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시겠습니까?”

“음…….”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망설여 질 때가 있다. 새로운 이름에 익숙해 지려하면 또 다른 이름들이 창조되어 나오니 시험을 보는 느낌이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다. 날이 갈수록 생소한 단어들을 조합해 길고도 길게 늘어놓으니 발음하기도 까다롭다. 맛 또한 마찬가지다. 생소하고 길어진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재료들을 뒤섞여 놓은 음식들은 맛 또한 묘하다. 배불리 먹고도 자꾸만 허기가 진다. 맹물도 아니고 콜라도 아니고 주스도 아닌 음료를 만날 때도, ‘다운’게 그립다.

음식, 문화, 패션 등 사회 전반에 일고 있는 퓨전 바람이다.

퓨전은 라틴어의 ‘FUSE(섞다)’에서 유래한 말로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 조합, 조화’를 뜻한다. 본래 퓨전이라는 말은 음악 용어로 클래식과 국악의 만남,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만남처럼,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 어울린 색다른 음악이나, 재즈와 락, 발라드처럼 이것저것 섞인 노래를 뜻한다. 이런 음악 용어를 요리에 도입해 일반화 되어오던 요리상식을 뒤집는 방식이 퓨전음식이다. 세계 각국의 음식 재료와 조리법 중에 좋아하는 맛이나 장점들을 뽑아 서로가 어여삐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 퓨전음식이다.

퓨전음식의 발원지는 미국의 서부지역이다.

역사가 바뀌고 서로 다른 문화들이 교류할 때 마다 새로운 음식이 생겨났지만, 본격적으로 퓨전 음식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태평양을 건너 이주해온 아시아인들을 통해 일찍부터 동양의 음식을 접할 수 있었던 서부지역의 미국인들은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을 음식에서 찾게 되면서 눈을 뜨게 되었다. 기름진 음식이 대부분인 서양요리와 야채가 주재료인 동양요리를 조합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새로운 음식을 만들게 되었고, 그 음식이 바로 퓨전 음식의 출발이 되었다.

우리가 즐겨먹고 있는 짜장면도 퓨전음식이다.

짜장면의 유래는 중국이지만 중국식 짜장면과 맛이 다르다. 중국식 짜장면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새롭게 탄생한 퓨전 짜장면이다. 이처럼, 퓨전 음식은 개개인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창조해 낼 수 있다. 동서양의 어울림을 통해 다양한 맛과 함께 풍부한 영양을 선사한다. 기존의 전통 방식에 약간의 응용만 더하여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도전하는 즐거움과 함께 맛다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길을 잃은 국적불명의 음식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퓨전의 의미가 서로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융합하고 발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만큼, 무분별한 퓨전의 표방은 그만이어야 할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병신년(丙申年) 새해.

아름답다, 꽃답다, 어른답다, 엄마답다, 나답다. 수많은 긍정의 단어들이 ‘답다’와 만나기를 바란다. 책다운 책을 읽고, 삶다운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우리 모두 ‘나다운 내가 되길’ 희망한다. 하지만 솔직히, 어떻게 살아야 ‘나답게’ 살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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