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30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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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이 넘쳐나는 사회
이윤배
조선대 명예교수·컴퓨터공학

  • 입력날짜 : 2020. 01.27. 17:15
어느 조직이나 마을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갖 말썽을 부리며 휘젓고 다니는 한 두 사람의 문제아, 일명 ‘트러블메이커’가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제지할 특별한 방법이나 수단이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 이들로 인해 구성원 모두는 늘 불편을 느끼고 피곤하기까지 하다.

필자가 사는 이웃 마을에도 각종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리고 남의 뒷담화를 일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여자가 살고 있다. 예전에 살던 마을에서도 말썽을 많이 일으켜 쫓겨 오다시피 이웃 마을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이웃 마을로 이사 와서도 ‘제 버릇 개 못 준다’라는 속담처럼 여러 가지로 말썽을 피웠다. 여자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 집이나 방문하고, 사소한 일도 크게 부풀려 시빗거리를 만들고 손버릇마저 나빠 마을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상대를 해 주지 않아 여자는 늘 외톨이로 살고 있다.

그런데도 반성이나 자숙은 커녕 다른 마을까지 원정을 다니며 타인을 중상모략하고 괴소문을 만들어 퍼뜨렸다. 이 여자의 주 표적은 주로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말썽꾼 여자의 정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녀의 감언이설에 속아 쉽게 친분을 맺고 어리석게도 의지까지 했다.

그런데 이 말썽꾼 여자가 결국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웃 동네집의 17만원 상당의 지하수 배수펌프를 훔친 사실이 뒤늦게 들통났기 때문이다. 그 전부터 마을에서 없어진 물건은 말썽꾼 여자 집을 수색하면 다 나올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었다. 그런데 배수펌프를 훔쳐가는 광경을 실제로 본, 목격자가 나타남으로써 절도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만 것이다.

피해자와 동행하여 마을에 있는 경찰 지구대에 먼저 도난 신고를 했다. 그리고 사실 확인 차 경찰과 함께 말썽꾼 여자 집을 찾았다. 마침 혼자 있던 여자는 밤늦은 시간, 경찰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찰이 심문을 시작하자, 처음에는 훔친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나중에 목격자가 도착해 당시 상황을 조목조목 증언하자 여자는 더는 버티지 못한 채, 훔쳐 간 배수펌프를 경찰 앞에 순순히 내놓았다. 결국, 증거까지 나왔으니 빼도 박도할 수 없는 절도죄가 성립되고 말았다. 한마을에 살면서 말썽부리는 것도 부족해 왜 이 같은 절도 행각까지 벌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절도죄는 단순 절도와 특수 절도로 나뉜다. 단순 절도의 경우 6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특수 절도는 형량이 이보다 훨씬 더 무겁다. 만약 두 명 이상이 함께 절도죄를 범하였거나, 흉기를 휴대하고 절도죄를 범한 때에는 특수절도혐의가 적용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단순 절도는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질 수 있다. 말썽꾼 여자의 경우는 절도 금액이 적고 또 전과가 없다면 처벌받더라도 벌금과 함께 집행유예 정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전과 기록은 남아 전과자가 된다.

그러나 이 말썽꾼 여자의 절도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일지도 모르겠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이 절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합법을 가장한 또 다른 형태의 절도범들이 넘쳐나고 있다. 권력을 앞세워 청년 일자리를 빼앗아 자신의 잇속을 채우는 파렴치한 기업 임원들과 저질 국회의원들, 자녀들의 일류대 입학을 위해 각종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힘 있는 학부모들, 호의호식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세금 포탈범들, 그리고 유망한 중소기업을 각종 협박과 회유로 헐값에 사들여 배를 채우는 부도덕한 재벌 등등….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은 불법 절도범들이 활개 치고 있는 세상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분식 회계 등으로 국민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준, 지금은 해체된 대우 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은 17조 원의 추징금을 끝내 갚지 않은 채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일부 사이비 보수 언론들은 그의 죽음을 두고 앞다투어 “경제계의 큰 별이 지다” 등으로 애도하고 생전의 행적에 대해 미화도 서슴지 않았다. 과연 이 땅에 언론의 양심적 정도(正道)나 정의가 존재하고는 있는지 입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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