숲 길을 걸으며 마음을 정화한 후 부처님을 만나게 하는 길이다.

만해 한용운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고, 소설가 김동리도 이 길을 걸으며 단편소설 ‘등신불’을 구상했을 것이다.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은 솔숲을 지나자 봉명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봉명산 비탈에 고즈넉하게 다솔사가 자리를 잡았다.

1978년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改金佛事)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나오자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개축했다.
자연석으로 쌓은 계단을 올라가면 대양루라는 편액이 붙은 2층 누각과 첫인사를 나누게 된다. 다솔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일주문과 천왕문이 없어 법당 앞의 대양루가 이들 문을 대신한다. 현재의 대양루는 영조 34년(1758)에 지은 것으로, 마당을 가운데 두고 주불전인 적멸보궁과 마주보고 있다. 승려의 수도장이나 불교신자들의 집회장으로 사용됐던 대양루는 지금은 차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설가 김동리가 다솔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그는 1936년부터 1940년까지 다솔사에 광명학원이란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이때 대양루가 수업장소였는데, 많은 청년들이 모여들어 공부를 했다. 이후 서울생활을 하던 김동리는 1963년 다솔사로 낙향해 이곳을 배경으로 단편소설 ‘등신불’을 썼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한 단 높은 곳에서 적멸보궁(寂滅寶宮)이 대양루와 마주보고 있다. 1978년 2월 있었던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改金佛事)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나오자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개축했다. 그리고 통도사처럼 적멸보궁 뒤편에 사리탑을 건립하고 108개의 사리를 모셨다. 적멸보궁에서 창문을 통해 보이는 사리탑에게 예불을 하도록 한 것이다. 적멸보궁 안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열반에 들기 직전의 부처님 모습인 와불상이 모셔져 있다.

다솔사는 대양루와 적멸보궁을 비롯해 응진전·명부전·선실·요사채 등 10여채의 당우가 소박하게 앉아있다. 다솔사 응진전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수도한 곳이다. 적멸보궁 뒤로 보이는 녹차밭이 푸르다. 사찰 뒤편 녹차밭에 서 있으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다솔사 전경이 포근하게 내려다보인다.

산의 경사면을 ‘ㄴ’자로 파낸 터 위에 널빤지 모양의 돌을 반구형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려 만든 보안암 석굴암.
다솔사를 나와 사찰 뒤편 봉명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등산로 주변은 울창한 솔숲이 산을 찾은 사람들을 품어준다. 길은 봉명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봉명산 7부 능선을 돌아가는 길로 갈린다. 우리는 정상으로 향했다.

봉명산 정상(408m)에는 높은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전망이 트인다. 주변의 산들이 올망졸망 다가오고, 남쪽으로는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서쪽에는 물명산(450m)이 솟아있고, 물명산 동쪽 8부 능선에 둥지를 튼 보안암이 새집처럼 포근해 보인다. 봉명산은 풍수지리학상 봉황이 우는 형국이라 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니 아름드리 서어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서어나무 숲길을 지나니 잘디 잔 돌로 쌓은 3m 높이의 석축이 앞을 가로막는다. 돌축대 밑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서니 작은 암자 한 채가 앉아 있고, 그 옆에 자연석으로 쌓은 돌무덤 같은 모양의 석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적멸보궁 뒤편의 사리탑, 적멸보궁에서 유리를 통해 보이는 사리탑을 보며 예불을 드린다.
보안암 석굴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과 같이 산의 경사면을 ‘ㄴ’자로 파낸 터 위에 널빤지 모양의 돌을 반구형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려 만든 석실이다. 석실에는 1.9m 높이의 석조여래좌상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앉아 있다. 석굴 속의 석가모니불은 경주 석굴암과 같이 동쪽을 바라보며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한다. 동쪽으로 낮은 산들이 멀리서부터 첩첩이 다가오면서 보안암 석굴의 부처님께 예불을 드린다.

봉명산에서 이명산으로 가는 등산로로 되돌아와 이명산 방향으로 걷는다. 길은 산허리를 돌아간다. 길을 걷다보면 예쁘게 쌓아놓은 원뿔형 돌탑들이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매서운 겨울을 견딘 나무들은 이미 봄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땅속에서 열심히 물을 빨아들여 줄기로, 가지로 옮겨가고 있는 나무들은 이미 생기가 넘친다.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가던 둘레길은 물명산 북쪽 산자락을 돌아가는 임도로 이어진다. 북쪽에 계명산(382m)이 뾰족하게 솟아있고, 산자락으로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명마을이 둥지를 틀고 있다. 북천면 직전리는 대하소설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가 태어난 마을이다. 이병주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80여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이병주가 태어난 직전리 이명마을에는 그의 저작과 유품을 상설 전시하는 이병주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봉암정 옆에 서 있는 만해 한용운 시비. 만해는 다솔사에서 수도정진했다.
물명산과 이명산을 이어주는 능선은 사천시 곤양면과 하동군 북천면의 경계가 되고, 두 지역을 깨사리고개를 지나는 지방도로가 이어준다. 깨사리고개를 지나 우리는 이명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헤어져 물고뱅이마을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내려간다.

깨사리고개를 내려서자마자 편백나무숲이 은은한 향기를 품어준다. 편백나무 향기로 몸과 마음을 씻고 나니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길동무를 해준다. 골짜기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얼음들이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고 있다. 새들의 노랫가락과 함께 숲길은 물고뱅이마을 수변공원로 인도해준다. ‘물고뱅이’라는 이름은 무고리의 옛 지명이다. 물고뱅이는 물을 가둬 두는 곳이다. 잠시 논길을 지나 도로를 건너니 봉명정이라는 정자에 닿는다. 봉명정에서 서 있으니 좁고 긴 골짜기와 주변의 농경지가 내려다보인다. 봉명정 옆에는 만해 한용운 시비가 서 있다. 시비에는 한용운 스님의 시 ‘님의 침묵’이 새겨져 있다.

봉명정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봉명산 능선에 도착한다. 다솔사에서 봉명산과 물명산, 이명산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이제 다솔사를 거쳐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다솔사 솔숲길을 걸으면서 나는 한용운 시 ‘님의 침묵’을 되새긴다.


※여행쪽지

▶‘다솔사 물고뱅이마을 둘레길’은 다솔사→봉명산→보안암 갈림길→깨사리고개→물고뱅이마을 수변공원→다솔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8㎞에 3시간20분 정도 걸린다.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다솔사휴게소 주차장(경남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 42)
▶다솔사휴게소 만남의 광장 식당(055-853-1800)은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크게 만족하는 식당이다. 산채비빔밥, 토종백숙, 파전, 도토리묵 등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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