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은 언제일까. 통상 겨울이라고 알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 바깥에서 자면 얼어죽기 때문이다. 30여년전만 해도 실제 ‘얼어죽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극심한 추위는 집 없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잔혹했다. 그 당시만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적어도 얼어죽을 일이 없는 여름은 지낼만한 계절이었다. 그러나 기온이 40도까지 오르는 요즘, 더워서 죽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111년만에 가장 덥다는 올 여름, 에너지 빈곤층이 느끼는 설움은 생사를 다툴만큼 끔찍해보인다. 요즘같은 날씨에 갓난아기가 있는 집에 에어컨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 고통은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하루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환자가 있는 쪽방에 선풍기마저 없다면 그 사정은 어떻겠는가.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더위가 계속되는 폭염의 계절, 여름을 건너면서 에너지 빈곤층의 고통지수가 얼마나 클지, 우리는 날씨의 고통마저 함께 나누지 못하는 반공동체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겨울의 고통지수가 낮아진 반면 여름의 고통지수는 더욱 커졌다는 것은 기후복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철 온도는 더욱 올랐고, 에어컨 설치가 늘어나며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서민들의 호흡을 옥죄고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도 여름철 고통지수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위를 막아낼 여건이 못 되는 불량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의 경우,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철이 겨울보다 한결 보내기 어려운 계절이 됐다.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나 노약자 등은 펄펄 끓는 여름 더위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다. 사람 체온을 넘어서는 가마솥더위에도 저소득층들은 폐지를 구하러 거리를 누벼야 하는 처지이다. 폐지 값이 1㎏에 180원이던 것이 50원까지 떨어져 실상 하루 종일 모아도 5000원을 벌지 못하지만 그걸 포기하지 못하는 실정이 아닌가.

지자체는 40도가 넘는 살인적인 폭염하에서 취약계층의 여름나기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겨울철에 집중된 이웃돕기 행사도 여름과 겨울로 양분해 실시해야 한다. 이 무더운 여름날을 최악의 고통 속에서 보내는 이웃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 정부가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고 범정부 차원에서 폭염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회에 계류중인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할 때 이 안이 관철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폭염을 재난으로 관리하기를 주저했던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최근 폭염 피해가 속출하면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옳은 결정이다.

올해 폭염은 매일 기록을 경신하며, 앞으로 40일 계속될거라 한다. 온열질환자는 1000여명에 달하고, 사망자도 10명을 넘어섰다. 폭염은 가까운 미래에 가장 우려되는 재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금처럼 더워지면 2050년대에는 해마다 폭염으로 165명이 숨질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당부컨대, 정부가 부처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독거노인·농민·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시스템은 더욱 강화해야 한다. 쪽방, 지하 생활자 등 에너지 빈곤층이 전력 공급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철저한 배려가 필요하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경로당도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 매달 10만원 정도의 냉방비 지원을 받고 있는데 한 달 전기요금이 12만-13만원이 나온다. 모자라는 비용은 회비로 충당하다 보니 시간을 정해놓고 에어컨을 가동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란다.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대책에 허점이 없는지 다시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고장 난 냉방기를 교체해주거나 전기료를 무상 지원해 소외계층이 쉼터에서나마 마음 놓고 냉방기를 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기본적인 배려조차 받지 못하고 방치된 쪽방촌이나 달동네의 에너지빈곤층이 없는지 더욱 세심히 살펴야 한다. 도로가 갈라지고 가축의 떼죽음도 속출하고 있다. 지자체는 상황별 매뉴얼과 긴급구호 및 보상 체계를 촘촘히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빈곤층은 최대 1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낮에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를 내보내는 등 너무 추상적인 대책으로는 폭염살인을 막을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기본임무는 국민 안전이다. 사회적 약자층이 폭염을 이겨낼 수 있는 거시적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가 폭염을 재난으로 인정한 만큼 이번 기회에 사회안전망 확충의 의미를 보다 잘 살려야 할 것이다. 에너지복지정책 전반을 통괄 관리할 입법 뿐 아니라 저소득층의 노후 전기·가스시설 개선 등 안전 문제도 같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절약과 효율화로 절감한 비용을 빈곤가정에 재투자한다는 개념까지 정립해 기후복지 에너지복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조금 더 세심한 배려와 거시적인 사회복지제도와 국가에너지 정책의 연계성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각기 사정이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에너지 복지 모델을 만들고 중앙부처의 다각적 지원이 이뤄질때 지역 실정에 맞는 에너지 프로그램, 기후복지가 골목골목 스며들 수 있다.

공공재인 공기의 질, 모두에게 똑같은 날씨, 그러나 빈부차에 따라 누구는 얼어죽고 누구는 더워 죽는다면, 사람사는 세상이라 할 수 없다. 소득에 따른 온도 양극화, 더위 불평등은 소득양극화와 함께 국가가 풀어야 할 과제중에 과제가 되었다.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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