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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현실사이에서 꾸는 꿈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몽상가들’과 영화

  • 입력날짜 : 2014. 07.09. 19:20
평생 동굴 속에서 벽면을 바라보도록 묶여있는 포로가 있다고 치자. 그의 뒤에는 양이나 돼지, 의자의 모습을 본뜬 모형이 있고 횃불이 그 뒤에서 비추고 있다. 포로에게 모형의 그림자는 유일한 진짜일 것이다. 그는 벽면에 비춘 그림자만 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동굴 속의 포로가 그림자를 진짜라고 여기듯 우리는 현상 세계를 실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플라톤에게 진짜는 현상세계 너머에 있는 본질이며, 현상세계는 본질의 모방에 불과하다. 더욱이 예술은 현상을 모방한 가상이므로, 본질에서 두 단계나 떨어져있는 가짜가 된다.

플라톤이 제시한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포로의 형상은 오늘날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과 정확히 겹친다. 우리는 어두운 공간에서 영사기의 빛에 의해 등장하는 이미지를 보며 그것이 진짜인 듯 울고 웃는다. 그러다가 영화가 끝나면 눈물은 서둘러 지워지고 웃음의 기억마저 휘발된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며, 순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오락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영화는 세상에서 유리된 몽상가가 한낮에 꾸는 꿈에 불과한 것일까?

1936년 프랑스에 시네마테크라는 단체가 만들어진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마와 도서관을 의미하는 비블리오테크의 합성어로, 영화를 보존하고 함께 감상한다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시네마테크의 대표인 앙리 랑그루와는 영화적 가치 여부를 막론하고 다양한 영화를 수집하여 그것을 도서관처럼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유실된 영화들이 새 생명을 얻고 기존의 영화들이 재발견 되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알렝 레네, 에릭 로메르 등이 이곳에서 활동했으며, 이들은 누벨바그라는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영화 ‘몽상가들’의 주인공인 테오, 이자벨, 매튜는 시네마테크에 출입하는 영화광이다. 1968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시네마테크가 정부지원금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앙리 랑그루와를 해임한다. 이에 시네마테크의 영화광들은 문화를 말살하는 억압적 규제라며 반발하기 시작했고, 이는 68혁명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테오, 이자벨, 매튜는 이 시기에 만나 영화적 교감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그들은 시네마테크를 통해 빛을 발한 아름다운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하며 예술을 삶속으로 가져온다. 이제 이들에게 바깥의 현실은 오히려 거짓이 되고, 영화는 문제 풀이가 가능한 진리의 영역이 된다.

다른 한편 이들은 모든 종류의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권력을 상상력으로 전환하려는 68혁명의 정신적 배경 속에서 시대와 사상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실은 집안에 은닉한 채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며 나누는 이데올로기 대결일 뿐이다. 거리의 바리케이트가 높아질수록 그들이 외부와 단절하는 담벼락도 높아만 간다. 그들이 급기야 캐노피 속으로 기어들어가 유아적 상태로 퇴행했을 때, 혁명의 목소리는 정점에 이른다. 창문을 깨는 돌멩이는 잠에 빠져있는 그들을 깨운다. 몽상에서 벗어나라는 시대의 부름인 것이다. 테오, 이자벨, 매튜는 거리로 나선다.

이들에게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즐거운 오락이기도 했으며, 구차한 현실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것이기도 하고, 사회혁명의 동력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예술은 순전히 사회로부터 고립된 영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로부터 직접 연역되는 것도 아니다. 아도르노(T. W. Adorno)가 생각했듯 “예술은 사회에 대한 사회적 안티테제”다. ‘몽상가들’도 마찬가지다. ‘몽상가들’은 단순히 시네마테크와 68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대적 배경과 무관한 방황하는 청춘의 인생을 그린 것도 아니다. 예술은 사회의 단면을 계기로 하면서도 자기 완결성을 지닌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도래하지 않은 미래다. 참된 예술은 현실에 빚지고 있으면서 부정적 현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은 물음을 던졌다면 그것으로부터 나름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학기획으로 매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자유대학과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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