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7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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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함안 여항산 둘레길
붉은 단풍과 푸른 솔숲이 모자이크된 길을 걷다

  • 입력날짜 : 2019. 11.26. 17:57
곧게 솟은 적송 숲이 산의 품격을 높여주고, 붉게 물든 단풍은 예쁘고 우아하다. 예쁘게 물든 단풍잎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평생을 고결하게 살다가 곱게 늙어가는 선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수 끝난 들판이 황량하다. 맨 땅을 드러낸 들판과 붉게 옷을 갈아입은 산이 쓸쓸하게 어울린다. 텅 빈 들판과 산봉우리에 아침안개가 면사포같이 살짝 얹혀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늦가을 풍경이 세월의 강산을 넘고 넘어 오늘에 이른 나의 모습 같다.

옛 가야 땅 함안은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남고북저(南高北低) 지형으로, 남쪽은 산이 많고 북쪽은 남강과 낙동강을 낀 낮은 평야지대다. 여항산(770m)은 함안의 진산이다. 함안군 남쪽 끝에 있는 여항산과 서북산(739m), 봉화산(674m)은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타원형으로 이어진다.

여항면소재지를 지나 여항산 골짜기로 들어서니 봉성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저수지 안쪽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형성돼 있다. 여항산 둘레길 출발지점인 좌촌마을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둘레길을 걷기 위해 봉성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선다.

좌촌마을 뒤로 여항산이 우뚝 서 있는데, 그 모습이 갈색 병풍을 펼쳐놓은 듯하다. 마을과 저수지 주변에는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잔잔한 저수지에는 산봉우리들이 내려와 몸을 뉘었다. 저수지 뒤로 펼쳐지는 다랑이논과 마을, 산봉우리들이 만추의 풍경을 담은 산수화 같다.

여항산 둘레길은 봉성저수지와 헤어져 봉화산 자락으로 이어진다. 봉성저수지를 등 뒤에 두고 임도로 향한다. 동쪽에 위치한 봉화산자락을 따라 걸으니 계곡 건너편으로 좌촌마을·대촌마을이 여항산자락에 포근하게 안겨있다. 마을 앞으로는 다랑이논들이 수많은 층계를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저 다랑이논들은 농민들이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이자, 자연과 인간이 합작해서 만든 예술품이다.
해발 250m 산속에서 자리잡은 상별내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고, 건너편으로 봉화산에서 감내고개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여항산은 6부 능선까지는 울창한 소나무가 진녹색을 띠고, 위쪽은 활엽수림으로 단풍이 들어 색상의 대비를 이룬다. 여항산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지만 정상부위에는 갓바위라 불리는 깎아지른 암벽이 자리하고 있다. 옛날에는 여항산 정상 갓바위에서 기우제도 지냈다.

이곳은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정도로 첩첩산중이지만 한국전쟁의 격전지 중 하나다.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전선을 구축한 국군과 미군 제25사단은 여항산·서북산에서 북한군과 45일간 19차례나 고지를 뺏고 뺏기는 혈전을 치렀다. 아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승전을 거두고 낙동강 방어전선을 확보했지만, 이 전투에서 미군 중대장을 포함해 장병 100여명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가 우리를 단풍길로 안내한다. 산은 적송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지만, 임도를 내면서 단풍나무를 심어 가을에 걷고 싶은 단풍길이 되었다. 곧게 솟은 적송 숲이 산의 품격을 높여주고, 붉게 물든 단풍은 예쁘고 우아하다.

예쁘게 물든 단풍잎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평생을 고결하게 살다가 곱게 늙어가는 선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단풍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예쁜 색상을 선보이고는 미련 없이 떠나간다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봉성저수지 뒤로 펼쳐지는 다랑이논과 마을, 산봉우리들이 만추의 풍경을 담은 산수화 같다.

임도는 산비탈을 따라 곡선으로 이리 휘어지고 저리 굽어진다.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길이 부드럽고 온화하다. 나란히 걸으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단풍색은 붉은 색만이 아니라 노란색, 귤색, 갈색 등 다양한 색상을 하고 있다.

