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8일(월요일)
홈 >> 기획 >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문화의 탈을 쓴 산업이 인간을 살해한다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비디오드롬’과 문화산업

  • 입력날짜 : 2014. 07.16. 19:38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학기획으로 매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자유대학과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영화 ‘비디오드롬’의 주인공 맥스는 포르노를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사의 사장이다. 포르노가 시청자에게 미칠 악영향 따위는 그에게 고민거리가 아니다. 거꾸로 그는 방송이라는 가상공간 안에서 시청자들이 숨겨진 폭력적 욕망을 배출하게 되면 오히려 사회라는 현실공간에서 실제적 폭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맥스의 관심은 온통 대중을 현혹할 수 있는 새롭고 자극적인 영상을 찾는데 집중되어 있다. 동양의 낭만적 섹스나 아름다운 육체적 향연을 담은 고전적 영상은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못한다.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의식으로서 섹스는 이미 낡고 지루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직원이 스너프 필름이 담긴 해적방송을 보여준다. 비디오드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필름은 학대와 강간, 그리고 살해가 뒤섞인 섹스 장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맥스는 영상 속의 폭력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잠깐 주저하지만 방송에 내보내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제작자를 수소문한다.

그가 찾은 비디오드롬의 제작자, 오블리비언 박사는 영상 속에서만 생존하는 인물로 현실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찍은 수천 개의 영상을 통해서 그 누구보다 현실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TV 스크린은 마음의 눈에서 망막에 해당하는 뇌의 물질적 구조다’는 그의 주장은 ‘미디어는 확장된 인간의 신체’라는 맥루한(M. McLuhan)의 명제를 차용한 것이다. TV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며, 거꾸로 현실은 TV보다 더 비현실적이라는 믿음을 토대로 오브리비언은 하층민과 부랑자를 교화시켜 사회로 되돌아갈 수 있는 TV 치료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처방하는 회사를 운영한다. 망각(Oblivion)이라는 이름의 뜻과는 반대로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불멸을 누린다.

비디오드롬은 일정한 신호체계를 통해 환각 이미지를 생산한다. 비디오드롬에 노출된 이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 이미지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보드리야르(J. Baudrillard)가 진단한 것처럼 원본도 사실성도 없이 가상공간에서 무한 복제되는 과잉실재(hyperreality)가 현실을 지배하는 것이다. 점차 비디오드롬에 빠져 들어간 맥스에게 비디오테이프는 이제 살아 숨 쉬는 실재고, 배를 갈라 권총을 쑤셔 넣는 일도 현실이 된다.

가상공간을 떠도는 환상은 사실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환상은 주입한 사람의 의도에 따라 그려진다. 오블리비언은 비디오드롬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해성을 알아차리고 중단하려다 동업자 콘벡스에게 살해당했다. 콘벡스는 국제적 안경제조기업의 대표다. 제3세계의 발전에 위협을 느낀 그는 그곳에 값싼 안경을 제조하여 배포함으로써 그들의 시야를 지배하고자한다. 그가 비디오드롬을 제작한 것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배권을 정치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위해서다. 그는 맥스의 방송사를 손에 넣어 비디오드롬을 방영함으로써 전 세계를 조종하려는 야심을 품는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조작하는 문화산업이 미사일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도르노(T. W. Adorno)와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에 따르면 문화산업의 핵심 이데올로기는 체념과 순응이다. 콘벡스는 신경계를 폭력에 노출시켜 뇌와 척추의 수용기관이 열리면 비디오드롬의 신호를 침투시켜 사람들을 지배체계에 순응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의 문화상품은 자극을 통해 수용자의 이성과 감각을 마비시켜 체제에 순종하는 의식을 확대 재생산한다. 히틀러를 풍자한 사진을 방에 걸어둘 만큼 파시즘에 냉소를 보이던 맥스였지만, 이제 콘벡스라는 자본주의적 파시즘의 울타리에 갇혀 그의 지시에 따라 회사동료를 살해하는 꼭두각시가 된다. 오블리비언의 딸의 도움으로 콘벡스의 조종에서 겨우 풀려난 이후에도 맥스는 문화산업의 지배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새 육체에 영원한 삶을!”이라는 그녀의 주문을 자동기계처럼 되뇌던 맥스는 결국 TV 스크린의 명령에 따라 제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어쩌면 문화산업의 노예가 되어 매일 밤 TV를 보는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체념에 빠쳐 정신적 자살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최송아 (전남대 철학교육연구센터)


최송아 (전남대 철학교육연구센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