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가 바람에 실려와 지붕에 앉아 음색을 고르고 천둥번개가 박자를 맞추는 날이다. 여름철 막바지라 늦장마가 기승을 부리는 것인지 연일 비다. 대부분의 집들이 슬레이트 혹은 철판지붕이기 때문에 소나기가 내리치는 날이면 음악을 듣는 것도 사치가 된다. 이런 날은 내린 비가 한강처럼 불어나 옷과 신발을 무색하게 만드는 거리로 나가기보다는, 번개로 인해 혹시나 상할지 모르는 귀한 가전제품들을 집 안에 모셔두고 미뤄진 스케줄을 조정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누구 말로는 번개를 맞아서 죽은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로 기네스북에 오른 곳이 짐바브웨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말 같기는 하다. 왜냐하면 최근에 우리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른 순간 번개에 맞아 죽었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주인 고고는 비 오는 날이면 핸드폰에 손도 대지 말라고 연신 당부하신다.
최근 세계 곳곳이 자연재해로 인해 몸살을 앓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온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짐바브웨로 닿는 슬픈 파도소리는 마음속에 쓰나미가 되어 멍이 드는 것만 같다. 짐바브웨는 다행히 1990년도에 있었던 가뭄사태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로부터는 안전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현상은 어느 곳 하나 예외가 없는 법.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날씨 좋고 평화로운 이곳도 언제 자연재해가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수도 하라레(Harare) 인근에 만들어진 수많은 밀집주거지들에서는 자연재해보다도 무서운 것이 전염병이다. 길을 제외한 공간은 모두 벽돌이나 블록으로 만들어진 집들로 꽉 차있고 그 집 한 채에도 2-3가정이 함께 살고 있다. 심한 경우는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대여섯 명이 자기도 한다. 난방시설이나 단열 재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바깥기온을 그대로 체험해 한여름에도 밤이 되면 두꺼운 담요를 덮고 자야 한다. 집에는 쥐들이 살고 있는 경우가 많고 위생상태가 좋지 못하다면 이로 인한 전염병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가장 심한 문제는 물이다. 물이 부족할뿐더러 수도에서 나오는 물도 수질이 좋지 못하다. 최악의 콜레라 사태를 수습하면서 외국단체에서 우물을 뚫어주었지만, 망가지거나 수도관이 녹슬고 혹은 수심이 얕아 완전하게 정화된 물을 얻기가 어렵다. 또한 각종 쓰레기와 하수가 흘러들었던 곳이라면 오염된 물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가장 가난한 동네라고 손꼽히는 엠바레(Mbare)에서는 빈번하게 콜레라가 발생한다.
과거 정부에서 많은 집들을 불법주택이라면서 허물게 했던 이유는 이런 전염병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쫓겨난 주민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 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더 열악한 슬럼가를 형성하게 됐다. 수도와 전기시설은 전혀 없고 판자나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에 비하면 누추하지만 비바람을 피해 몸이라도 뉘일 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느낌과 동시에 가장 무섭게 느낀 것은 물이다. 인간의 삶에서 깨끗한 물을 얻는 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이 있는 곳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태어났고 강이 있는 곳에 인류가 정착하여 문명을 이루고 발전했다. 우리는 언제나 물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간다. 물 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은 나 자신을 이루어 내는 구성체이면서 나를 지탱해주는 기반이 된다. 진정으로 자연과 함께 어울려가며 사는 삶을 꿈꾼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바람이 되고 숲이 되어 마침내 쪼개진 퍼즐조각이 하나가 되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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