산은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소나무 일색의 숲에서 활엽수림으로 바뀐다. 이제는 임도뿐만 아니라 산 전체가 단풍으로 물들었다. 단풍이 드는 것은 단풍나무만이 아니다. 산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낙엽수는 단풍이 든다. 오색으로 물든 단풍이 파란 하늘과 어울려 찬란하다.

길은 지루할만하면 아래쪽 마을과 여항산을 조망하도록 해준다. 길을 걷다보면 시계모양의 거리안내판이 지금까지 걸었던 거리와 남아 있는 거리를 알려준다. 갈림길마다 이정표도 세워져 있고, 걷다가 쉴 수 있는 의자와 식사를 할 수 있는 나무평상도 놓여있다.

제1구간이 끝나는 감재고개 입구에 닿는다. 감재고개는 서북산에서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고개다. 제1구간은 전체가 임도로 되어있지만 이제부터는 산길이 많다. 임도를 걷다가 산길로 들어서니 산과 하나 된 것 같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난다. 낙엽 밟는 소리가 나를 쓸쓸하게 한다. 쓸쓸함이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붉게 물든 여항산이 마을을 감싸주고, 마을 앞으로는 다랑이논들이 수많은 층계를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저 다랑이논들은 농민들이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이자, 자연과 인간이 합작해서 만든 예술품이다.

서북산 북쪽 비탈 해발 360m에 위치한 약수터산장에 들어서니 늦가을 봉화산능선이 푸른 하늘 아래에서 출렁인다. 마당가에 놓인 바위에 앉아 저물어가는 가을을 관조하듯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가파른 숲길을 따라 고개 하나를 넘으니 몇 기의 돌탑이 길손을 맞이한다.

붉은 줄기의 적송 숲 가운데로 난 임도를 따라 한 굽이를 돌아가니 7-8가구의 민가가 있는 상별내 마을이 해발 250m 산속에서 고즈넉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상별내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고, 건너편으로 봉화산에서 감내고개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마을 뒤 산길은 여항산 둘레길 중에서 가장 가파른 길이다. 숨을 헉헉거리며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나무평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여항산으로 가는 이정표가 둘레길 이정표와 함께 세워져 있다. 솔향 그윽한 길을 따라 걷다가 임도를 만난다. 카펫을 깔아놓은 듯이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가는 길에서도 가을향기는 은은하게 전해진다.

더욱 가까워진 여항산은 녹색 소나무와 붉고 노란 단풍이 모자이크처럼 채색화를 그려놓았다. 임도를 한 굽이 돌아서니 봉성저수지와 분지 속 공화국을 이루고 있는 대촌마을·좌촌마을과 다랑이논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적송숲길을 내려서자 조그마한 사방댐이 있다.

대촌마을 뒤편 메타세콰이아길과 편백나무길을 걷는다. 단풍 든 메타세콰이아나무와 진녹색의 편백나무 가로수길이 운치 있다. 편백나무길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자 좌촌마을이다. 여항산에 기대고 봉성저수지를 마당삼고 있는 마을이 포근하고 평화롭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과 빨갛게 익는 감이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겨준다. 마을 주변 밭에서는 김장을 기다리는 배추와 무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마을 앞 몇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산봉우리가 마을에 비췄던 햇살을 가리고, 마을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여행쪽지

▶여항산 둘레길은 경상남도 함안의 대표적인 산인 여항산과 서북산, 봉화산 허리를 잇는 임도와 산길로 이루어진 길이다. 늦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고, 품격 있는 적송 숲이 운치 있다.
▶코스 : 좌촌주차장→감재고개 입구→상별내→사방댐 입구→좌촌주차장(14㎞/5시간30분소요)
▶식당 : 좌촌주차장에서 10분 거리의 함안면소재지에 한우국밥촌이 있는데, 주말이면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다. ‘함안 한우국밥촌’에는 대구식당(055-583-4026)을 비롯한 몇 개의 식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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