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7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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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해남 대흥사 ‘다도의 길’
차 한 잔속에 선(禪)이 스며있다

  • 입력날짜 : 2020. 12.01. 19:41
대흥사 계곡에 화사한 단풍이 물위로 가지를 내밀었다. 단풍은 계곡의 검은 바위와 흐르는 물까지 붉은색으로 바꿔버렸다.
올 마지막 단풍을 만나러 해남으로 떠난다.

드넓은 나주들판과 영산강, 그리고 낮은 산줄기가 가져다주는 부드러운 풍경은 영암 월출산을 만나면서 강렬한 분위기로 바뀐다. 불꽃처럼 솟아오른 월출산의 빼어난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해남읍을 지나 삼산벌을 뒤에 두고 두륜산 자락으로 빠져든다. 매표소에서 대흥사로 이어지는 깊은 골짜기는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운치 있는 곳이다. 대흥사 바로 아래에 주차장이 있지만 우리는 매표소에서부터 걷기로 했다. 예로부터 풍광이 수려하고 호젓한 이 숲길을 ‘장춘(長春)숲길’이라 불렀다. 봄이 유난히 길어서 장춘(長春)이라 했다.

굴참나무·소나무·편백나무·동백나무·느티나무 등 다양한 나무로 이뤄진 숲을 따라 걷는 발걸음이 그윽하다. 가을 가뭄에 적은 수량의 물이 속삭이듯 흘러가고, 물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그림을 그려놓았다.

대흥사주차장에서 대흥사까지 가는 길목에는 단풍이 터널을 이루고, 계곡에서는 화사한 단풍이 물위로 가지를 내밀었다. 단풍은 계곡의 검은 바위와 흐르는 물까지 붉은색으로 바꿔버렸다. 햇살에 비췬 단풍은 찬란한 광채를 띤다.

나뭇잎이 낼 수 있는 가장 예쁜 색을 보여주고 미련없이 떠나는 단풍에는 달관의 아름다움이 스며있다. 나는 단풍을 볼 때마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을 생각한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꾸준히 공부하고 수행하는 삶, 탐욕을 버리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 속에서 형성될 것이다.

해탈문에 들어서자 두륜산과 대흥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륜산 정상을 이루고 있는 바위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 아래에 대흥사 절집들이 포근하게 둥지를 틀었다. 대흥사 가람배치는 일반 절과는 다르다. 절을 가로 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건물들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대웅전이 있는 북원으로 향한다.

범종루를 지나 북원으로 가는 금당천 주변에도 노랗고 빨간 단풍이 은은하게 물들었다. 단풍나무에 뒤질세라 은행나무도 노랗게 채색하여 늦가을 정취를 고조시킨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대흥사 북원에 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대흥사에서는 추사와 원교를 비롯해 창암 이삼만, 정조 등 당대 명필들의 글씨를 찾아볼 수 있다. 대웅보전 입구 침계루(枕溪樓) 편액은 원교 이광사, 가허루(駕虛樓) 편액은 창암 이삼만, 표충사(表忠祠) 편액은 정조의 글씨이다.

개천 남쪽에 해당되는 남원 구역에는 천불전이 있다.

천불전으로 가는 언덕위에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다정하게 서 있다. 느티나무 두 그루는 오랜 세월 사랑을 나눈 끝에 뿌리가 이어져 연리근(連理根)이 됐다. 오랜 세월 금슬 좋게 살아온 부부의 모습이 이런 것이리라. 천불전으로 들어가는데, 출입문인 가허루의 멍에처럼 둥글게 휘어진 문턱이 인상적이다. 꽃무늬로 장식된 천불전 문살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흥사 남원의 천불전, 출입문인 가허루의 멍에처럼 둥글게 휘어진 문턱이 인상적이고, 꽃무늬로 장식된 천불전 문살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말여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흥사가 대사찰로 변신하기까지는 서산대사의 유언이 있었다. 1605년 1월 어느 날,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당과 처영스님에게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해남 두륜산에 두라고 유언했다.

