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국회의원 선거 결과가 나온 다음날 4월14일, 대한민국 모든 여론은 ‘민심이 정말 무섭다’는 것이었다. 총선 결과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민심은 집권여당 새누리당이 예상 밖으로 참패하면서 1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다. 더군다나 영원히 제1야당 일것같은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 압승으로 야1당은 되었지만 정당지지율은 3등이 나왔다. 야당 텃밭인 호남 민심은 제1야당을 밀어내고 제3당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수도권 2석 외에 다른 지역 당선자를 내지 못하면서 전국정당이 되지 못했다.

이 선거결과의 민심은 무엇이었나? 국민은 책임이 큰 순서대로 회초리를 들고 어느 한쪽도 승자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제1야당 제1여당에게 매를 들고 제3당에게는 기회를 주지만 겸손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래서 정치권과 정치학계는 올해 총선 결과에 나타난 국민의 명령은 ‘거버넌스-협치’라고 진단했다. 어느 한 당의 독주나 독선으로는 결정이 불가능한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과반을 넘는 정당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과 협력하고 대화하지 않고서는 한발도 내디딜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현 상황의 국정운영 해답은 ‘협치’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부·국회·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 어디서도 ‘협치’를 볼 수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던 ‘협치’는 실종되고 ‘대치’ 양상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추가경정예산안 대치다. 여·야가 당초 합의한 22일 국회본회의 처리가 무산됐다. 20대 국회 출범과 함께 ‘협치’를 약속했지만,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휴지조각이 되고있다. 사상 초유의 추경안 폐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기류가 심상치 않다. 호남출신 여·야 대표시대를 맞아 호남이 바라는 대의정신에 입각한 ‘협치’ 역시 온데간데 없다.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의 원내 협상은 중단되었고 예산결산특위도 중단돼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오는 26일 추경안 처리도 불투명하다. 여·야는 청문회 증인에 대한 입장차 역시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서로 비난성 책임 공방을 벌이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거버넌스(협치)란 무엇인가? 정치학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행위자들 간의 외부 권위나 내부적인 자기조절·자기통제 메커니즘에 의한 조정과 관리’로 정의한다. 또 좁은 의미에서의 국가 내에서 결정을 내리고 집행할 수 있는 제도화된 권력으로 정의되는 정부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공공영역과 민간영역 행위자 사이의 네트워크 방식의 수평적인 협력 구조’로 정의한다. 협치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통치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서로 다른 여러 세력이 협력해 통치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제가 통치라는 말로 대변된다면 협치는 일종의 연합정치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협치’가 통치스타일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고, 과정이며 문화라고 본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독일, 스위스 등 유럽에서는 협치를 하는 국가들이 많다. 이들 국가들은 협치를 위한 제도적 틀을 갖추고 있다. 총선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을 도입해 소수당(소수파)이 국회에 진출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나올 가능성은 많지 않다. 때문에 각 당들은 연합해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리 협치를 전제한 정치의 모습이다.

필자가 볼 때, 협치가 가능하려면 ‘대화의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 국민이 볼 때,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 지자체와 시민 사이에 진정한 대화와 소통이 없다. 대화를 해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는다. 대의를 위한, 공동체 이익을 위한 대화가 거의 없다. 최근 영남권 신공항·사드 배치 후보지 결정 등의 논란에서 보듯이 ‘타협과 양보’ ‘대화와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의 주요 정책집행과 관련해 지역 주민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와 지자체가 우리 사회 고질적인 문제인 양극화, 지역 불균형, 비정규직 문제 등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스럽다.

정치는 대화의 예술이다. 대화는 소통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인이 대화의 기술이 없다면 일단 정치인 자격이 없는 것이다. 대화란 나와 다른 견해, 다른 입장을 가진 측과도 한 자리에 앉아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 쓴소리, 귀찮은 소리, 불편한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고 한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대화의 시작이다. 대화란 듣기 거북한 말을 인내하고 들어줄 뿐 아니라 내 의견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대화다.

하물며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의 대화는 거리낌이 없고 빈번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야간 대화가 없는데 누가 국론을 모으고 어디서 국민의 의견이 대변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지금 정치인들은 국가공동체를 책임지고 있다는 책임의식이 조금이라도 있기나 한가.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내일의 권력’이라는 저서에서 ‘여의도의 정치독점은 여의도 바깥 정치 배제의 다른 말이다. 여의도보다 여의도 바깥이 훨씬 넓은 세계다. 그 세계가 사회다. 여의도 정치는 사회를 배제했고 배제당한 사회는 여의도 정치를 배척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 역사는 대립과 대결의 역사였다. 우리나라는 지금 선진국 진입의 8부 능선까지 왔는데, 대립과 대결의정치를 협치로 바꾸지 않는다면,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주저앉을 지도 모른다.

4·13총선에서 보여준 민심의 명령은 ‘협치’다. 더 이상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라, 협상하고 대화하라는 국민적 요구였다. 잊지 말라.

/ssnam48@kjdaily.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