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목요일)
홈 >> 기획 >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혁명은 끝나지 않는다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레미제라블’과 혁명

  • 입력날짜 : 2014. 06.04. 20:47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학기획으로 매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자유대학과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1832년 6월 5일,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하는 진압군에 맞서 파리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친다. 이후 프랑스인들에게 바리케이드는 단순한 일회적 방어벽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끝없는 혁명의 상징이 된다. 바리케이드 이쪽이 정의로운 자유의 세계라면 저쪽은 불의와 굴욕의 세계다. 그러니 바리케이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운 모든 이들이 죽음의 벽돌로 쌓아올린 자유의 성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182년 전의 프랑스 6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장 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 감옥에 갇혀 노역을 한다. 굶주림이 도둑질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손 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더구나 프랑스는 이미 1789년 대혁명을 통해 절대군주와 귀족의 불합리한 특권을 물리치고 보편적 자유와 인권의 이념을 세운 바 있다. 한 번의 큰 혁명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대혁명 이후 정권을 장악한 혁명세력은 자코뱅 당과 지롱드 당으로 나뉘어 극렬하게 싸운다. 그 와중에 권력을 잡은 자코뱅 당의 수장 로베스피에르는 ‘단일한 하나의 의지’로 혁명을 완수하겠다며 단두대의 공포정치를 펼친다. 하지만 결국 반대파에 의해 그 자신이 단두대에서 처형되면서 공포정치가 막을 내리고 지롱드 당의 총재정부가 출범한다. 이 시점에 장 발장은 빵을 훔친다. 총재정부가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물자부족을 막지 못함으로써 수많은 시민이 도둑질에 내몰린 것이다.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하고 제1통령이 된다. 그는 행정, 사법, 재정을 재정비하는 개혁을 단행하며 사회, 경제를 안정시켰을 뿐만 아니라 잇따른 전쟁 승리로 국민의 신임을 얻으며 권력을 강화한다. 1805년 국민투표로 드디어 황제가 되지만 10년 뒤 유럽 동맹국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된다. 이후 부르봉 왕가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함으로서 프랑스는 다시 왕정국가가 된다. 이 시기에 출소한 장 발장은 계속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교회의 은식기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힌다. 하지만 죄를 묻기는커녕 은촛대마저 쥐어준 신부의 삶을 따라 새 사람이 된 장발장은 구슬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변모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명망 있는 시장이 된다. 1820년 이후 영국에서 밀려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면서 크게 성공을 거둔 그는 자애로운 사업가이자 시장이 된다. 그렇다고 그의 노동자와 시민이 참 자유를 누린 것은 아니다.

‘자유론’에서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나눈다. 소극적 자유는 개인의 의지를 강제하는 억압적 힘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 때문에 소극적 자유는 개인의 절대적 자유가 사회의 다른 가치들과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시장자유주의의 이념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장 발장은 경제적·정치적 성공을 이루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성자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제한 없는 경제성장이나 개인의 자비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공장은 성공했으나 그곳의 여공들의 근무조건은 여전히 비참하다. 그처럼 마차에 깔린 이를 발 벗고 구하는 인정 많은 시장이 있어도 여전히 시민들의 삶은 가난과 질병으로 하루하루가 힘겹다.

소극적 자유가 개인의 자유 공간 확보에 만족한다면 적극적 자유는 잘못된 지배적 질서에 저항하는 힘이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성난 민중들의 노래/다시는 노예로 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음악/심장 박동이 북소리로 가득하면/내일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되지” 바리케이드에 울려 퍼진 시민들의 노래는 나 홀로 잘살아 보겠다는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서로서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겠다는 연대의 함성, 곧 적극적 자유의 외침이다.

‘레미제라블’의 작자 빅토르 위고는 6월 혁명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 시위대와 진압군 사이에 너도나도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리는 시민들을 의지를 목격한 그는 30년 뒤 ‘레미제라블’로 그날의 정신을 재현한다. 프랑스대혁명이나 7월 혁명, 2월 혁명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만 6월 혁명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한 6월 혁명은 ‘레미제라블’을 통해 끝없이 귀환하는 혁명이 된다. 진정한 자유인들에게 혁명은 끝나지 않는다.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