서산대사가 입적하자 제자들은 유언대로 가사와 발우를 대흥사에 모셨다. 이리해 서산대사의 법맥은 대흥사에서 이어지게 됐다. 그래서 대흥사에는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두 제자인 사명당과 처영스님의 화상을 함께 봉안한 표충사가 있다.

동국선원 앞을 지나면서부터 호젓한 산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일지암과 북미륵암으로 가는 길이자 두륜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로 고개를 내민 단풍이 우아한 풍모를 보여준다.

‘대흥사 다도의 길’은 일지암까지만 다녀와도 되지만 우리는 북미륵암과 만일암터를 거쳐 일지암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일지암까지 연결된 임도와 헤어져 북미륵암으로 가는 길은 좁은 오솔길이다.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산비탈 경사에 몸을 맞춰서 걸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산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겸손해진다.

가파른 길을 걷고 나서야 북미륵암에 도착한다. ‘ㄴ’자형 요사채에서 한 계단 올라서니 법당인 용화전이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보며 삼매에 들어있다.
북미륵암 용화전 안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4.2m 높이의 커다란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이 모셔져 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바위에 새겨진 불상 위에 전각을 세운 것이다.

용화전에서는 스님과 열 명 가까운 신도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다. 용화전 안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4.2m 높이의 커다란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이 모셔져 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바위에 새겨진 불상 위에 전각을 세운 것이다.

용화전 오른쪽에는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이 서 있고, 마애여래좌상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언덕 위에 또 하나의 삼층석탑(북미륵암 동삼층석탑)이 자연석을 기단삼아 서 있다. 동삼층석탑이 있는 언덕에 오르자 대흥사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북미륵암 동삼층석탑에서 내려다본 대흥사는 만산홍엽을 이룬 두륜산이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북미륵암 용화전 오른쪽에는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이 서 있다.

북미륵암으로 내려와 산허리길을 따라 만일암터로 향한다.

너덜지대를 지나니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22m, 둘레 9.6m에 이르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 천 년이 넘어 ‘천년수’라 부른다.

천년수 바로 위쪽에 만일암터가 있다. 명산에는 수도하는 고승들이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암자도 많다. 두륜산에는 한때는 20개가 넘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두륜산 정상인 가련봉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가 만일암이었다.

대흥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일지암으로 방향을 튼다. 일지암의 상징과도 같은 초가와 ‘ㄱ’ 자 모양으로 꺾어 지은 기와집 초의다정에도 단풍이 물들어있다.

초의다정은 연못에 돌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떠받치게 해 아름다움과 운치를 더한다.

조선말 초의선사는 이곳에 일지암을 짓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학자·문인들과 교류하면서 학문적 깊이를 더해 갔을 뿐더러 소치 허련에게 그림 공부를 시켜 남종화를 꽃피우게 했다.
조선말 초의선사는 이곳에 일지암을 짓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학자·문인들과 교류하면서 학문적 깊이를 더해 갔다.

차(茶)와 선(禪)을 하나의 경지로 본 초의는 맥이 끊어져가던 우리나라의 차(茶)문화를 일으켜 세운 분이다. 그래서 일지암하면 초의선사와 차를 생각한다. 암자 앞 푸른 차밭에는 녹차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초의는 초막 뒤 유천의 물로 차를 끓여 마시면서 선정삼매에 빠졌을 것이다. 일지암을 나서는데 멀리서 고계봉이 미소를 짓는다.


※여행쪽지
▶‘대흥사 다도의 길’은 서산대사가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라고 해 자신의 법맥을 잇도록 한 대흥사와 초의선사가 맥이 끊어져가던 차 문화를 일으켜 세운 일지암을 잇는 길을 지칭한다.
▶코스 :
1)대흥사 매표소→대흥사주차장→대흥사→일지암(왕복 8㎞, 3시간 소요)
2)대흥사주차장→대흥사→북미륵암→만일암터→일지암→대흥사→대흥사주차장(3시간 소요)
※대흥사 아래 상가에는 식당이 많다. 그중에서 호남식당(061-534-5500)의 자연산 버섯탕이 유명하다. 호남식당에서는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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